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석의 詩로 여는 주말]고마워, 미안해, 용서해 줘, 사랑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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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 미안해, 용서해 줘, 사랑해
신현림(1961∼ )

다툼과 이별을 슬퍼 말고 자신을 비워 봐요
이메일 주소를 지우면 그 사람 존재가 지워지나요
핸드폰 번호를 지우면 돌풍같이 사라지나요
저마다의 가슴은 스크린 같아서
사람들은 이모티콘처럼 아이콘처럼 살다 가지요
수신거부, 스팸처리 그것도 놓아 버려요
모두 내 탓이라 여기면
빈 마음에 붉고 넉넉한 바람이 붑니다

상처 받지 않으려고 서로 상처를 주고
거친 말이 오가면 그 인연 잠시 끊어 줘야 합니다
사람 사이 푹 빠졌다 시들해지고, 멀어졌다 이어지고
또 다른 스크린으로 오가는 되풀이가 삶이라도
대나무 속같이 자신을 비워 봐요
“고마워, 미안해, 용서해 줘, 사랑해”라고 되뇌어 봐요
신의 숨결이 담긴
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말들을


신현림의 ‘사과여행’.
신현림의 ‘사과여행’.
고대 하와이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집단으로 기억을 정화하는 의식을 치렀다고 한다. 이들이 전통적 문제 해결 과정에서 의지한 것은 말이었다. ‘미안합니다. 용서해 주세요,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고통스러운 생각에 뿌리내린 나쁜 에너지를 솎아내는 방법으로, 스스로의 내면을 정화하는 방법으로 화해와 치유를 가져오는 말의 힘에 주목했던 것이다.

신현림 시인의 ‘고마워, 미안해, 용서해 줘, 사랑해’는 하와이 원주민의 오래된 지혜에서 차용한 작품이다. 다툼과 이별이 일상화하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환경에선 어느 하나 쉽게 나오기 힘든 표현이다. 그래도 시는 넌지시 충고를 한다. 힘든 상황과 맞닥뜨렸을 때 내 상처와 상실감만 들여다보지 말고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이 없는지 곰곰이 돌아보라고. 바로 그게 내면의 평화로 가는 출발점이 되는 거라고. 시와 사진을 넘나들며 활동하는 작가는 그런 깨달음을 사진에도 접목했다. 다음 주 열리는 개인전에서 그는 6년간 국내외를 여행하며 길어 올린 ‘사과여행’ 연작을 내놓는다. 작가는 인간이 훼손한 풍경 앞에서 ‘미안합니다. 용서를 빕니다’를, 경이로운 자연 앞에서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를 되새겼다 말한다.

‘말이 세상을 바꿉니다’는 본보의 연중 기획이지만 최근 미국에선 실제 말이 가져오는 변화에 대한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등 대학 합동연구팀이 337명을 대상으로 실험했더니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 한마디는 예상보다 엄청난 위력을 갖고 있었다. 누군가 피해를 입은 상황에서 가해자가 먼저 다가가 사과하며 작은 꽃을 선물하도록 했다. ‘미안해’라는 간단한 말에도 피해자의 불만과 화가 상당 부분 누그러졌다는 것이다. 사과하면 지는 줄 알고, 잘못을 인정하면 죽음인 줄 여기며 사는, 당연히 책임져야 할 일에도 책임지지 않는 사람들로 인해 사회적 도덕적 위기를 맞은 우리에겐 더욱 피부에 와 닿는 결과다.

초복을 지나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무책임하고 몰염치한 사람들 때문에 낙담한 데다 더위까지 겹쳐 짜증이 치솟을수록 마음의 평화를 위해 좋은 에너지를 채워 넣어야 한다. 오늘부터 당장 ‘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말들’을 습관처럼 반복하는 거다. 쑥스럽긴 해도 가슴 답답한 현실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다. 왜 내 주변에는 걸림돌이 되는 사람이 이리 많은가 고민이 된다면 혹시 나 역시 남에게 그런 걸림돌이 아닌지도 돌아보면서….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고마워#미안해#용서해 줘#사랑해#신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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