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성 전문기자의&joy]임실 옥정호로 떠나는 봄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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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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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섬 굽어보며 걷는 물안개길, 코끝에 봄내음 스치고…

임실 옥정호 물안개길에서 바라본 붕어섬. 사방천지가 아슴아슴 아득하다. 한낮의 뿌연 봄기운이 몽환적이다. 저 멀리 붕어섬 붉은 황토밭에 기름이 자르르하고, 옥정호수의 푸른 물은 봄빛에 풀려 나른하다. 그렇다. ‘물안개처럼/몇 겹의 인연이라는 것도/아주 쉽게 부서지더라’(류시화 시인) 논두렁 밭두렁 마른 풀 타는 냄새. 스멀스멀 피어 오르는 두엄자리 김. 하늘하늘 연초록 보리싹. 옥정호 아래 섬진강물 수런거리는 소리. 가슴이 뻐근하다. 임실=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임실 옥정호 물안개길에서 바라본 붕어섬. 사방천지가 아슴아슴 아득하다. 한낮의 뿌연 봄기운이 몽환적이다. 저 멀리 붕어섬 붉은 황토밭에 기름이 자르르하고, 옥정호수의 푸른 물은 봄빛에 풀려 나른하다. 그렇다. ‘물안개처럼/몇 겹의 인연이라는 것도/아주 쉽게 부서지더라’(류시화 시인) 논두렁 밭두렁 마른 풀 타는 냄새. 스멀스멀 피어 오르는 두엄자리 김. 하늘하늘 연초록 보리싹. 옥정호 아래 섬진강물 수런거리는 소리. 가슴이 뻐근하다. 임실=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모든 좋은 날들은 흘러가는 것 새벽의 물안개처럼 저녁노을처럼 좋은 날들은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처럼 어디론가 새나가지 덧없다는 말처럼 덧없이 속절없다는 말처럼이나 속절없이 수염은 희끗해지고 짓궂은 시간은 눈가에 내려앉아 잡아당기지 어느덧 모든 유리창에 먼지가 앉지 흐릿해지지 어디서 끈을 놓친 것일까……
잘 가렴 잘 가렴 눈물겨운 날들아
빗속을 어깨 겯고 너희는 떠나
뒤돌아보지 말고 살아가거라
-김사인의 ‘화양연화(花樣年華)’에서
화양연화(花樣年華).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 그 좋은 날들은 어김없이 흘러간다. 아스라이 피어오르는 새벽 물안개처럼, 그렇게 아련하게 사라진다. 도대체 그 좋았던 시절의 끈은 어느 순간 놓쳐버렸을까. 언제 손아귀를 스르르 새나갔을까.

1바람이 알싸하면서도 달콤하다. 섬진강 물 주름살이 일렁인다. 야윈 강물에 살이 올랐다. 섬진강 기슭 매화가 꽃망울을 드문드문 열었다. 뼈만 남은 검은 가지에 하나 둘 화르르 꽃등불을 켜고 있다.

옥정호(玉井湖)는 섬진강 상류에 있는 인공호수다. 전북 임실군 운암면에서 정읍시 산내면에 걸쳐 있다. 정읍시와 김제시에 수돗물을 공급해 주는가 하면, 호남평야의 목을 축여준다. 수력발전으로 전기도 만든다. 물을 가득 담으면 4억3000만 t이나 된다.

진안 마이산 데미샘에서 시작된 섬진 강물이 임실군 강진면 옥정리에서 막힌다. 그 댐이 1965년에 만든 섬진강다목적댐이다. 이로 인해 1926년 일제강점기 때 세운 운암댐은 그 기능을 잃었다.

옥정호는 새벽 물안개가 으뜸이다. 사우나 수증기처럼 자욱하다. 산허리를 감싸고도는 구름 띠는 덤이다. 몽환적이다. 그 사이로 언뜻언뜻 푸른 호수물이 보인다. 호수 가운데엔 메뚜기 이마빡만 한 ‘외앗날 섬’이 있다. 안팎으로 구불구불 영락없는 금붕어 모양이다. 카메라맨들은 그냥 ‘붕어섬’이라고 부른다. 사진작가들은 대부분 국사봉 전망대에서 앵글을 맞춘다.
‘세월이 이따금 나에게 묻는다/사랑은 그 후 어떻게 되었느냐고/물안개처럼/몇 겹의 인연이라는 것도/아주 쉽게 부서지더라’
-류시화 ‘물안개’

임실 옥정호 호숫가를 따라 물안개길이 열렸다. 구불구불 호숫가를 따라 용운리에서 마암리까지 13km. 느릿느릿 걸어도 4시간이면 충분하다. 출발은 보통 마암리 자연산장 입구에서 시작한다. ‘아름다운 한울휴게소’를 지나면 바로 나온다. 휴게소 벽엔 ‘도시락도 가져와서 드시고 가세요’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길은 험하지 않다.

