[복거일의 생각]<8>모두가 잘 사는 세상은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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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진화는 평등을 추구하지 않는다


많은 사회들에서 소득의 불평등은 심각한 문제다. 소득 불평등은 늘 문제였지만, 근년에 ‘소득 양극화’라 불릴 만큼 격차가 커지면서 자본주의 사회가 위기를 맞았다는 진단까지 나온다. 양극화의 원인들 가운데 근본적인 것은 불평등이 삶의 본질적 특질이라는 점이다. 진화는 평등을 추구하지 않는다.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종들과 개체들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잘 적응한 종들과 개체들의 후손들이 차지하므로 자연의 질서는 ‘승자 독식’이다. 모든 종과 개체들이 고루 잘사는 세상은 없다.

불평등 폭발적으로 늘어난 이유

문화의 발전은 불평등을 폭발적으로 늘렸다. 유전적 진화는 느리고 제한적이지만, 문화적 진화는 아주 빠르고 근본적 변화들을 부른다. 성공적 아이디어들은 단숨에 온 세계로 퍼져서, 조금 덜 효율적인 아이디어들을 몰아낸다. 요즈음 큰 성공을 거둔 사람들은 전에는 누구도 꿈꾸지 못했던 명성과 부를 얻는다.

정보기술의 발전은 이런 현상을 크게 증폭시켰다. 지식의 이용은 비용이 들지 않고 지적 재산들은 실질적으로 비용 없이 복제된다. 덕분에 ‘승자가 거의 독식하는 (winner-take-almost-all)’ 현상이 점점 심화된다. 방송, 예술, 운동과 같은 분야들에서 소수의 일류가 소득 대부분을 차지하고 이름 없는 사람들은 생계도 힘들다.

기술 발전은 일반적으로 중간 관리직과 숙련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많이 줄인다. 판단이 중요한 기업 조직의 상층부와 기계화가 어려운 서비스 분야 종사자들은 영향을 훨씬 덜 받는다. 금융업의 발전은 이런 현상을 심화시킨다. 금융업에선 소득 격차가 다른 산업들에서보다 훨씬 크다.

노인들과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들 사이에선 소득 격차가 평균보다 크다. 수명이 길어지고 교육 수준도 높아지므로, 앞으로 이런 사정은 심화될 것이다. 사회가 원숙해지면, 자신에게 필요한 만큼만 버는 ‘문턱 소득자(threshold earner)’가 늘어난다. 예컨대 혼자 사는 사람은 부양자가 있는 사람보다 일을 덜 하는데, 우리 사회에서 1인 가구는 2000년의 220만에서 2010년의 410만으로 가파르게 늘었다. 이런 추세도 소득 격차를 늘린다.

소득격차 벌린 강성노조

강성한 노동조합도 소득 격차를 벌린다. 노동조합은 스스로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없으므로, 약한 다수 노동자들의 소득을 강한 소수 노동조합원들에게로 이전시킬 따름이다. 노동조합이 강성한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에서 자동차 회사 종업원들은 하청 업체 노동자들보다 곱절 내지 세 곱절 높은 임금을 받는다. 게다가 노동조합원의 해고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므로 기업들은 되도록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뽑는다.

소득양극화라는 현상은 없앨 수 없다. 그것을 줄이려 하면 경제와 문화의 발전을 방해한다. 그것을 아예 없애려 하면 삶 자체를 억제하고 약화시킨다. 결과의 평등이라는 고귀한 이상을 추구한 공산주의가 가장 사악한 제도로 판명된 사정이 그 점을 잘 보여준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노동조합의 너무 큰 힘을 줄여서, 힘이 약한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외국인 노동자들의 소득이 힘이 강한 노동조합원들에게로 이전되는 상황을 개선하는 것 정도다. 노동조합이라는 제도가 노동 공급에서 인위적 독점을 강요한 것이므로, 그 일은 시장경제를 보다 낫게 만들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것은 큰 정치적 의지가 있어야 가능하므로 현실적으로 어렵다. 따라서 소득 양극화는 문화가 발전하고 사회가 원숙해질수록 심화될 것이다.

