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후지와라 기이치]아베의 추락, 자민당의 부활

  • 입력 2006년 12월 22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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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취임한 지 3개월이 지났다. 내각이 발족할 때 63%를 자랑하던 지지율이 지금은 50% 아래로 떨어졌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취임 전 아베 총리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보다 훨씬 우파 성향이 강했다. 고이즈미 전 총리가 취임 전에는 야스쿠니(靖國)신사에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반면 아베 총리는 계속 참배하면서 한국과 중국에 대립각을 세웠다. 또 인권, 민주주의, 남녀평등을 중시하는 일본의 전후교육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등의 발언을 반복했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취임 직후 첫 해외 방문지로 한국과 중국을 찾아 ‘아시아 경시’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던 고이즈미 외교노선과의 차이를 부각시켰다. 또 일본군 위안부를 인정한 고노 담화와 전쟁 책임을 반성한 무라야마 담화를 답습하겠다고 밝혀 “일본군 위안부는 존재하지 않았다” “전쟁 책임은 없다”는 자민당 우파의 주장과 거리를 뒀다.

취임 전과는 다른 언동을 보여 주는, 이른바 ‘아베답지 않은’ 아베 총리는 여론의 높은 지지를 받았다. 내각 발족 직후의 높은 지지는 아베 총리가 우파여서가 아니라 오히려 외교에 관한 한 그가 우파 같지 않았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그리고 취임 후 3개월이 지나도 이 현실주의적인 외교노선에는 변화가 없다. 아베 총리는 외교정책 때문에 지지를 잃었다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왜일까. 그것은 아베 총리가 ‘자민당의 총리’라고 여론이 깨닫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물론 아베 총리도, 고이즈미 전 총리도 자민당 당원이다. 하지만 고이즈미 전 총리는 자민당의 총재이면서 자민당과 투쟁을 거듭함으로써 국민의 지지를 모았다. 과거 60년간 정권을 독점하다시피 해 온 자민당은 도로 건설 등 이권을 둘러싸고 부패해 도시 유권자를 중심으로 정치 불신을 확산시켰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자민당과 싸움을 계속함으로써 정치 개혁을 추진하는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얻었다. 총선은 정당 선택이 아니라 총리 신임투표라는 성격을 갖게 돼 총리가 자민당 소속인 이상 ‘총리 신임’이 ‘자민당을 위한 1표’가 됐다. 고이즈미 총리를 지지하기 때문에 자민당 정권에 반대하는 유권자가 자민당에 투표하는 기이한 현상은 이렇게 생겨 났다.

그러나 총리가 바뀌자 고이즈미 전 총리가 싸워 온 적(敵)인 ‘낡은 자민당’이 대대적으로 부활하려 하고 있다. 우정민영화 개혁에 반대해 지난해 총선에서 자민당 공천을 받지 못한 의원이 자민당으로 복당하고 도로 관련 재정개혁은 알맹이가 없어지는 일련의 과정에서 아베 총리가 지도력을 발휘하는 장면은 보이지 않았다.

자민당과의 싸움을 연출해 온 고이즈미 전 총리와 달리 아베 총리는 자민당 그 자체다. 낡은 자민당이 되돌아왔다는 이미지가 이렇게 해서 생겨난 것이다. 고이즈미 총리 시절 ‘자민당은 지지하지 않지만 총리는 지지한다’던 유권자들이 아베 정권 들어 이뤄진 자민당의 부활을 보며 ‘자민당도, 총리도 지지하지 않는다’는 쪽으로 태도를 바꾸었다. 아베 정권의 추락은 자민당 불신임이라고 해도 좋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내년 봄에는 통일지방선거가, 여름에는 참의원선거가 예정돼 있다. 지방에 이권을 제공하고 조직 표를 확보하려는 자민당은 더욱더 예전의 자민당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자민당이 부활하면 할수록 아베 정권 지지율은 하락할 것이다. 정권이 발족한 지 3개월이 지난 지금 아베 정권은 미래를 잃어 가고 있다.

후지와라 기이치 도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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