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성 전문기자의&joy]강화 전등사 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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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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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이굽이 고빗길, 삶이 늘 이럴지니…

인천 강화군 마니산 참성단에서 내려다본 강화 들판과 서해 바다. 길쭉길쭉 무채처럼 가로로 썰어 누워 있는 연노랑 들판과 그 너머 쪼글쪼글 허파꽈리를 만들며 흐르는 갯도랑 실핏줄들. 섬들은 점점이 떠 있고, 초가을 오후 햇살은 고슬고슬하다. 왼쪽부터 신도, 시도, 모도, 장봉도, 동만도리, 서만도리…신도, 시도 뒤엔 용유도가 허리를 늘어지게 빼고 있다. 저 멀리 물과 하늘의 경계선이 흐릿하다. 잿빛 물감이 풀어져 아슴아슴하다. 마니산 참성단=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인천 강화군 마니산 참성단에서 내려다본 강화 들판과 서해 바다. 길쭉길쭉 무채처럼 가로로 썰어 누워 있는 연노랑 들판과 그 너머 쪼글쪼글 허파꽈리를 만들며 흐르는 갯도랑 실핏줄들. 섬들은 점점이 떠 있고, 초가을 오후 햇살은 고슬고슬하다. 왼쪽부터 신도, 시도, 모도, 장봉도, 동만도리, 서만도리…신도, 시도 뒤엔 용유도가 허리를 늘어지게 빼고 있다. 저 멀리 물과 하늘의 경계선이 흐릿하다. 잿빛 물감이 풀어져 아슴아슴하다. 마니산 참성단=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강화 전등사는


거기 잘 있사옵니다

옛날 도편수께서

딴 사내와 달아난

온수리 술집 애인을 새겨

냅다 대웅전 추녀 끝에 새겨 놓고

네 이년 세세생생

이렇게 벌 받으라고 한

그 저주가

어느덧 하이얀 사랑으로 바뀌어

흐드러진 갈대꽃 바람 가운데

까르르

까르르

서로 웃어대는 사랑으로 바뀌어

거기 잘 있사옵니다

-고은 ‘전등사’에서
푸하하! 원 세상에, 이렇게도 딱한 도편수(우두머리 목수) 양반을 봤나. 여보게, 믿을게 따로 있지. 글쎄, 죽어라 대패질, 망치질해서 번 돈을 고스란히 주막집 주모에게 맡기다니. 쯧! 쯧! 뭐 사랑? 절집 짓는 데는 으뜸인지 모르지만, 세상 이치엔 영 숙맥이로세! 다른 사내와 눈 맞아 줄행랑친 주모를 이제 와서 어디 가서 찾겠나. 그렇다고 그 여인을 발가벗겨 대웅전 처마 네 귀퉁이에 새겨 넣을 건 또 뭐 있나! 그 여인이 ‘세세생생’ 그 무거운 대웅전 지붕을 떠받들고 있다고 해서 자네 마음이 편할까.

강화 전등사(傳燈寺)는 ‘부처님 지혜의 등불이 대대로 세세생생 전해지는’ 절집이다. 대웅전 나부상(裸婦像)도 ‘글자 없는 경전(無字天書)’이다. 부처님의 말 없는 가르침이다. 사랑은 고행이다. 결코 천년만년 아름답기만 한 게 아니다. 아침 햇살에 풀잎이슬 같은 것이다. 도편수의 사랑은 한순간에 미움이 되었다. 그렇다고 그것을 ‘서푼짜리 저잣거리 사랑’이라고 웃어넘길 수 있을까. 사랑은 자고 나면 미움이 되고, 탐욕이 되고, 돈이 된다. 탐욕과 사랑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 종이 한 장 차이다.

