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2030 新연애학개론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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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 진 가을, 서울의 한 공원. 여자는 남자친구(가운데)에게 안겨 있으면서 다른 남자(오른쪽)의 손을 꼭 잡고 있다. 그녀의 미소는 어느 남자 때문인지 알 수 없다. 여자는 남자친구가 좋으면서도 새롭게 찾아오는 사랑을 마다하지 않는다. 어차피 정답이 없는 연애, 무엇보다 내 행복을 최우선으로 하고 싶은 게 2030세대의 솔직한 마음이다. 이 연출 사진에는 모델 박은숙 씨(25·왼쪽)와 이도윤 씨(28·오른쪽) 등이 참여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낙엽 진 가을, 서울의 한 공원. 여자는 남자친구(가운데)에게 안겨 있으면서 다른 남자(오른쪽)의 손을 꼭 잡고 있다. 그녀의 미소는 어느 남자 때문인지 알 수 없다. 여자는 남자친구가 좋으면서도 새롭게 찾아오는 사랑을 마다하지 않는다. 어차피 정답이 없는 연애, 무엇보다 내 행복을 최우선으로 하고 싶은 게 2030세대의 솔직한 마음이다. 이 연출 사진에는 모델 박은숙 씨(25·왼쪽)와 이도윤 씨(28·오른쪽) 등이 참여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 “눈 감아 내게 안겨 내일은 또 없으니까.”

남녀 듀오가수 트러블메이커(김현아, 장현승)는 신곡 ‘내일은 없어’에서 이렇게 외친다. 뮤직비디오는 검은 란제리를 아찔하게 걸친 김현아와 상의를 벗고 근육을 뽐내는 장현승이 눈이 풀린 채 격정적인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 주를 이룬다. 이들은 일정한 주거 없이 캠핑카에서 살며 여기저기서 서로를 끌어안는다. 그리고 속삭인다. “지금 나에게 와 말해 줘. 우리에게 내일은 없어. 망설이지 마. 더 늦기 전에 나우(지금).”

‘내일은 없어’는 지난달 28일 출시 직후 단숨에 음원차트 1위에 오르며 젊은이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이 노래는 불안한 사회 속에서 자극을 좇아 각종 범죄를 저지르고 도피하며 살아가는 커플을 그린 미국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원제 Bonnie and Clyde·1967년)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들어졌다.

치솟는 전세금과 등록금, 극심해지는 취업난에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했다는 ‘삼포(三抛)세대’라 불릴 만큼 불안감을 안고 사는 2030세대에게 ‘우리에게 내일은 없으니 순간의 감정에 충실하자’는 메시지는 거부하기 싫은 유혹이다.

요즘 젊은이들 가운데는 스스럼없이 혼전에 이성과 함께 여행을 떠나고, 때론 ‘원 나이트’를 감행하며, 모텔을 일상적인 데이트코스로 여기고, 결혼 대신 동거를 택하는 이들이 많다. 그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연애를 하고, 잠자리를 하고, 만나고 이별하는 걸까? 2030세대의 내밀한 갈피 속으로 들어가 봤다. 》  

제1장 데이트

“밥먹고 영화보고 공부하고 사랑한다, 대낮 모텔에서”

결혼을 앞둔 남녀 커플들의 다양한 시선을 담은 영화 ‘결혼전야’의 주인공들. 21일 개봉한 이 영화는 결혼식 일주일 전에 서로의 충격적인 과거를 알게 되는 커플과 남자의 ‘신체적인 문제’로 결혼에 위기를 겪는 커플, 연애 7년차에 결혼을 준비하는 커플과 만난 지 얼마 안 돼 급하게 결혼하려는 커플의 갈등을 담으며 2030세대의 사랑 고민을 풀어냈다. 씨너스엔터테인먼트 제공
결혼을 앞둔 남녀 커플들의 다양한 시선을 담은 영화 ‘결혼전야’의 주인공들. 21일 개봉한 이 영화는 결혼식 일주일 전에 서로의 충격적인 과거를 알게 되는 커플과 남자의 ‘신체적인 문제’로 결혼에 위기를 겪는 커플, 연애 7년차에 결혼을 준비하는 커플과 만난 지 얼마 안 돼 급하게 결혼하려는 커플의 갈등을 담으며 2030세대의 사랑 고민을 풀어냈다. 씨너스엔터테인먼트 제공
“칸트는 틀렸다”

