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호 어문기자의 말글 나들이]가치담배?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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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호 어문기자
손진호 어문기자
정부가 국민건강 보호를 위해 담뱃값을 올리는 방안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올릴 바에야 왕창 올리라’는 주장도 있고, ‘팍팍한 살림살이에 담뱃값까지 올리느냐’는 반대의견도 만만찮다.

담뱃값만 문제가 아니다. 담배 용어를 둘러싼 논쟁 역시 계속되고 있다.

‘가치담배.’ 국어사전에 올라 있는 표준어다. 무슨 뜻인지 알기가 어려운 단어 중 하나다. ‘(담배) 한 가치, 두 가치’ 할 때의 ‘가치’라고 해야 겨우 고개를 끄덕인다. 모든 사전은 ‘가치는 개비의 잘못’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개비’도 귀에 감기지 않는다. ‘개비’가 표준어이므로, 언중이 많이 쓰는 ‘개피’, ‘까치’도 당연히 표준어가 아니다. 즉 담배 낱개를 이르는 말로는 ‘개비’만 쓸 수 있다. 그래놓고선 ‘갑에 넣지 않고 낱개로 파는 담배’의 표제어로 ‘가치담배’를 떡하니 올려놓았다. 가치가 개비를 잘못 쓴 말이라면 ‘가치’와 결합한 합성어도 틀린 말로 다뤄야 옳은데 말이다. 차라리 언중이 입말로 많이 쓰는 ‘까치담배’를 표제어로 올리는 게 어땠을까 싶다.

‘담배를 묶어 세는 단위’로 쓰는 ‘보루’라는 말도 논쟁거리다. ‘보루’는 일본말 잔재이므로 ‘포(包)’로 고쳐 써야 한다는 주장과 우리말 속에 동화된 말이므로 괜찮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얇은 종이로 가늘고 길게 말아놓은 담배’인 궐련 스무 개비를 넣은 조그만 상자를 ‘갑(匣)’이라 한다. 열 갑을 포장한 것이 ‘보루’다. 이는 영어 ‘보드(board)’에서 나왔다. ‘보드’는 ‘판자’나 ‘마분지’를 가리키는 말인데, 예전에는 담배 열 갑을 마분지로 만든 딱딱한 상자에 넣어서 팔았기 때문에 이런 말이 생긴 듯하다. 그래서일까. 일부에서는 미국말이 일본을 거쳐 들어온 것이므로 사용해도 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글학회의 ‘우리말 큰사전’은 보루를 아예 표제어로 삼지 않았다. 한동안 ‘보루’의 쓰임새를 인정하는 듯하던 국어원도 최근 들어 웹사이트에 ‘포’와 ‘줄’을 순화어로 올려놨다. 이는 ‘보루’를 많이 쓰면서도 더 고운 말로 다듬기를 바라는 사람이 여전히 많음을 보여준다. ‘포’와 ‘줄’이 얼마나 뿌리를 내릴지는 논외로 하고라도.

콘크리트 빌딩 숲 귀퉁이에서 담배를 피워 물고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요즘 흡연자들은 담뱃값뿐만 아니라 흡연을 죄악시하는 사회 분위기와도 싸우고 있는 듯하다.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
#가치담배#개비#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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