전등사 대웅보전 네 귀퉁이에서 무거운 기와지붕을 떠받들고 있는 ‘벌거벗은 여인조각상’.
전등사 대웅보전 네 귀퉁이에서 무거운 기와지붕을 떠받들고 있는 ‘벌거벗은 여인조각상’.
전등사 대웅보전 나부상은 모두 연꽃좌대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 하지만 그 모습은 4개 모두 각각 다르다. 대웅보전을 마주 보고 섰을 때, 오른쪽 앞 귀퉁이 나부상은 왼쪽 한 손으로만 지붕을 떠받들고 있다. 심각한 울상이다. 굳게 다문 입,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퉁방울 눈. 뭔가 잘못을 뼈저리게 뉘우치는 모습이다. 오른쪽 뒤 나부상은 오른 손바닥 하나만으로 떠받들고 있다. 잔뜩 화가 난 표정이다. 이는 악물고, 눈은 부릅떴다. 눈썹은 꼿꼿하다.

왼쪽 나부상은 앞뒤 모두 두 손으로 떠받들고 있다. 앞 나부상(아래사진 왼쪽)은 즐거운 얼굴이다. 이 정도야 ‘누워 떡 먹기’라는 듯 ‘헤∼’ 웃고 있다. 입 꼬리가 위쪽으로 약간 올라갔다. 눈은 술 취한 듯 몽롱하다. 코는 위로 들쳐져 구멍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왼쪽 뒤 나부상(아래사진 오른쪽)은 아예 낄낄대고 있다. 양쪽 입꼬리가 쭉∼ 올라갔다. 눈은 ‘용용 죽겠지’ 하며 동그랗게 떴다. 영락없는 장난꾸러기이다.

그렇다. 어쩌면 4개의 나부상은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뜻하는지도 모른다. 기쁨과 성냄, 슬픔과 즐거움이 마찬가지란 것이다. 기쁨 속에 슬픔이 들어 있고, 즐거움 속에 노여움이 녹아 있다. 슬픔이 거름 되어 기쁨이 솟고, 노여움이 가라앉아 즐거움이 우러난다.

전등사는 단아하다. 고즈넉하다. 크지 않아 편안하다. 정족산의 삼랑성(三郞城) 안에 있다. 삼랑성은 단군의 세 아들 부여 부우 부소가 쌓은 2.3km 길이의 성이다. 전등사는 일주문이 따로 없다. 삼랑성 남문과 동문이 곧 일주문 역할을 한다.

1866년 병인양요 당시 조선군 양헌수 대장(1816∼1888)은 바로 이 남문 동문에 300여 명의 포수를 나눠 배치했다. 11월 9일 프랑스군 160명이 이 두 성문으로 공격해 오자, 일제 사격을 퍼부었다. 적군은 사망 6명 부상 60여 명의 흔적을 남기고 퇴각했다. 조선군은 전사 1명, 부상 4명뿐이었다. 성 안의 정족사고에 있던 조선왕조실록이 무사했던 것도 바로 이 승리 덕분이었다.

‘고비 사막에 가지 않아도/늘 고비에 간다/영원히 살 것처럼 꿈꾸고/내일 죽을 것처럼 살면서/오늘도 죽을 고비를 겨우 넘겼다/이번이 마지막 고비다’

-정호승의 ‘고비’에서

삶은 늘 고비다. 하루하루가 아찔하다. 아슬아슬하다. 강화 정수사(淨水寺)에서 마니산 오르는 길은 굽이굽이 고비다. 바위가 층층이 쌓여 있는 ‘작은 공룡 뼈 능선’이다. 하얀 목등뼈를 즈려밟으며 오른다. 우두둑! 뼈 바스러지는 소리. 발바닥이 근질근질하다. 바람은 고슬고슬하다. 햇살은 기름이 자르르하다. 햅쌀밥 같다. 푸른 달개비 꽃이 바위 사이에 오종종 피어 있다. 붉은 자줏빛 싸리 꽃이 하늘거린다.