18세기 독일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는 쾌락 추구의 정당성을 인정하면서도 인간이 성행위를 하는 순간 스스로를 사물처럼 객체화하게 돼 인간의 주체적 존엄성을 해칠 수 있다고 봤다. 그래서 성기의 독점적 상호 사용을 전제로 하는 사회계약관계인 결혼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성관계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늘날의 2030세대는 칸트가 틀렸다고 확신한다. 이들은 성적 자기결정권을 중시하며 스스로를 성행위의 주체라고 여긴다. 20대 여대생도 방송에서 당당하게 남자친구와의 성관계를 이야기할 만큼 혼전순결은 구시대의 유물이 됐다. 남성이 결혼할 때 여성의 처녀성을 따지는 건 전근대적인 척결 대상이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이들은 결혼에도 연연하지 않는다. 이전에는 결혼하지 않은 남녀를 ‘완성되지 않았다’는 의미로 ‘미혼(未婚)’이라 불렀지만 이젠 결혼을 선택이라 보는 ‘비혼(非婚)’이란 표현이 자리 잡았다. 결혼하지 않아도 최고위직에 오를 수 있을 만큼 결혼과 성공이 무관한 시대다.

이제 갓 연애를 시작한 2030세대 커플은 ‘밥 먹고 차 마시고 영화 보는’ 데이트 코스를 밟다가 어느 정도의 친밀감이 형성되면 데이트 코스에 ‘모텔’이 자연스레 추가된다. 이들에게 모텔은 단지 성관계만을 위한 곳이 아니다. 영화관이나 찻집처럼 일상적인 데이트 장소 중 하나일 뿐이다.

요즘 웬만한 모텔은 호텔 부럽지 않은 호화시설을 자랑한다. 최신 영화와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대형 TV와 컴퓨터, 게임기는 기본이고 월풀과 사우나까지 구비돼 있는 곳도 많다. 각종 배달음식과 술을 대신 주문해 주는 ‘룸서비스’도 있다. 일부 대학생 커플은 조용한 공간에서 시험공부를 하기 위해 모텔을 찾기도 한다.

부모 세대는 자녀가 이성 친구를 만난다는 걸 알면 자칫 잠자리를 쉽게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조기 귀가를 독촉하지만 사실 이는 부질없는 짓이다. 이들의 성관계는 대부분 낮이나 초저녁에 이뤄지기 때문이다. 3, 4시간 동안 모텔 방을 빌리는 가격은 대략 3만, 4만 원인데 주말이면 서울 강남과 종로 등 번화가 모텔에는 낮부터 빈방을 찾기 힘들다. 서울 신촌 명물거리 일대 모텔촌은 커플들이 거리에 들어서기만 하면 사라진다고 해서 ‘버뮤다 삼각지대’라 불리기도 한다.

매년 크리스마스이브(12월 24일)나 성년의 날(매년 5월 셋째 월요일) 같은 ‘특별한 날’이면 모텔을 예약하기 위한 전쟁이 벌어지기 일쑤다. 이런 날이면 모텔들이 가격을 두 배 이상 올려 받으며 배짱 영업을 하는데도 방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하루 숙박을 하려면 15만 원 이하로는 방을 구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진수(가명·28) 씨는 “크리스마스이브를 완벽하게 준비하려면 한 달 전에는 레스토랑과 모텔을 예약해야 한다. 자칫 준비를 소홀히 했다간 인파에 밀려 아무것도 못하고 보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결혼 직후 떠나는 신혼여행이 연인끼리의 첫 해외여행일 거라는 고정관념도 이미 낡은 사고가 됐다. 2030 직장인 커플은 휴가철이면 동반 해외여행을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서로 휴가 기간을 맞춰 3∼5일 정도의 일정으로 동남아나 홍콩, 일본 등 가까운 휴양지를 찾는데 소득이 비슷하다면 남녀가 비용을 절반씩 내는 편이다. 부모에게 “동성 친구와 해외여행을 다녀오겠다”고 말해놓곤 친구와 찍은 사진 한 장 내밀지 못하면 애인과 밀월여행을 다녀왔을 가능성이 높다.

