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가 본 이 책]한국군의 38선 돌파, 맥아더는 말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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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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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일기/윌리엄 T 와이블러드 엮음·문관현 손석주 김택 오충원 옮김/820쪽·3만8000원·플래닛미디어

남정옥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책임연구원·문학박사
남정옥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책임연구원·문학박사
《6·25전쟁은 미국의 공군력이 큰 기여를 한 전쟁이었다. 유엔 공군에서 미 공군이 93.4%를 차지한 사실과 월턴 H 워커 미 제8군사령관이 “공군력 없이는 낙동강 전투를 치르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 점이 이를 입증한다. 전쟁 초기 공군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이런 미 공군력의 중심에는 극동공군사령관 조지 스트레이트마이어 중장(1890∼1969)이 있었다.》

그가 6·25전쟁의 중요한 부분, 즉 “왜 그때 그런 일이 있었나”, “그 일이 일어난 배경은 무엇인가” 등 군 수뇌부 차원에서 일어났던 일들에 대한 궁금증을 전쟁 발발 61주년에 즈음해 풀어줬다. 바로 이 책을 통해서다. 원제는 ‘미 극동공군사령관 조지 E. 스트레이트마이어 중장의 세 가지 전쟁: 그의 한국전쟁 일기(The Three Wars of Lt. Gen. George E. Stratemeyer: His Korean War Diary)’다. 책은 그가 참전하면서 치러야 했던 ‘공산주의자들과의 전쟁’ 외에 ‘언론과의 전쟁’, ‘미 육군 및 해군과의 전쟁’ 등에 대해서도 숨김없이 털어놓고 있다.

그의 일기는 편년체 형식의 기록이나 전쟁의 중요한 국면들을 고려해 세 부분으로 나눠 편집했다. 제1부는 전쟁이 발발한 1950년 6월 25일부터 낙동강 방어선이 마침표를 찍는 9월 14일까지, 제2부는 인천상륙작전이 실시된 9월 15일부터 중공군이 본격적으로 대규모 공세를 전개하는 11월 25일까지, 제3부는 1950년 11월 26일부터 스트레이트마이어가 심장발작을 일으켜 극동공군사령관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 1951년 5월 20일까지 다루고 있다.

6·25전쟁 때 사용된 미군의 대표적 공습기 B-29(위 사진). 아래는 1951년 1월 28일 경기 수원에서 회동한 
극동공군사령관 스트레이트마이어 중장과 극동군사령관 맥아더 장군, 제8군사령관 매슈 리지웨이 중장(왼쪽부터). 플래닛미디어 제공
6·25전쟁 때 사용된 미군의 대표적 공습기 B-29(위 사진). 아래는 1951년 1월 28일 경기 수원에서 회동한 극동공군사령관 스트레이트마이어 중장과 극동군사령관 맥아더 장군, 제8군사령관 매슈 리지웨이 중장(왼쪽부터). 플래닛미디어 제공
전쟁을 수행하는 가운데 갑자기 찾아온 심장발작 때문에 그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군 수뇌부와의 토의, 의견 제시, 전문 보고, 그리고 공군 작전활동 사항 점검 등 전쟁 상황 전반을 마치 내면의 자신에게 보고하듯 하나하나 기록했다. 이에 따라 이 책은 앞으로 6·25전쟁 연구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기존 연구에서 가장 미흡했던 부분이 개전 초기 상황인데, 이 책은 특히 개전 초기부터 중공군 춘계 공세까지 전쟁의 가장 중요한 시기를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워싱턴의 정치 및 군사 지도자들을 비롯해 극동군사령부 수뇌들의 움직임을 대화 내용과 비밀전문을 통해 일자별로 일목요연하게 구성해 놓은 점도 사료로서의 가치를 한층 높인다. 특히 극동공군사령관으로서 전쟁 지휘부의 핵심에서 활동했던 장군의 전쟁 일기인 만큼 다른 미군 장성들의 회고록이나 공간사(公刊史)에서 볼 수 없는 비밀스러우면서도 극적인 내용들을 다루고 있다.

예를 들어 6·25전쟁에서 미국의 핵무기 운용에 대한 가능성이 미 지상군이 전쟁에 투입된 직후부터 검토됐음을 밝히는 문서는 이미 공개된 바 있다. 하지만 핵무기를 실전에 배치해 운용하는 문제를 1950년 9월부터 검토했고, 그 실무자인 엘리스 존스 박사를 한국에 보내 실사했다는 사실은 이 책을 통해 처음 밝혀진 것이다. 또 1950년 9월 29일 서울 환도식 기념행사 후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월턴 워커 장군에게 “하늘을 찌를 듯한 우리의 사기가 계속 이어지도록 노력해 달라”고 당부하면서 “한국 육군이 38선 이북으로 진격하려고 하면 절대 막지 말고 이를 격려하라”고 했다는 사실은 기존에 알려진 바를 뒤엎는 새로운 내용이다. 그간에는 맥아더 장군이 한국 육군의 38선 이북 진격을 반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 유엔군이 소만국경을 향해 북진 시 미 공군기의 오인 폭격으로 영국 군인 20명이 사망한 참사, 소련 국경을 침범한 미군 조종사 2명과 그 책임자인 대령을 징계한 사실, 그리고 장차 북한의 발판기지 역할을 하게 될 신의주 공격의 필요성에 대한 맥아더 장군의 주장 등은 이 책에서만 볼 수 있는 6·25전쟁의 비화다.

이처럼 이 책은 맥아더 장군을 비롯한 군 수뇌부와 격의 없이 나눈 대화 내용은 물론이고 성공한 작전과 함께 실패한 작전도 사실대로 기술했다. 특히 맥아더 장군의 인품, 지휘관으로서의 자질과 능력, 그리고 군인으로서 뛰어난 전략적 식견에 대해 높이 평가한 부분이 흥미롭다. 맥아더 장군이 중공군 개입 후 적기에 요격될 위험을 감수하면서 비무장 전용기를 타고 만주 일대를 정찰한 그의 진정한 용기에 경의를 표하고, 그의 해임을 누구보다 안타까워했던 상황이 무척이나 상세히 묘사됐다. 매끄러운 번역도 책의 높은 완성도에 한몫했다. 오역으로 인한 오류를 발견하기 어렵다.

남정옥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책임연구원·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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