다행히 우리 사회의 소득 양극화는 비교적 덜 심각하다. 유럽보다는 심하고 미국보다는 덜하다. 그러나 소득 격차는 차츰 늘어나는 추세다.

‘재벌도 하루 세끼 먹는다’

그렇다면, 소득 양극화는 얼마나 큰 문제인가. 미국 경제학자 타일러 카우언이 지적한 것처럼, 이 물음에 답하는 데서 소득과 복지를 구분하는 것은 긴요하다.

소득과는 반대로, 복지는 점점 격차가 줄어든다. 중세 사회에서 귀족과 평민은 (노예는 그만두고라도) 복지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현대에선 복지가 절대적으로 늘어나면서도 상대적 차이는 점점 줄어든다. 사람이 누리는 복지의 양에는 한계가 있다. 의식주, 교육, 의료에서 부자들과 중산층이 누리는 혜택은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 ‘재벌도 하루 세끼 먹고’ 병에 걸리면 같은 의료 기술로 치료 받는다.

사람에게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물론 복지다. 삶의 질은 복지에 의해 결정된다. 소득은 복지를 얻는 수단이다. 소득 양극화에도 불구하고 복지는 점점 평준화되므로, 일단 소득 양극화의 심각성은 상당히 누그러진다. 아주 가난한 사람들을 구하는 사회안전망을 보다 튼튼하게 만들어 좀 더 넓게 치면, 급한 문제엔 일단 대응하는 셈이다.

그러면 소득 양극화 문제는 그리 심각한 문제가 아닌가? 물론 그렇지 않다. 모든 사람이 원하는 무엇에서 격차가 나오면, 문제가 나올 수밖에 없다.

그리고 소득 양극화는 사회적 이동성(mobility)을 줄인다. 하층 시민들이 중간층으로, 중간층 시민들이 상류층으로 올라가는 것이 점점 어려워진다는 얘기다. 이것은 기회의 평등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현상이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우리가 모두 ‘부러워하는 동물’이라는 사실에서 나온다. 우리는 모든 일에서 자신을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 남과 비교해 평가한다. 우리의 마음은 부족을 이루어 살던 원시시대에 형성되었다. 당시 결정적으로 중요했던 것은 부족 안에서의 자신의 위치였지 전반적 생활 수준이 아니었다. 부족 안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해야 좋은 배우자를 얻어서 뛰어난 자식들을 얻을 수 있었다. 문화가 발전했어도 우리는 여전히 원시인의 마음으로 세상을 살핀다.

자연히 소득 양극화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서 체제에 대해 반감과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가난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문제이지 부자들의 재산이 빠르게 늘어나는 것은 문제일 수 없다는 얘기는 합리적이지만 어느 사회에서도 통하지 않는다. 다수가 문제라고 믿으면 문제가 된다.

양극화를 그냥 둘 수는 없다

안타깝게도, 문제의 성격이 그러하므로, 대책이라 할 만한 대책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먼저, 관련된 사실들을 널리 알려서 시민들이 선동가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차분하게 판단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잘사는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이 정당한 분노로 행세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아무리 자연스럽더라도, 시기하는 마음이 정의감이 될 수는 없다.

무엇보다도, 부당하게 큰돈을 버는 사람들이 줄어들도록 깨끗하고 투명한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 부유한 사람들이 부당한 방식으로 돈을 벌었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면, 그 체제는 안정될 수 없다.

이제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데 얼마나 큰 자원을 들여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남았다. 시장에서 나온 소득 양극화를 그냥 둘 수는 없다. 그렇다고 완전한 평등을 추구할 수도 없다. 그 길은 이미 지옥으로 가는 길임이 드러났다.

(다음 글에선 이 어려운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복거일 소설가·사회평론가
#소득 불평등#소득 양극화#노동조합#재벌#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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