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 기자의 That's IT]전자책 DIY ‘불편한 진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7월 6일 03시 00분


코멘트
집에서 가장 값나가는 물건이 무엇인가요. TV? 냉장고? 제겐 책입니다. 전세 사는 분들은 다들 느끼시겠지만 이사를 다닐 때면 ‘책 많은 집’은 이삿짐센터에서 웃돈을 요구합니다. 서울시내 아파트의 평당 전셋값이 1000만 원에 가까운데 서가는 침대에 이어 가장 많은 공간을 차지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난 주말 책을 없애기로 결심했습니다. 레코드판과 CD, 사진 앨범은 MP3파일과 디지털카메라가 나오면서 모두 디지털로 변환해 DVD와 하드디스크에 저장해놓았습니다. 책이라고 그러지 못할 이유는 뭘까요. 종이책이 주는 매력이 있기는 하지만 전자책은 쉽게 내용을 ‘검색’해 볼 수 있고, 특정 부분을 복사해 다른 글에 옮겨 적기도 쉽습니다. 종이책은 주지 못하는 장점입니다.

전자책 만들기는 생각보다 쉬웠습니다. 우선 양면 스캐너를 하나 샀습니다. 그리고 제본된 책의 표지를 뜯어내고, 본드로 접착한 부분을 썰어내 책을 낱장으로 분리한 뒤 스캐너에 통과시켰습니다. 제일 먼저 스캐너를 통과한 책은 중국 검색업체 바이두를 다룬 ‘바이두 이야기’라는 책입니다. 약 450쪽의 두꺼운 책이지만 10분 만에 책 한 권이 PDF 문서로 바뀌었습니다. 그 다음엔 PDF 문서작성 소프트웨어인 어도비의 ‘애크러뱃’을 이용해 스캔된 글자를 검색 가능한 전자문서로 바꿨습니다. 이렇게 주말 동안 세 권의 종이책을 전자책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정도면 한 달에 30∼40권은 거뜬할 것 같습니다. 곧 책꽂이가 부족해 쌓아놓은 싸구려 공간박스는 내다 버릴 계획입니다.

제가 산 스캐너는 일본 후지쓰에서 만든 ‘스캔스냅’이란 제품입니다. 2년 전 처음 가격은 약 3만5000엔이었는데 지금은 약 4만 엔에 팔립니다. 국내 판매가는 약 70만 원입니다. 모든 전자제품은 시간이 지나면 값이 떨어지지만 이 스캐너는 직접 전자책을 만들려는 사람들이 늘면서 거꾸로 값이 올랐습니다. 씁쓸합니다. 전자책의 본고장인 미국에선 개인이 공들이지 않아도 이미 수많은 전자책이 나와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기지 않거든요.

스캐너가 70만 원, 책을 자르는 재단기가 15만 원 정도입니다. 최근 나오는 전자책 가격이 6000원쯤이니 약 140권의 전자책 값을 전자책 만드는 데 필요한 기기 장만에 쓴 셈입니다. 제 서가의 책 가운데 140권을 줄일 수 있고 제가 그 시간과 수고를 아낄 수 있다면 저는 책을 낱장으로 찢어 버리는 대신 마을 도서관 같은 곳에 기증하고 전자책을 사겠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그런 선택은 불가능합니다.

저도 책을 출판해 본 저자입니다. 제가 쓴 책은 컴퓨터의 워드프로세서로 쓰여 출판사에 전자문서 형태로 넘어갑니다. 출판사는 이 원고를 약간만 손보면 전자책으로 출판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들에게는 변화의 의지가 부족할 뿐이죠. 이 와중에 제가 만든 것과 같은 ‘사설 전자책’은 끊임없이 늘어납니다. 불법복제도 쉽고, 한번 불법 유통되면 걷잡을 수 없는 파일들이죠. 제가 출판사라면 이런 사설 전자책의 확대를 두고 보느니 전자책 시장을 빠르게 키우려고 노력할 겁니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