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안되는 영어교육]핀란드 수업현장 가보니

  • 입력 2006년 9월 14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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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e you tired? When did you wake up?”(피곤한가요? 여러분, 오늘 아침 몇 시에 일어났어요?)

8월 29일 오전 9시 핀란드 동남부의 농촌마을 엘리메키의 니니메키 초등학교. 5, 6학년 11명이 합반해 영어 수업을 듣고 있었다. 전교생이 29명인 이 학교에서는 3학년부터 1주일에 2시간씩 영어를 공부한다. 1교시라 잠이 덜 깨 졸린 눈을 비비는 아이들의 모습은 한국의 초등학교 풍경과 별 다를 바가 없다. 다른 점이라면 수업 시작부터 핀란드인인 교사가 마치 모국어로 묻듯 영어로 학생들과 일상에 관해 자연스러운 대화를 나눈다는 것.

담당교사인 리사 살미넨 씨의 질문이 끝나자마자 교실 여기저기에서 “Seven o'clock”(7시요) “Maybe at seven thirty”(아마 7시 반이었던 것 같아요) 등의 답이 튀어나왔다.

이날 공부할 교과서 내용은 제1과 ‘Hero’(영웅). 교사가 교과서 지문을 원어민 발음으로 들려주는 CD를 틀었다.

학생들에게 지문을 읽고 핀란드어로 해석하게 하던 살미넨 씨는 갑자기 라이네 모니카(12) 양에게 질문을 던졌다.

“Have you got a hero?”(네게도 영웅이 있니?)

수업 중 교사가 던지는 모든 질문은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것이다. 돌발 질문에 모니카는 “Yes, maybe I have one, but I don't remember”(네, 영웅이 있을 건데 잘 생각이 안 나네요)라며 수줍게 웃었다.

핀란드어는 한국어, 몽골어 등과 같은 ‘우랄 알타이어족’이다. ‘인도 유럽어족’인 영어와는 어순이나 문법에서 큰 차이가 있다.

그러나 헬싱키에선 택시를 타도 운전사와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데 문제가 없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년의 신사에 이르기까지 길을 가다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영어로 길을 물었을 때 말이 통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핀란드 교육연구소 칼레비 포이알라 교육고문이 말하는 ‘핀란드인이 영어 잘하는 비결’은 너무 간단했다.

“핀란드어는 전치사도, 관사도 없어서 영어와 매우 다르죠. 하지만 학교에서 잘 가르치기 때문에 핀란드인은 누구나 영어를 잘할 수 있습니다.”

이달 11일 서울 강남구 개포동 D초등학교 5학년 교실의 영어 수업.

틀어 놓은 영어 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원어민의 발음을 학생들이 앵무새처럼 열심히 따라 하고 있었다. 담임인 정모 교사는 “영어 수업 시간에는 미리 준비한 문장 이외에는 아이들에게 절대로 영어로 말하지 않는다”면서 “외국에서 살다 왔거나 영어 연수를 다녀온 아이가 영어로 질문하면 오히려 이상한 아이가 되는 분위기”라고 털어놓았다.

학교의 영어 교육이 박제화되는 동안 학부모들은 주머니를 털어 학교 밖에서 해법을 찾는다.

신경구 전남대 영문학과 교수는 “학원비, 해외 연수, 영어 캠프 등 영어 사교육에 들어가는 비용을 항목별로 집계해 보니 2000년 9조8000억 원쯤이었던 것이 2006년에는 1.5배 가까이 늘었다”고 추산했다.

문제는 비용 대비 효과다. 막대한 사교육 비용에도 불구하고 세계에서 한국인의 영어 실력 순위는 바닥이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따르면 2004∼2005년 한국 토플 응시생의 평균 성적은 세계 212개국 중 91위, 아시아 32개국 중 16위다.

왜 핀란드에서는 학교교육으로도 충분한 영어 교육이 한국에서는 안 되는 것일까.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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