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향의 달콤쌉싸름한 철학]안나 카레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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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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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감정 중 가장 덧없는 것이 사랑의 감정이라면서요. 그건 그만큼 사랑이 강렬한 것이기도 하다는 뜻이겠습니다. 전 존재를 던지게 만드는 그 시간을 모른다면 덧없다는 고백조차 나오지 않을 테니까요. 그 강렬한 사랑의 덫에 걸려보신 적이 없으신가요? 그렇다면 톨스토이의 안나가 왜 그렇게 아름다운 여인인지 죽어도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안나 카레니나’가 다시 영화로 만들어진다면서요? 그나저나 어느 여배우가 있어 안나를 비비언 리처럼 잘 소화할 수 있을까요? 키라 나이틀리가 비비언 리를 넘어설 수 있을까요? 눈빛과 몸짓과 말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안나 그 자체였던 비비언 리를.

줄거리상으로 보면 ‘안나 카레니나’는 남편 있고 자식 있는 여인이 멋진 남자를 만나 무분별한 열정에 빠져드는 이야기입니다. 잃을 것이 많은 귀족집 유부녀가 뭐가 부족해서 불륜에 빠질까요? 불륜의 대가는 엄청났습니다. 영혼을 빛나게 해줬던 남자도 잃고, 든든했던 가족도 잃고, 목숨도 잃습니다. 톨스토이는 그런 안나를 응징한 것이 아니라 사랑한 겁니다. 그리하여 신분 따지고 예절 따지고 돈 따지고 명예 따지느라 편견만 많아진 귀족의 삶을 고발하면서 사랑에 솔직한 여인에게 생명을 준 것입니다.

열정적인 여자 안나의 남편은 의무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설교와 통제에 능한 그는 오랫동안 느낌을 억압하고 살아온 남자 같습니다. 오죽하면 안나가 그 사람은 남자도 아니고, 인간도 아니라고, 그저 인형이고 기계라고 하겠습니까? 자기 느낌을 억압하고 살아온 사람은 가까운 이의 느낌도 존중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8년 동안 내 생활을 압박했고, 나의 생기를 억눌렀고, 무얼 하든 나를 억눌렀어요.”

느낌을 모르는 남자와 사는 열정적인 여자가 “당신의 말 한마디 몸짓 하나를 어떻게 잊을 수 있냐”며 다가오는 열정적인 브론스키 백작을 어찌 거부할 수 있었겠습니까? 아니 거부하기 싫었을 것입니다. 그러고 나니 이제 안나의 사랑은 목숨 건 사랑입니다.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으니까요. 목숨 건 사랑보다 두루두루 원만한 사랑이 익숙한 나이에도 사랑에 목숨 건 안나를 생각하면 가슴 한쪽이 시린 건 목숨 건 사랑을 모르고서는 진짜 두루두루 원만한 사랑을 할 수 없기 때문인가 봅니다.

사랑의 운명을 보여주는 상징들이 있지 않나요? 꿈으로 오기도 하고, 사건으로 오기도 하는 것! 사랑 없이도 살 수 없었고, 사랑만으로도 살 수 없었던 안나의 칼끝 운명은 사건으로 왔습니다. 브론스키에게 한눈에 반하던 날 열차 사고로 한 사람이 죽는데, 그 상징처럼 마지막에 안나가 기찻길에 몸을 던지는 것도 생각해볼 만한 대목입니다. 당신의 사랑은 어떤 이미지로 구현되고 있나요?

그나저나 사랑해서는 안 되는 상황에서 사랑한 여자는 무서운 여자일까요, 어리석은 여자일까요? 만약 두 선택지뿐이라면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과 불행하시겠습니까?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편안하시겠습니까? 사랑도 지키지 못하고, 가족도 지키지 못하고 마침내 자기 자신도 지키지 못한 안나가 적당히 모든 것을 지키며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묻습니다. 적당히 사는 것을 용서하지 않는 삶에 대해 네가 알고 있는 게 무엇이냐고.

그러고 보니 발타사르 그라시안의 저 문장들은 안나를 위한 문장 같습니다. “사랑이 깊을수록 우리가 겪게 될 고통 또한 커진다. 그렇지만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랑을 포기할 수는 없다. 사랑을 모두 버린다면 우리의 영혼은 차가운 돌덩어리와 같을 테니까.”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안나 카레니나#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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