허승주(가명·28) 씨는 사귄 지 세 달 된 여자친구와 추석 연휴 때 4박 5일 동안 동남아 휴양지 코타키나발루를 다녀왔다. 하루 정도는 신혼여행처럼 풀빌라에서 보내고 싶어서 나머지 일정은 값싼 호텔에서 묵으며 경비를 아꼈다. 코타키나발루는 신혼여행지로 각광받는 곳이지만 결혼했다고 보기엔 어린 것 같은 젊은 커플들이 더 많이 눈에 띄었다. 허 씨는 “달콤한 여행이었지만 솔직히 결혼하면 신혼여행의 감흥이 덜할까 걱정되기는 한다”고 말했다.  

▼ 제2장 동거 ▼

신혼의 단꿈-미혼의 자유 두토끼 잡기 “우리 동거해요”


편안한 옷차림의 한 커플이 다리를 겹친 채 침대에 나란히 누워 있는 모습. 영락없는 신혼부부 같지만 요즘은 결혼하지 않고 함께 사는 동거 남녀가 늘어나면서 대학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이 사진은 연출한 장면이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편안한 옷차림의 한 커플이 다리를 겹친 채 침대에 나란히 누워 있는 모습. 영락없는 신혼부부 같지만 요즘은 결혼하지 않고 함께 사는 동거 남녀가 늘어나면서 대학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이 사진은 연출한 장면이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우리가 동거하는 이유”

우리 사회 전체 분위기로 보면 동거는 ‘19금’스러운 단어로 인식된다. 포털사이트에서도 동거라는 단어를 검색하려면 성인인증을 받아야 한다. 결혼하지 않은 총각처녀가 한집에서 산다는 ‘모순’이 주는 야릇함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2030세대에게 동거는 모순이 아니라 현실이다. 서로 사랑하는 연인이 독립적인 공간이 있고 동거를 할 수 있는 상황이 되는데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다. 이제 서울 대학가에서는 지방에서 올라온 커플끼리 동거하는 이야기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윤승우(가명·29) 씨는 3년여 전부터 사귄 여자친구(25)와 올 2월부터 서울의 원룸에서 동거에 들어갔다. 둘은 당초 각각 서울과 지방에 거주하며 장거리 연애를 했다. 그러다 윤 씨가 직장에 다니며 모은 돈과 대출금으로 원룸을 구해 독립했다. 마침 지방에서 학교를 졸업한 여자친구도 비슷한 시기에 서울 근교 도시로 올라와 혼자 살면서 취업 준비를 하게 됐다. 이후 여자친구가 윤 씨 원룸에서 아침을 맞는 날이 잦아졌고 자연스럽게 아예 함께 살자는 얘기가 나오게 됐다.

윤 씨는 동거를 하면서 ‘신혼의 단꿈’을 누리고 있다. 동거는 그동안 여자친구와 따로 살며 만나온 2년 반 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행복을 줬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매일 아침 눈을 뜨고 매일 밤 같이 잠들 때마다, 여자친구와 장을 보러 가서 함께 쓸 생활용품을 고를 때마다 행복은 나날이 커져갔다. 그는 “따로 살 때는 주말 밤마다 서울 번화가에서 (여자친구와) 빈 모텔 방을 찾으려고 이곳저곳 전전하는 게 짜증났는데 동거를 하니 모텔비를 아끼면서도 늘 함께 있을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같이 살아보지 않으면 몰랐을 부분도 많이 알게 됐다. 윤 씨는 여자의 머리카락이 그토록 많이 빠진다는 걸 처음 알았다. 동거 이후 청소기를 돌리는 날이 늘어났고 3주에 한 번씩은 꼭 화장실 배수구를 청소해야 한다. 여자친구는 젖은 수건을 꼭 말린 뒤에 빨래통에 집어넣는데 그는 그러지 않아 다투기도 했다. 여자친구가 들어온 이후엔 집에서는 담배를 못 피우게 됐다. 그래도 동거의 행복에 비하면 소소한 애로사항이다.

