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상우의 그림 읽기]문방사우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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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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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자연-이동진. 포털아트 제공
무위자연-이동진. 포털아트 제공
일곱 살짜리 여자 아이가 아홉 살 오빠에게 문방사우가 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오빠가 문방사우가 아니고 문방구를 잘못 본 거 아니냐고 되물었습니다. 그러자 여동생이 이번에는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엄마는 문방사우가 문방구는 아니지만 문방구에 가면 살 수 있는 것들이라고 얼버무렸습니다. 엄마와 두 아이는 기어이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문방사우가 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빠가 간단명료하게 대답했습니다. “인터넷 찾아봐!”

문방(文房)은 문사(文士)의 방입니다. 문사는 학문을 닦는 선비, 문필 종사자, 문학적 재능을 지닌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글을 공부하고 글을 짓는 사람들입니다. 문방사우(文房四友)는 그런 사람들에게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도구인 지필묵연(紙筆墨硯), 즉 종이, 붓, 먹, 벼루를 일컫는 말입니다. 문방사우는 시서화(詩書畵)를 가까이 하고 살던 양반문화의 전유물이었습니다. 시를 짓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 양반문화의 핵심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조선시대의 대표적 명필 추사 김정희는 친구 권돈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70평생에 벼루 열 개를 밑창 냈고 붓 일천 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들었다(七十年 磨穿十硏 禿盡千毫)’고 썼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다산 정약용의 주요 저작물이 전남 강진에서의 18년 유배생활 동안 완성되었다는 걸 감안한다면 역사에 길이 남을 문화적 유산은 고난의 세월을 견뎌낸 문사들이 문방사우와 함께 만들어낸 인고의 산물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문방사우는 시서화의 도구이나 그것이 한데 어우러지면 정신적 수양에 기여합니다. 여유와 여백이 생기고 고요한 관조와 웅숭깊은 심도가 조성됩니다. 그래서 유배당한 사람들조차 마음이 어지러우면 먹을 갈고 붓을 들어 한지의 여백에다 마음을 압축하고 풀어 시를 짓기도 하고 글을 짓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귀양살이를 할지라도 문방사우와 책만은 박탈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조선시대의 양반문화는 학예를 존중하는 바탕만은 분명하게 보여줬다 하겠습니다.

21세기가 된 오늘날, 현대인에게 과거의 문방사우는 낡고 고루한 도구가 아닐 수 없습니다. 현대인의 문방사우는 키보드와 마우스, 모니터와 스마트폰이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은 집중과 인내보다 속도와 즉흥성을 중시합니다. 느린 건 용납되지 않고 여백으로 남겨지는 것도 용납되지 않습니다. 의미나 깊이보다 재미와 순간적 자극을 원하므로 사유를 필요로 하지도 않습니다. 여백과 여유, 깊이와 의미가 스러진 곳에 정신은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부박하게 명멸하는 정신은 중심이 깨어지고, 중심이 깨어진 정신은 허황하게 부유하고 분열합니다. 이렇게 찬란한 디지털 문명의 낙원에 어째서 정신질환자와 우울증 환자와 자살자가 늘어나는 걸까요. 문방사우와 벗하는 일은 21세기라서 더욱 새롭습니다. 그것은 즉흥성보다 근원성으로, 육체성보다 정신성으로 우리를 편안하게 감싸 안습니다. 넉넉한 마음으로 먹을 갈고 천진한 마음으로 붓을 들어보세요. 너무 쏟아내고 너무 토해 내고 정신없이 살아가는 우리, 이제는 차분하게 자리 잡고 앉아 문방사우와 함께 오랫동안 잊고 지낸 마음의 고향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박상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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