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혐의 장민호 이중생활…IT정책 다룰때 세번째 밀입북

  • 입력 2006년 11월 1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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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심회’ 사건의 핵심 인물로 꼽히는 장민호(44·구속) 씨는 평범한 문학청년에서 미국 유학생을 거쳐 정보기술(IT) 업체의 최고경영자(CEO)로 변신을 거듭해 왔다.

하지만 그 이면에서는 386 학생운동권 출신 인사들을 규합해 일심회를 조직하면서 북한에 국내 동향을 보고하는 ‘이중생활’을 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에서 북한에 포섭돼=장 씨는 1981년 서울 Y고를 졸업한 뒤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한다. 장 씨의 지인은 “대학에서 장 씨는 문학토론을 즐기는 평범한 청년이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학교 앞에서 시위를 하다 경찰에 붙잡힌 게 계기가 돼 가족의 권유로 1982년 10월경 미국으로 떠나게 됐다.

장 씨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거주했다. 1983년에는 미군의 그라나다 침공 반대 시위에 참여해 체포된 적도 있다. 1986∼87년에는 미주 J일보 샌프란시스코 지사에서 기자로 일하기도 했다.

학교는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에서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이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공식 자료에는 1989년 캘리포니아 코스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것으로 돼 있다.

장 씨는 지인들에게 “미국 유학 시절 한인 학생들을 모아 대학가 앞에서 민주화 관련 집회를 열었고, 이 때문에 추방당할 뻔한 적도 있었다”고 자랑했다고 한다.

장 씨는 1987년 미국에서 북한 대외연락부 소속인 재미교포 김형성(가명)에게 포섭돼 1989년 처음으로 북한에 들어가게 됐다는 게 공안당국의 설명이다. 이때 장 씨는 사상교육과 통신교육 등을 받은 뒤 “지하당 조직을 구축하라”는 지령을 받았다는 것.

미국으로 돌아간 그는 1989년 미군에 입대한 뒤 주한미군을 지원해 한국에 들어왔다. 1993년까지 서울 용산과 대전에서 물류시스템 담당으로 근무하면서 군사정보를 북한에 보고해 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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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업체 CEO로 변신=1993년 미국 시민권을 획득한 장 씨는 두 번째로 북한을 방문했다. 이때 조선노동당에 입당하고 충성서약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1993년 한국에 자리를 잡은 장 씨는 암스트롱사에서 1년여 근무하다 통상산업부(현 산업자원부) 산하 한국정보기술연구원 국제협력과장으로 채용됐다. 한국정보기술연구원은 IT 소프트웨어 연구개발과 IT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곳이다.

이어 장 씨는 국내 대기업인 A사에 1995년 입사해 최연소 팀장을 지냈다. 이후 1998∼99년에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정보통신부 산하 해외소프트웨어진흥센터에서 부장급 간부(마케팅 매니저)로 일했다. 정부 IT 정책에 대한 정보를 쉽게 입수할 수 있는 자리에 있었던 것. 1999년 장 씨는 세 번째로 북한을 다녀온 뒤 본격적으로 일심회를 조직하는 데 나섰다.

1999년 10월 3D 애니메이션 업체인 나래디지털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해 대표를 지냈고, 2002년 10월부터는 게임전문 위성방송 스카이겜티브이 사장을 지냈다.

지난해에는 지상파 디지털 멀티미디어 방송(DMB) 사업권을 확보하기 위해 컨소시엄을 구성했으나 실패했고, 올해 초까지 모바일 솔루션 업체 미디어윌테크놀로지의 대표로 일했다.

IT 업계에 있을 때 장 씨는 매우 과묵하고 외부 접촉을 극도로 꺼렸다고 한다. 하루 종일 사무실에만 있으면서 식사를 했고, 주말에도 회사에 나와 인터넷뉴스를 검색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는 게 그와 함께 일했던 회사 직원들의 전언이다.

평소 정치문제에 대해선 별 발언을 하지 않던 장 씨는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소추를 당했을 때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온 국민이 노사모에 가입해 광화문으로 가야 한다. 우리도 함께 가자”고 말했으나 실제로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에 가입하거나 집회 현장에 간 적은 없었다고 한다.

올해 5·31지방선거 때에는 “열린우리당에 뽑아 줄 만한 사람이 없으니 차라리 투표를 하지 말자”고 해 직원들이 모두 정상 출근해 근무를 했다는 것.

주변의 386 학생운동권 출신 인사들 사이에서 그는 IT 분야의 유능한 CEO로 통했으나 그와 함께 일했던 동료들은 그가 경영한 회사들이 제대로 실적을 내지 못했다고 말한다.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김재영 기자 jay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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