이들은 둘 다 ‘서로 좋아하면 동거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서로의 부모에게 동거 사실을 밝히지는 못했다. 각자의 부모님이 예고 없이 집을 찾아올지 몰라 여자친구의 수도권 전세방에 가구를 일부 남기고 매월 관리비를 내가며 유지하고 있다. 남자인 윤 씨는 친한 친구들에게 동거 사실을 알렸지만 여자친구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아직은 동거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여성에게 더 불리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동거는 신혼과 다를 바 없는 달콤함을 즐기면서도 결혼에 따르는 책임감에서 자유롭다는 점에서 2030세대의 호응을 얻고 있다. 다만 한번 동거를 시작하면 결별하기 전까지 다시 물리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걸 간과해선 안 된다. 동거 남녀는 법적으론 혼인 관계가 아니기에 헤어지더라도 법적 부담 없이 새 출발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살을 맞대고 살았던지라 헤어지면 이혼과 다를 바 없는 심적 고통을 겪는다. 몸이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연애 경험이 쌓여갈수록 이전의 연인과 성적인 부분까지도 비교할 수밖에 없다. 또한 성격 차이로 불화를 겪어도 ‘몸 정(情)’ 때문에 헤어지지 못하는 연인들도 의외로 많다. 영화평론가 허지웅 씨(34)는 한 방송에서 ‘살면서 가장 슬펐던 순간’으로 ‘여자친구와 처음 동거했던 집에서 짐을 빼는 순간’을 꼽았다.

하지만 이처럼 개방적인 시각으로 동거를 바라보면서도 새 애인의 동거 전력에는 이중 잣대를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 타인의 동거에 대해선 무한한 이해를 하던 사람도 자기 애인의 동거 전력에는 민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애인의 과거’를 어느 선까지 받아들일지는 개인차가 크겠지만 대부분 ‘이전 애인과의 성 경험은 당연히 이해하지만 동거 경험은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데엔 공감대를 가진다. 특히 자신이 동거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면 더욱 그렇다.

동거를 성공적인 결혼생활을 위한 전초 단계로 보는 시각도 있다. 황지민(가명·27·여) 씨는 결혼 전에 꼭 일정 기간 함께 살아봐야 한다고 믿는다. 그가 스물셋에 동갑내기 남자친구와 불타는 사랑만 믿고 결혼한 뒤 얻은 교훈이다.

그는 결혼이 연애의 연속이라 믿었다. 그래서 부모님과 주변의 만류에도 결혼을 강행했지만 결혼은 연애와는 너무 달랐다. 사소한 습관이 그의 삶에 고스란히 영향을 미쳤다. 연애 시절엔 남자친구가 컴퓨터게임에 빠져 있어도 황 씨의 삶에 별다른 피해를 주지 않았지만 결혼 이후엔 삶이 피폐해지는 원인이 됐다. 남편은 안정된 직장을 구할 생각도, 아이를 돌볼 생각도 없어 보였다.

그는 결혼이 주는 책임감과 아이 생각에 혼인 관계를 유지해 보려고 갖은 애를 썼지만 결국 3년 만에 갈라섰다. 어린 나이에 이혼녀라는 낙인이 찍히는 게 두려워 이미 끝나다시피 한 결혼 생활을 되돌려보려 발버둥쳤지만 상처만 남은 셈이다. 황 씨는 “결혼을 결심했을 때 엄마가 ‘1년만 살아보고 결혼해도 늦지 않다’며 말렸었는데 그 말을 듣지 않은 게 너무 후회스럽다”며 “결혼해서 보니 나쁜 습성은 절대 바뀌지 않더라. 다음엔 꼭 살아보고 결혼하겠다”고 말했다.  

▼ 제3장 결혼 ▼

“노년의 고독보다 결혼의 구속이 더 겁나… 非婚 결심”

2030세대가 말하는 "결혼 안 하는 이유"
“우리가 결혼 안 하는 이유”

결혼 적령기라 불리는 20대 후반∼30대 중반 남녀라면 누구나 ‘결혼은 왜 하는지’를 고민해 본다. 결혼을 앞두고 있는 남녀도 ‘내가 결혼을 정말 하고 싶어서 하는 건지, 결혼 적령기에 애인이 있어서 하는 건지’ 한 번쯤은 자문해보기 마련이다.

지금까지는 거의 모두 고민 끝에 당위적으로 결혼을 선택해왔다. 하지만 2030세대에선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25∼39세 중 결혼하지 않은 인구 비율은 2000년 27.4%에서 2010년 44.3%로 급증했다. 그들이 비혼을 결심한 이유를 들어봤다.