58개의 이정표가 곳곳에 서 있다. ‘51번 육모정, 23번 용동마을’식으로 번호만 알면 어느 지점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산과 호수, 마을이 있는 듯 없는 듯 어우러졌다. 하늘이 아슴아슴 아득하다. 논두렁 밭두렁엔 어린 새싹들이 우우우 올라온다. 젖먹이들 잇몸에 돋는 하얀 젖니 같다. 여기저기 논두렁 마른 풀 타는 냄새가 구수하다. 늙은 농부들은 농사채비에 부산하다. 구수한 거름냄새. 봄바람이 마른 덤불을 머리째 끌고 위로 솟구쳤다가, 핑그르르 땅바닥에 내동댕이친다.

옥정저수지는 맑고 푸르다. 눈물 가득한 ‘우멍 눈’이다. 산과 산 사이 움펑한 눈물샘이다. 참고 기다리다 마침내 터져버리는 설움보따리이다. 저수지는 과묵하다. 촐랑대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기다릴 뿐이다. 크고 작은 도랑물 소리 모두 끌어안고, 가슴속 저 밑바닥에 홍어처럼 푹푹 삭힌다. 그러다가 ‘장마철 수문 열면 탱탱 불은 슬픔들 터져 나온다.’(김평엽 ‘금광 저수지’)

붕어섬에는 2, 3가구 주민이 들락거리며 산다. 밭 8, 9두락에 고추 배추 무 농사를 짓는다. 보통 땐 호수를 건너 가까운 동네에서 살다가 농사철엔 한동안 머문다. 급한 볼일이 있거나 장보러 뭍으로 나올 땐 작은 배를 이용한다. 붕어섬은 작은 왕국이다.

물안개길 걷기가 끝나면 가까운 국사봉 전망대에 들르는 것은 필수코스. 국사봉은 해돋이 관찰 명소이기도 하다. 푸른 호수 위로 불끈 떠오르는 붉은 해는 해맑다. 국사봉휴게소∼(0.6km)∼국사봉∼(3.1km)∼내량삼거리∼(1.6km)∼기바위∼(1.3km)∼사양마을∼(1.8km)∼지천리∼(6.7km)∼월면리∼(1.7km)∼학암마을로 이어지는 옥정호마실길도 봄냄새가 물씬 난다.

국사봉 전망대에서는 붕어섬과 옥정호가 한눈에 잘 보인다. 하지만 그곳에서 찍는 사진은 어슷비슷하다. 구도가 거의 똑같다. 다른 앵글을 잡으려면 국사봉(475m)을 거쳐 오봉산 정상(513.2m)으로 가야 한다. 주차장∼(0.59km)∼국사봉∼(1.52km)∼오봉산. 오봉산에선 붕어섬 꼬리가 정면으로 보인다. 꼬리가 옆에서 보였던 전망대 앵글과 완전히 다르다. 물안개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사이로 붕어꼬리가 퍼더덕! 팔짝 뛰어오른다. 정녕코 봄이로소이다. 붕어꼬리가 슬쩍 호수 밖으로 삐져나온다. 파천황이다.


■ 임실의 치즈 맛, 그냥 갈 수 없잖아

임실치즈테마파크
임실치즈테마파크
치즈는 ‘우유의 사리’다. 우유는 금방 상한다. 하지만 치즈는 몇 년 동안 두고 먹을 수 있다. 우유를 숙성시키면 치즈가 된다. 한국의 된장 청국장과 비슷하다. 우리나라 각 가정의 장맛이 다르듯이 서양의 치즈 맛도 집집마다 다르다. 어떻게 발효되는가에 따라 맛과 색이 달라진다.

임실(任實)은 ‘씨앗이 튼실하게 영그는 동네’라는 뜻. 한국 치즈의 발상지가 바로 전북 임실이다. 1967년 임실성당의 벨기에 출신 지정환 신부가 주민들의 소득 증대를 위해 처음 생산했다. 서양에서 산양 2마리를 들여와 그 젖으로 시작했다. 지 신부는 임실치즈를 성공시킨 뒤 관련 사업을 모두 주민들에게 넘겼다. 이러다보니 상표권 등록이 안 돼 전국 곳곳에 짝퉁이 많다.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지는 웬만한 피자엔 ‘임실치즈’라는 말이 안 들어가는 곳이 거의 없다.

임실에 가면 자연치즈 만들기 체험이 가능하다. 임실N치즈를 만들어 볼 수 있는 임실치즈테마파크(www.cheesepark.kr 063-643-2300), 모차렐라치즈의 늘려주는(스트레칭) 작업을 할 수 있는 임실치즈마을(http://cheese.invil.org 063-643-3700)이 그곳이다. 임실치즈피자마을(www.cheesecook.co.kr 063-642-2700), 아펜젤치즈체험장(www.appenzell.co.kr 063-644-2009)도 있다. 경운기 타기, 소달구지 타기, 송아지 우유 주기, 풀썰매 타기 등도 곁들여진다.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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