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칼럼]‘배 안에 갇힌 302명’ 오후 3시까지 몰랐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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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도착 해경,선장 탈출 도우며 한가한 대응으로 골든타임 허비
대형재난에 준비 안된 조직
미확인 승객은 어선에 구조돼 인근 섬에라도 가있을 것 짐작
성수대교는 외양간 고쳤는데 서해훼리호에선 교훈 못 얻어
선주와 官피아 유착 때문

황호택 논설주간 채널A 시사프로 ‘논설주간의 세상보기’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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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도청에 ‘300여 명’(실제 476명)이 탑승한 여객선이 병풍도 앞바다에서 침몰 중이라는 보고가 들어온 것은 4월 16일 오전 9시 40분경이었다. 그 후 탑승자가 늘어 “사고 선박에 400여 명이 탔는데 350여 명이 구조됐다”는 보고가 이어졌다. 오전 11시경 소방헬기를 타고 사고해역을 둘러본 박준영 전남지사는 해경 경비정과 어선들이 세월호 주변에 모여 있었으나 구조 활동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아까 400명 중 350명이 구조됐다는데 지금은 다 구조된 모양”이라고 추측했다.

사고 발생 3시간여가 지난 오전 11시 9분께 경기도교육청은 “여객선에 탑승했던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 모두 구조됐다”고 발표했다. 구명동의를 입고 바다에 뛰어내린 승객만 구조해놓고 배 안에 갇혀 있거나 실종된 302명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한 것이다. 안전행정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오후 2시 공식브리핑에서 여객선 탑승인원 477명 중 368명이 구조됐고 사망 2명, 실종 107명이라고 밝혔다. 그래서 모두들 368명이나 구조됐으니 ‘실종 107명’도 계속 구조되고 있을 것으로 믿었다.

이때 정부 관계자들이 머무르던 진도 실내체육관에는 ‘174명만 구조가 확인됐고 나머지 292명(실제 사망 및 실종자 302명)이 확인되지 않는다’라는 보고가 올라왔다. 어선들이 구조한 승객을 인근 섬에 데려다 놓았을 수 있으니 섬에 연락해보라는 지시가 내려갔다. 그러나 인근 섬에 가 있는 승객은 없었다. 오후 3시경 ‘302명 실종 및 사망’이 최종 확인되면서 대한민국에 거대한 쓰나미가 밀어닥쳤다.

목포해경은 사고 직후 ‘350명 이상이 탑승한 여객선이 침몰하고 있다’며 모든 경비함에 동시다발로 구조명령을 내렸다. 인명은 한 명 한 명이 모두 소중한데 ‘350명 이상’은 실제 탑승인원 476명과 얼추 잡아도 ‘100명 이상’ 차이가 난다. 가장 먼저 도착한 해경 123호 경비정은 선실에 300명이 갇혀 있는 줄은 상상도 못하고 골든타임을 흘려보냈다. ‘350명 이상’이 탄 배가 침몰하는데도 갑판에 사람이 안 보여 해경들이 당황했다니 정보를 어떻게 공유했길래 현장에서 이 모양이란 말인가. 이번 사건을 통해 해경은 세월호와 같은 대형 재난에 전혀 준비가 안 된 조직임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1993년 10월 10일 전북 부안군 위도에서 110t급 여객선 서해훼리호가 침몰해 292명의 사망자를 냈다. 여객선이 승객을 너무 많이 태웠고 거친 풍랑에 무리한 출항을 했다. 서해훼리호의 침몰 지점은 육지에서 4.5km 떨어진 곳이었다. 그런데도 구조된 사람들은 70명에 불과했다.

이번에는 동거차도에서 3km 떨어진 지점에서 476명 중 302명이 사망 또는 실종됐다. 서해훼리호 사고 이후 21년이 지났어도 별로 나아진 게 없다. 해경은 해양수산부 외청으로 독립하고 장비도 서해훼리호 시절에 비하면 좋아졌지만 조직문화는 달라지지 않았다. 해경 경비정은 단원고 학생들이 손마디가 부러지도록 문을 쥐어뜯고 있을 때 침몰선에 승객을 놓아두고 탈출하는 선장이나 도와줬다.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 1년 후인 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 붕괴 사고가 발생해 32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다쳤다. 이 사고 후 장대(長大)교량에는 교각 사이로 고양이 길(cat walk)이 생겨 기술자들이 걸어 다니며 육안과 장비로 교각과 상판을 살필 수 있게 됐다. 교각에도 계측기가 붙어 교량 관리센터에서 컴퓨터로 시시각각 안전도를 체크하고 있다. 소 잃고 뒤늦게 외양간이라도 고친 셈이다.

서해훼리호 사고 이후 해운항만청과 해양수산부는 외양간도 제대로 고치지 않고 선주와 관(官)피아가 유착해 안전규제를 무용지물(無用之物)로 만들었다. 악덕 선주는 닷컴에서 2만∼5만 원에 파는 아마추어 사진을 청해진의 모회사인 천해지에 장당 5000만 원씩 200억 원에 팔아 돈을 빼먹으면서 인지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선장을 270만 원 계약직으로 썼다.

팽목항 150m 길이의 방파제 난간에는 ‘언니 오빠 하늘나라로 가요’ ‘꼭 살아서 돌아와’ 같은 비원(悲願)을 담은 노란 리본이 무수히 매달려 바닷바람에 펄럭였다. 그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이었다. 뒤집어진 세월호 속에서 단말마적(斷末摩的)으로 허우적거리던 희생자들의 손이었다.―진도 팽목항에서

황호택 논설주간 채널A 시사프로 ‘논설주간의 세상보기’ 진행 hthwang@donga.com


#세월호#서해훼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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