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진석의 도시와 건축]파주 헤이리마을과 영어마을

  • 입력 2006년 6월 23일 03시 01분


코멘트
경기 파주시에는 개성이 다른 대조적인 마을이 두 곳 있다. 하나는 최근 개장한 영어마을이고, 또 하나는 헤이리 예술인 마을이다. 두 곳의 성격은 다르지만 이들 마을 덕분에 주말이면 파주시가 북적인다. 헤이리마을은 건축과 예술이 어우러져 마을 전체가 작품이라는 인상을 주고 있고, 영어마을은 서양의 도시를 그대로 옮겨 놓은 미니 모방 도시다.

그리 대중적이지 않은 예술로 가득한 헤이리마을과 이국적인 분위기의 놀이 공원 같은 영어마을은 ‘도시는 모임의 공간’이라는 잣대로 보면 차이가 드러난다.

영어마을은 영어와 서구 세계의 체험이라는 심플 콘셉트로 만들어져 건축도 모조품이고 도시도 모조품이지만,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다양한 시설로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다. 방문객 수는 이미 크게 늘어나고 있고 일본에서도 이를 성공 사례의 하나로 분석할 정도다.

헤이리마을은 건축이나 문화의 수준, 도시 개발 능력이나 도시 계획 개념 등 어떤 면을 보더라도 영어마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철학적이고 지적이며 논리적이고 예술지향적이다. 건축과 예술의 조화를 통해 형성된 도시 커뮤니티의 모범이라고 할 만하다.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렵다.

그러나 헤이리마을은 그 예술성을 충분히 살릴 수 있는 콘텐츠의 부족이라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예술인 마을에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게 반갑지 않을 수도 있지만, 예술의 대중화와 건축의 대중화라는 콘셉트로 조성한 예술 도시를 많은 사람에게 보여 주고 싶다면 이 한계를 넘어서야 할 듯하다.

건축 작품과 도시 계획의 조화라는 헤이리마을의 의미가 ‘그들만의 것’이 되지 않으려면 운영 프로그램과 콘텐츠 확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마을에는 어린이의 세상을 유니크 디자인으로 표현한 딸기테마파크, 클래식 음악감상실인 황인용의 카메라타, 책을 주제로 한 북카페 등 특유의 문화적 공간과 아름다운 건축이 있다. 바로 이런 사례들이 콘텐츠 문제 해결의 시사점을 던져 주는 듯하다.

도시는 모임의 공간이라는 점에서 볼 때 사람을 모이게 하는 힘(콘텐츠)의 확충을 통해 헤이리마을의 의미가 더욱 확산될 것이다. 헤이리마을의 단위 건축물의 성공보다 마을 전체를 아우르는 종합적인 기획을 기대해 볼 만하다.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의 성공은 입지나 건축의 특징을 넘어 탁월한 콘텐츠가 뒷받침된 덕분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단순 비교하기는 어려우나 헤이리마을도 퐁피두센터보다 못할 이유가 없다. 헤이리마을은 이미 도시 계획의 가이드라인, 참여 건축가의 작품성, 건물주의 예술 마인드 등 여러 조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콘텐츠를 체계적으로 개발해 헤이리마을의 완성을 도모해야 한다. 헤이리마을이 영어마을처럼 붐벼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예술의 향기를 맡고 싶은 가족이나 예술을 사랑하는 여러 모임들이 찾아올 때 더욱 빛나는 도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양진석 건축가·Y GROUP 대표 ygroupyear@hanmail.net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