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묵의 ‘한시 마중’]<17>대장부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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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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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삭부시(橫(삭,소)賦詩)라는 말이 있습니다. 조조(曹操)와 조비(曹丕) 부자가 말을 타고 창을 비껴 쥔 채 시를 지었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로, 문무(文武)를 겸비한 인물이 전장에서 글을 짓는 호쾌함을 가리킵니다.

정도전(鄭道傳·1342∼1398)은 젊은 시절 반대파에 몰려 전라도 나주에 유배되었고 유배에서 풀려난 후에도 수도인 개경으로 가지 못하였습니다. 삼각산 아래 초막을 짓고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살려 하였지만 그를 시기하던 재상이 방해하였습니다. 부평으로, 김포로 떠돌던 정도전은 모종의 결심을 하고 1383년 함흥(咸興)으로 이성계(李成桂)를 찾아갑니다. 이 작품은 이 무렵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철령은 함경도로 가는 길목입니다. 칼날처럼 서 있는 고산준령(高山峻嶺), 그리고 하늘과 바다가 잇대어 있는 망망대해(茫茫大海), 이것이 철령에서 바라보이는 풍경이겠지요. 이 풍경을 배경으로 하여 허옇게 센 귀밑머리가 바람에 흩날리는 노장부가 말을 치달리는 모습이 등장합니다. 서거정(徐居正)의 ‘태평한화(太平閑話)’에 정도전의 꿈이 실려 있습니다. “북방에 눈이 막 휘날릴 때 가죽옷을 입고 준마에 올라타서 누런 사냥개를 끌고 푸른 사냥매를 팔뚝에 얹은 채 들판을 달리면서 사냥을 하는 것이 가장 즐겁소.” 이러한 호쾌한 장부의 기상이 이 시에서 절로 느껴집니다.

이 시의 호탕함이 마음을 시원하게 합니다만, 가슴속에 혁명의 불꽃이 타오르기 전 고향에서 지은 작품에서, “대숲을 보호하려 길을 둘러 내고, 산을 아껴 누각을 작게 세웠네(護竹開迂徑, 憐山起小樓)”라고 한 말도 멋이 있습니다. 숲을 베어 길을 내고 흉물스럽게 스카이라인을 해치면서 고층건물을 세워대는 현대인에게 경종을 울리기 때문입니다.

이종묵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한시#대장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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