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최영해]한미 FTA 물거품 돼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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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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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해 워싱턴 특파원
최영해 워싱턴 특파원
10월 12일 오후 6시 한덕수 주미대사는 미 의회 의사당 하원 본회의장 3층 방청객 자리에 앉아있었다. 본회의장 2층의 하원의원 좌석 435석은 의원들로 빼곡히 채워졌다. 4년 이상을 끌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행법안 표결이 진행되는 순간이었다. 표결이 시작되자 의원들은 삼삼오오 자리에서 일어나 기자석 뒤편 벽면에 레이저빔으로 비치는 개표 결과를 주시했다. 공화당이 다수인 하원에서의 본회의 표결은 한미 FTA 비준의 사실상 최종 관문이었다.

투표를 시작하자마자 전광판엔 찬성과 반대 숫자가 실시간으로 떴다. 10여 초가 흐르자 찬성 77표, 반대 35표였다. 더블 스코어로 찬성이 많았다. 투표한 지 1분이 흘렀을 때 찬성 192표, 반대 102표. 시간이 지나도 찬반 비율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5분 동안 진행된 투표는 찬성 278표, 반대 151표로 마감했다. 하원의원들은 방청석에 앉아있던 한 대사를 발견하고 엄지손가락을 올리며 축하했다. 본회의장에선 박수가 터져 나왔다. 한 대사는 이 자리에서 한미 FTA를 통과시키기 위해 풀뿌리 운동을 주도한 황원균 전 북버지니아 한인회장을 떠올렸다.

백악관은 21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한미 FTA 이행법에 서명하는 자리에 한 대사와 황 전 회장을 초청했다. 황 전 회장은 보잉 회장과 제록스 회장, 다우 회장 등 굴지의 글로벌기업 최고경영자(CEO)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서명하는 오바마 대통령을 뒤편에서 지켜봤다.

한미 FTA가 미국 내에서의 반대를 무릅쓰고 의회에서 압도적인 찬성으로 비준될 수 있었던 데는 주미 대사관의 노력이 컸다. 여기에다 황 전 회장이 이끈 한인 교포사회의 풀뿌리 운동도 큰 힘을 보탰기에 가능했다.

미 의회가 한미 FTA에 냉소적이었던 2009년 11월 황 전 회장은 버지니아 주 비엔나에 있는 한식당 우래옥에서 200여 명의 한인 교포와 함께 한미 FTA 버지니아 주 비준준비위원회를 발족했다. 한미 FTA 비준을 위한 1만 명 서명운동의 출발점이었다.

10여 명의 비준 준비위원은 한인들이 많이 모이는 페어팩스 시의 한인마트와 교회 성당 등을 돌아다니며 서명을 받았다. 다른 직업을 갖고 있는 이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지만 2009년 11월부터 올 8월 중순까지 이들은 10여 차례 만나 서명운동을 벌여 2200명으로부터 서명을 받았다. 황 전 회장은 “처음엔 마치 동냥하는 것 같아 쑥스럽기도 했다”며 “하지만 한국 경제에 도움이 되는 한미 FTA를 위해서라면 이런 것쯤이야 고생도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한미 FTA가 오히려 미국의 일자리를 빼앗아 간다는 미국인에겐 “불황에 빠진 미국이 살아나려면 한미 FTA만이 살길”이라며 소매를 부여잡고 설득했다. 한인마트를 찾은 중국인이나 히스패닉계에겐 “한미 FTA만 되면 음식료품 값이 10% 이상 떨어질 것”이라며 서명을 받아냈다. 7월엔 뉴욕과 보스턴 텍사스 로스앤젤레스 등에서 한국계 유권자들이 자비를 들여 미 의회 의원실을 찾아 압력을 가하기도 했다. 한미 FTA 비준에 관계있는 의원들의 후원 행사에도 빠짐없이 참석해 적게는 250달러에서 최대 법정한도인 2400달러까지 후원금을 냈다. 황 전 회장은 “이제는 한국 차례”라고 말했다.

한 교포는 한미 FTA 비준이 한국 국회에선 한 발짝도 못 나가자 “이젠 지지부진한 한국 국회를 설득하는 캠페인을 우리가 나서서 해야 할 것 같다”며 황 전 회장에게 국회의장 e메일 주소를 건넸다고 한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진 집권 여당이 행여 내년 국회의원 선거를 의식해 한미 FTA를 미룬다면 소매를 걷어붙이고 풀뿌리 운동을 벌인 교포들을 볼 면목이 있을까. 이역만리에서 한미 FTA를 위해 애쓴 이들의 노력이 물거품이 돼선 안 된다.

최영해 워싱턴 특파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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