참성단 오르면 강화섬이 한눈에

발밑엔 삼색 무지개가 펼쳐져 있다. 산자락 밑엔 연노랑 들판이 길쭉길쭉하게 가로로 누워 있다. 그 바로 앞쪽엔 시커먼 갯벌이 세로로 금을 그으며 맞닿아 있다. 쪼글쪼글 갯물길이 어지럽다. 실핏줄 갯골이 곳곳에 허파꽈리를 만들었다. 햇볕이 갯물에 반사돼 눈부시다. 바다엔 섬들이 떠 있다. 가느다란 고구마 섬들이 수달처럼 물에 잠겨 있다. 왼쪽부터 영종도, 신도, 시도, 모도, 장봉도, 동만도리, 서만도리…. 신도, 시도 뒤엔 용유도가 허리를 늘어지게 빼고 있다. 용이 유유하게 노니는 듯하다. 장봉도 저 너머엔 덕적도가 아득하다.

마니산 참성단과 소사나무(오른쪽). 150세 소사나무는 참성단을 지키는 토종 진도개 같은 나무이다.
마니산 참성단과 소사나무(오른쪽). 150세 소사나무는 참성단을 지키는 토종 진도개 같은 나무이다.
마니산 참성단은 정수사나 함허동천 계곡을 통해 올라야 제맛이 난다. 강화섬이 한눈에 두루 보인다. 경치가 빼어나다. 반대쪽 상방리매표소에서 오르는 길은 편하지만 계단이 너무 많다. 지루하다. 정수사, 함허동천 어디서 오르든 1시간 30분 거리이다. 초지대교∼전등사∼이건창(1852∼1898)생가를 거치면 곧바로 정수사에 닿는다. 정수사 법당 꽃살문이 소박하다. 보면 볼수록 정겹다. ‘화장 안 한 내 누님 같은 꽃문양’이다. 이건창생가엔 그의 벗 매천 황현(1855∼1910)의 현판 글씨 ‘明美堂(명미당)’이 있다. 명미당은 이건창의 아호.

정수사 길은 바윗길이다. 바위가 시루떡처럼 켜켜이로 포개져 있다. 밧줄을 잡으며 오르는 맛이 쏠쏠하다. 하늘은 높고 바다는 아득하다. 해가 구름 뒤에 숨으면 부연 이내가 낀다. 섬들이 아슴아슴하다. 물과 하늘의 경계가 흐릿하다. 수평선에 잿빛 물감이 풀어져 범벅이 됐다. 공룡뼈 능선 저 너머로 참성단(塹星壇)이 보인다. 참성단은 앞쪽은 네모지고 뒤쪽은 둥글다. 전방후원형(前方後圓型) 무덤을 닮았다. 단군은 왜 그런 모양으로 제단을 쌓았을까.

오른쪽 앞에는 소사나무(Korean hornbeam)가 돌 제단을 눈 부릅뜬 채 지키고 있다. 기특하다. 토종 진돗개가 늙은 주인을 지키고 있는 것 같다. 돌 제단만 덩그렇게 있었다면 얼마나 외로웠을까. 일곱 가닥 줄기가 검게 부르텄다. 바닷바람이 세차다. 키 4.8m, 뿌리둘레 2.74m, 나이 150살. 천연기념물 502호의 나라가 인정하는 수문장이다. 올해는 비가 너무 많이 와 잎 끝이 동글동글 말라비틀어져 안타깝다. 다행히 새 잎들이 군데군데 돋았다. 소사나무는 자작나뭇과의 토종이다. 회갈색 껍질에 줄기가 구불구불하다. 만고풍상을 겪은 외할머니 등뼈 같다.


성스러운 한반도의 ‘머리신’

‘동네 어귀에 뿌리 내린/늙은 느티나무 하나/늘 침묵의 그늘은/지나는 사람들에 등을 내주고/땀도 식혀 주었다/붙박이로 살아온 한평생/저승꽃 핀 몸속에/쇠똥구리 혹을 매달고 있다/높고 외롭고 고단했으므로/그의 자리는/오히려 눈부시다’ <여자영의 ‘천년수도승’에서>


마니산(摩利山·469.4m)은 강화섬에서 가장 높은 ‘머리산’이다. ‘마리(摩利)’는 ‘머리’, 즉 ‘으뜸’을 뜻한다. 마니산은 백두산과 한라산의 중간 지점에 있다. ‘한반도의 머리’가 마니산인 것이다. 그만큼 성스러운 곳이다. 일부에선 마니산을 ‘한반도의 명치’라고도 부른다. 명치가 막히면 사람은 기가 막혀 살 수 없다. 명치가 뻥 뚫려야 두루두루 잘된다.

