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하태원]미국의 여성 대통령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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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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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7일 힐러리 클린턴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미국 선거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당내 경선에서 패배를 인정하는 연설을 했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에 도전했던 버락 오바마 후보에게 밀려 대선 도전의 뜻을 접었던 날 클린턴 국무부 장관은 “비록 가장 높고 가장 단단한 ‘유리 천장’을 깨뜨리는 데엔 실패했지만 이제 그 유리 천장에는 1800만 개의 균열이 생겼다”고 선언했다. 1800만 개의 균열이란 클린턴 장관이 당내 경선과정에서 받았던 표의 수. 유리 천장을 깨려는 시도가 이번에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1800만 개의 균열이 언젠가는 영원히 깨지지 않을 것 같은 보이지 않는 장벽을 산산조각 낼 수 있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었다.

첫 흑인 대통령을 배출한 뒤 2년이 지난 2010년 12월 미국 내에서는 과연 차기 대선에서 여성 대통령 탄생이 가능할 것이냐는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외형적인 조건은 충분히 갖춘 것으로 보인다. 내각 장관으로 캐슬린 시벨리어스 보건장관, 재닛 나폴리타노 국토안보장관, 힐다 솔리스 노동장관 등 4명이 활동하고 있고 대선 도전에 유리한 주지사 중에서도 5명이 여성이다. 상원 의원 100명 중에도 16명이 활동하고 있다. 사법부에서도 대법관 9명 중 3명이 여성일 정도로 여성의 활약은 두드러진다.

하지만 2012년 대선에서 실제로 유리 천장이 산산조각 날 것으로 보는 미국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일단 2008년 1800만 개의 균열을 만들어 낸 클린턴 장관 스스로가 대선 도전 의사가 없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고 적어도 현재로서는 그 말이 ‘진심’인 것처럼 보인다. 공화당 진영에서는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가 선두주자로 나서고 있지만 백악관으로 가는 길은 요원하다는 지적이 높다. 사소한 말실수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페일린 전 주지사는 연평도 포격에 대한 질문에 “동맹인 북한의 편에 서야 한다”고 말하는 등 외교안보 분야에서도 안정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올해 11월 치러진 중간선거에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멕 휘트먼 전 이베이 최고경영자(CEO)와 칼리 피오리나 전 HP CEO도 각각 캘리포니아 주지사와 연방상원의원 선거에서 패배하는 등 여성의 정치적 입지 강화에 실패했다.

미국 사람들이 여성 대통령을 맞을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것을 대중문화와 연관지어 설명하는 사람도 있다. ‘딥 임팩트’(1998년) ‘헤드 오브 스테이트’(2003년) 등의 영화나 ‘24’(2001년)와 같은 TV 드라마 속에서 흑인 대통령이 숱하게 등장하면서 미국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흑인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준 것과 달리 여성이 대통령으로 등장하는 미국 영화나 드라마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

미국의 어느 신문기사에서 ‘여성 대통령을 꿈꾸는 당신이 명심해야 할 수칙’이 소개된 적이 있다. 여성 표가 자기 표라는 착각을 하지 말라는 것이 제1 수칙. 남편이나 자식, 형제 등 가정사와 관련한 수신제가(修身齊家)에 신경 쓰라는 조언도 있었다. 전문지식을 갖추었고 디테일에 강한 면모를 증명하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였고 남성보다 도덕적으로 청렴하다는 점도 집중 부각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도 한 방송 드라마가 여성 대통령의 이야기를 소재로 다루고 있다. 미국 정가에서 회자되는 이 충고가 한국의 정치에도 유효할까.

하태원 워싱턴 특파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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