① “경제적으로 자유롭고 싶다”

강민찬(가명·28) 씨는 결혼을 하면 아내가 경제권을 쥐고 남편에게 용돈을 적게 주는 게 마치 바람직한 가정상인 양 인식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부당하다고 느낀다. ‘여자가 알뜰살뜰 가정경제를 관리해야 한다’는 인식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설사 자신이 경제권을 갖기로 합의하고 결혼한다 해도 아내가 다른 가정과 비교하면서 불만을 가질 텐데 굳이 결혼을 해서 그런 단초를 만들고 싶지 않다는 게 솔직한 마음이다.

그동안 최우선 가치로 두고 살아온 개인의 자유의지를 침해당하기 싫은 것도 비혼을 결심한 이유다. 그는 아무리 예쁜 여자라도 3, 4년 이상 만나면 무덤덤해져서 다른 여자에게 눈이 돌아가는 게 남자의 본능이라고 믿는데 억지로 결혼이라는 제도에 묶여 감정의 자유를 침해당하기 싫다.

그의 연애 롤모델은 프랑스 철학자 장폴 사르트르와 작가 시몬 드 보부아르 커플이다. 이 커플은 1929년 처음 만나 평생을 ‘계약결혼’ 관계로 살았다. 이들의 계약결혼은 △서로를 사랑하면서 타인과도 사랑할 수 있다 △서로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서로 경제적으로 독립한다는 원칙 아래 이뤄졌다. 강 씨는 머잖아 ‘한국의 보부아르’가 나올 만큼 결혼에 대한 관념이 바뀔 거라 믿는다.

“기혼자들은 30∼50대를 희생해 왔으니 노후에 가족에게 보상받는 게 당연하죠. 하지만 솔직히 요즘 노인들을 보면 가족이 있다고 꼭 행복해 보이진 않아요. 제가 노인이 되는 시대에는 과연 자식이 부모를 봉양할까요? 전 확실한 행복이 보장되는 선택을 한 겁니다.”

② “결혼이 주는 책임감이 싫다”

결혼은 원칙적으로 ‘사랑의 결실’이라 여겨진다. 그래서 배우자와의 유일한 사랑을 법적으로 의무화한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이름만으로 정당화하기엔 결혼이 부과하는 책임감이 너무나 크게 느껴진다는 게 2030세대의 생각이다.

정혜진(가명·28·여) 씨는 누군가의 ‘아내’ ‘엄마’ ‘며느리’로서 역할을 맡고 싶지 않아 비혼을 택했다. 직장생활하며 자기 한 몸 건사하기도 버거운 데다 결혼하면 두 배로 늘어나는 가족도 부담스럽다. 그는 자녀를 낳고 싶지도 않다. 자신이 절대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생명체를 갖는 게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결혼한 친구가 낳은 아이를 보면 정말 사랑스러워요. 하지만 그게 전부예요. 굳이 제가 아이를 낳아서 자발적으로 무한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을 만들긴 싫어요.” 남들에겐 이기적으로 보일까봐 내색하진 않지만 이게 솔직한 마음이다.

③ “부모를 보니 결혼이 싫어진다”

최윤진(가명·26·여) 씨가 비혼을 결심한 건 열두 살 때였다. 당시 그는 가정불화를 참지 못하고 짐을 싸서 뛰쳐나가는 어머니를 말리려고 캐리어를 꽉 끌어안았지만 상처가 컸던 어머니는 돌아서지 않았다. 그는 어머니의 캐리어에 매달려 아파트 복도에 질질 끌려가면서 절대 결혼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다. 부모님처럼 살기는 싫었다. 딸의 애원에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왔지만 이후에도 별로 달라진 건 없었다.

최 씨의 부모는 아직 결혼생활을 이어가고 있긴 하지만 최 씨의 눈에는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 때문에 억지로 부부관계를 유지하는 거 같아 속상하기도 하다. 그는 최대한 빨리 돈을 모아서 집을 벗어나 독립하는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결혼이 무서워지게 만드는 매스미디어

지난달 초 전체 이용자의 70%가 2030세대로 알려진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친자확인’이 최대 화두였다. 논란은 두 자녀의 아버지인 ‘쿠○○○’라는 누리꾼이 아내의 휴대전화를 몰래 봤다가 외도를 확인했다는 글을 올리면서 시작됐다. 그가 아내에게 외도를 추궁하고 아내가 잘못을 빌며 시인하는 과정이 담긴 카카오톡 메시지 전체를 증거로 공개했다.

