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향기속으로 20선]<13>자전거 여행

  • 입력 2006년 4월 3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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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문경새재는 적막하고, 인간과 무관해 보이는 봄이 그 무인지경의 산속에서 피어나고 있다. 새재는 아직도 곳곳에서 인간을 포기하고 있을 것이었다. 새재 마루턱에서 날이 저물었다. 자전거는 한밤중에 출발지인 관음리로 돌아왔다. 이날 주행거리는 55km였다. 긴 거리는 아니었지만 높은 고개를 잇달아 넘어와, 몸은 창자 속까지 찬바람에 절었다.―본문 중에서》

지난해 전남 고흥군 바닷가에 오두막을 짓고 있을 때 김훈이 찾아왔다. 작업복 차림인 내 코앞에 대고 “개집이구먼” 하며 10평도 채 안 되는 규모의 집을 비웃었다. 그리고 바다 쪽으로 돌아서며 뒤통수를 내 코앞에다 대고 “(풍광은) 절경이다”고 말했다. 그는 내심을 말로 드러내지 못한 채 좀체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왔다 갔다 하더니 총총 자리를 떴다. 어깨에 멘 천가방 속에는 연필 한 자루와 지우개, 원고지가 들어 있었다.

‘자전거 여행’의 원고를 쓰던 당시 그가 끌고 다니던 자전거 ‘풍륜(風輪)’은 이제 퇴역하고 없다. 지금 새 자전거는 대개 그의 지하 집필실 마룻바닥에 놓여 있으나 여러 날 사용하지 않을 땐 벽에 걸려 있다. 바닥에 내려와 있을 때의 자전거보다 공중에 매달려 있을 때의 자전거가 김훈을 더 긴장시킨다. 그럴 때 현실의 중압과 다르지 않은 글쓰기나 발목을 잡는 세상사에 이를 갈며 ‘길이 몸 안으로 흘러드는’ 자전거 타기를 그는 꿈꾼다.

‘자전거 여행’에서 그의 자전거는 도심 한복판을 달리지 않고 인간들의 냄새가 나는 골목을 찾아들지 않는다. 봄 들판이나 눈 덮인 겨울 산맥을 망망한 우주의 일엽편주처럼 넘어간다. 그럴 때 그의 몸은 아무런 억압도 방어기제도 없는 순결한 몸이 된다. 아니 그렇게 우긴다.

집 근처에서 자전거를 탈 때도 그의 취향은 한결같다(그의 집은 경기 고양시 정발산 밑이다). 그의 자전거는 집 앞 공원을 몇 바퀴 도는 일에 쓰이지 않는다. 임진강가나 행주산성으로 나가 자전거를 습지에 처박거나 언덕 숲 속으로 밀어 넣는다. 그렇게 자전거를 깊이 밀고 멀리 끌며, 사람이 새처럼 옮겨 다니면서 살 수 없는 것과 사람은 결국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 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 없다는 것에 절망하면서 훌쩍훌쩍 운다.

‘자전거 여행’의 글은 예외 없이 그런 불온한 자연과 풍경에 대한 애정 어린 산물이다. 더러 농부들과 염전 사람들의 적막함과 갯가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고단한 삶을 통해 가장 알기 쉬운 삶이 가장 아름다운 삶이란 것을 노래하지만, 글에 등장하는 역사적 인물들은 대개 그와 닮은 작자들이다. 등장하는 여성 또한 그런 남성에 의해 떠받들어지는 여성이다. 그러면서 달에 이끌리는 서해 갯벌에서 여성성을 보고, 향일암 앞바다의 봄 속에 숨어 있는 관능에 몸서리친다. 그 속에서 목젖의 안쪽을 통과해 나오는 모국어의 서늘함과 뜨거움을 자유나 비애 같은 것으로 깨우거나 잠재우며 또박또박 연필로 받아 적는 것이다.

‘몸이 갈 수 없는 길을 갈 수 없는’ 자전거는 김훈에게 가장 친밀한 동지이며 안쓰러운 연인이다. 이제 김훈의 자전거도 노을에 젖고 다시 새 자전거로 바뀔 일만 남아 있을지 모르지만, 그의 자전거가 제주도를 건넜다거나 일본 교토(京都)를 다녀왔다는 소문이 들린다. 얼마간 자전거 여행이 계속될 모양이다.

이 봄 동백꽃은 자전거 위에 있는 그를 보지 않고 그 또한 동백꽃을 보지 못한다.

황학주 시인·서울여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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