마니산 참성단은 2004년 7월부터 통제됐다가 내년부터 공식 개방된다. 하지만 요즘에도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철책 문을 열어놓는다. 사실상 문을 연 거나 마찬가지. 관리인 정충현 씨(56)는 “휴일엔 하루 4000∼5000명, 평일엔 그 반 정도가 이곳을 찾는다. 하루 종일 무릎 꿇고 기도하다가 가는 도사 차림의 할아버지가 있는가 하면, 말없이 책만 보다가 가는 학생도 있다. 이곳에 있다가 내려가면 피곤이 싹 가신다며 거의 매일 오는 분도 있다. 간혹 고성방가에 술판 벌이는 사람도 있는데 그런 분들은 아무리 말려도 소용없다”고 말한다.
▼화강암으로 된 마니산은 ‘氣덩어리’▼

작은 공룡의 하얀 목등뼈 같은 마니산 바윗길. 온통 화강암덩어리로 이뤄져 한반도에서 가장 기가 센 곳으로 알려져 있다.
작은 공룡의 하얀 목등뼈 같은 마니산 바윗길. 온통 화강암덩어리로 이뤄져 한반도에서 가장 기가 센 곳으로 알려져 있다.
기(氣)가 센 땅이 있다. 지구의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는 ‘보텍스(Vortex)’라고 불리는 곳이 그렇다. ‘기 덩어리’가 소용돌이치는 땅인 셈이다. 세계적으로는 미국 애리조나의 세도나(Sedona)가 이름났다. 명상가들은 ‘전 세계 21개의 보텍스 중 4개가 세도나에 있다’고 말한다. 세도나는 바위절벽으로 이뤄진 그랜드캐니언에서 가깝다.

세도나도 온통 붉은 바위산이다. 강렬한 태양과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이 붉은 바위산과 잘 어우러진다. 인디언들이 왜 이곳을 목숨 바쳐 가면서 지키려고 했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오죽하면 ‘신은 그랜드캐니언을 만들었지만, 신이 사는 곳은 세도나’라는 말까지 있을까. 그만큼 기가 충만하다. 이 중에서도 ‘종 바위(Bell Rock)’가 으뜸이다. 세계의 내로라하는 도사들과 예술가들이 들끓는다. 한마디로 ‘명상가의 메카’이다.

왜 바윗덩어리는 기가 셀까. 명상가들은 ‘그것은 바위 끝단 때문’이라고 말한다. 전기에서 송전선이 끊어지는 끝단의 전압이 가장 높은 것과 같다는 것이다. 땅도 마찬가지이다. 내륙보다는 해안 쪽이 더 기가 세다. 한반도 남단인 전남 경남 제주 사람들이 기가 세다고 불리는 이유다.

한국에선 강화도 마니산의 에너지가 가장 세다. 마니산은 화강암 덩어리이다. 단군이 왜 이곳에 제단을 쌓고 하늘에 제사를 지냈는지 알 것 같다. 한 조사에 따르면 마니산 자기장 회전수는 65회나 된다. 46회전인 합천 해인사 독성각보다 훨씬 세다. 청도 운문사(20회전), 팔공산 갓바위(16회전)와는 비교가 안 된다.

기가 세다고 무조건 다 좋을까. 그렇지 않다. 어느 땅이든 그 사람과 기운이 맞아야 편안하다. 맞지 않은 땅은 독(毒)일 뿐이다. 난리 때 피란처로 손꼽혔던 계룡산 신도안이나 풍기 금계동 같은 곳이 ‘기는 세지 않지만 평안한’ 땅이다.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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