그는 평소 게시판에 아내 자랑을 자주 해왔기에 관심은 더욱 뜨거웠다. 누리꾼들은 “아내를 절대 용서하지 마라. 혹시 모르니 두 자녀의 친자확인 검사도 해봐야 한다”며 그를 부추겼다. 이에 자극받은 그는 둘째 아들부터 친자확인을 했고 얼마 뒤 충격적인 결과를 공개했다. 네 살 난 둘째 아들이 친자가 아니라며 친자확인증명서를 찍어 올린 것이다. 이후 그는 아내와의 이혼 과정, 재산 분할에 대한 고민, 간통죄 고소 과정을 담은 글을 실시간으로 올렸다. 그는 “검사 결과 첫째는 친자가 맞다고 한다.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고 그저 아무 생각이 없다”는 댓글을 마지막으로 더이상 글을 남기지 않았다. 이혼으로 이르는 모든 과정을 생중계와 다름없이 지켜본 누리꾼들은 “이런 거 보면 정말 결혼하기 무섭다” “이미 결혼한 사람도 꼭 친자확인 해봐야 한다”며 분개하는 글을 수천 개 쏟아냈다. 그의 사연은 인터넷에 일파만파로 퍼졌다.

방송도 결혼을 경험하지 않은 2030세대에게 선입견과 두려움을 심어주는 콘텐츠를 쏟아낸다. ‘막장 불륜’이나 ‘고부 갈등’은 웬만한 드라마에서 기본적으로 차용하는 이야기 구조다. 최근에는 유독 아내와의 성관계만 불가능한 남성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까지 나오며 ‘마누라성 발기부전’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기혼 연예인들은 방송에 나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결혼하지 말라”는 말을 서슴없이 던진다. 그게 현실의 반영이라는 걸 잘 알기에 2030세대는 결혼이 두렵다.  

▼ 20대 미혼기자가 2030 취재를 마치며 ▼

기성세대엔 낯선 분방함 이면엔 높아진 자유-성평등의식


성(性)은 태고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 아무리 시대가 흘러도 변하지 않을 인간 생활의 주요한 대목이다. 하지만 그 성을 누리고 즐기는 행태는 그 어떤 사회적 분위기와 문화보다도 빠르게 변화한다. 요즘 2030세대 자녀, 후배, 부하직원들의 연애 문화를 바라보는 기성세대들은 적잖은 낯섦을 느낄 것이다.

그렇다면 기성세대의 생각대로 2030세대는 정말 문란한 성생활에 빠진 철부지인 걸까. 20대인 기자가 다수의 20대 남녀를 만나면서 느낀 점은 ‘그렇지만은 않다’다.

요즘 2030세대는 개인의 자유를 최우선시하는 문화 속에서 자랐기 때문에 연애관이 자유로운 건 사실이다. 하지만 기성세대의 우려처럼 무분별한 방종의 관념은 분명 아니다. 오히려 자유로울 권리에 대한 의식이 향상된 결과물이라 봐야 한다. 성 평등 의식도 강하다. 남자가 이전 세대처럼 여성의 혼전순결을 따지면 “그러는 넌 한 번도 여자와 잔 적 없느냐. 문제 있는 거 아니냐”는 핀잔을 듣기 십상이다.

2030세대 중에서 결혼은 안 하고 평생 연애만 하며 살고 싶은 남녀가 많아지는 것도 이들이 철이 없어서가 아니라 여러 여건상 비혼으로 사는 게 더 이익이고 행복하다고 이성적으로 판단해서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기성세대는 이를 사회 병리적 현상으로만 보고 ‘결혼을 안 하는 거 보니 뭔가 문제가 있다’고 치부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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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거에 대한 인식이 점점 개방적으로 변하고 있는 데다 독신으로 살면서 인공수정을 통해 아이를 낳는 이들이 나타나면서 결혼을 해야 자녀를 낳을 수 있다는 고정관념도 서서히 깨지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프랑스처럼 동거 커플이 낳은 ‘혼외자녀’가 신생아의 절반을 넘는 인구구조가 우리의 이야기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취재를 마치면서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는 말이 상식이 되는 시대가 그리 멀지만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동주 기자 djc@donga.com
#연애학개론#연애#결혼#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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