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의 서울]영화 ‘오! 브라더스’와 용산공원

  • 입력 2005년 4월 1일 18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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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 커플의 사진을 찍어 협박하고 채무자의 돈을 받아내는 일로 생계를 꾸려가던 상우(이정재)의 인생에 갑자기 가족이 ‘태클’을 건다. 집을 나가 딴살림을 차린 아버지가 죽으면서 자기에게 막대한 빚과 희귀병인 조로증(早老症)에 걸린 이복동생까지 남긴 것. 웃음 반 눈물 반의 영화 ‘오! 브라더스’(2003년 작)는 그렇게 시작한다.

실제 나이는 12세지만 외모는 30대인 동생 봉구(이범수)가 저지르는 말썽 때문에 온갖 해프닝이 벌어진다. 그 중 압권이 봉구가 형의 애인인 룸살롱 호스티스 은하(김준희)와 야밤 데이트를 하는 장면이다. 냉정한 상우에 대한 반발심 때문에 야한 ‘근무복’ 차림으로 나와 공원에서 봉구를 유혹하는 은하.

“나 봉구 씨 좋아해요. 봉구 씨 내가 술집 다니는 여자라서 싫어요?”

큰 연못이 있는 초여름 밤 공원의 분위기가 농밀하다. 결국엔 두 사람 다 상우에게 들켜 경을 치게 되지만.

영화 ‘오! 브라더스’에서 형의 애인인 룸살롱 호스티스 은하(김준희)와 나란히 앉은 봉구(이범수)가 부끄러움과 호기심에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다. 이 장면은 서울 용산구 용산동 용산공원에서 촬영했다. 이곳은 과거 미8군 골프장이었지만 1991년 골프장이 이전하면서 가족들이 찾는 시민공원으로 바뀌었다. 권주훈 기자

이 장면은 서울 용산구 용산동 용산공원에서 촬영했다.

용산공원은 영화 후반부에 한 차례 더 나온다. 함께 심부름센터를 운영하던 기태(류승수)가 가게 계약금을 빼서 상우에게 봉구의 요양원비를 건네는 장면이다. 같은 장소, 같은 시간대지만 앞 장면과 달리 분위기가 찡하고 공원의 밤은 더할 수 없이 다정하고 평화롭다.

1992년 문을 연 용산공원은 2만7000여 평에 연못과 잔디광장, 야외 예식장, 자연학습장이 있는 도심 휴식공원이다. 예비 신혼부부들의 사진 촬영장소로 유명하다. 5월 화창한 주말이면 웨딩드레스를 입은 예비 신부를 몇 명이나 볼 수 있다.

실제로 가보면 땅이 평평하고 구릉보다 개활지가 많아 은근히 서구풍이라는 느낌이 강한데 이유는 미8군의 골프장이었던 곳을 공원으로 가꿨기 때문이다. 1991년 미군이 골프장을 이전하면서 임시공원으로 운영되다 1994년 서울시가 인수했다. 그래서 임시공원 시절의 이름인 ‘용산가족공원’이 공식 명칭보다 더 잘 알려져 있다.

지금은 공원에 ‘관록’이 붙었다. 잔디밭은 돗자리를 펴고 도시락을 먹기 좋고, 연못 주위로 쳐진 야트막한 울타리나 잔디 사이로 난 산책로는 조경이 뛰어나다. 2100여 평의 연못에는 공원관리사무소가 방사해 키우는 오리 가족이 유유히 헤엄을 친다.

땅이 좋아서 외세를 많이 탔던가. 이 공원 부지는 임진왜란 때는 왜군의 병참기지로, 임오군란 때는 청나라 군사 주둔지로, 갑신정변에서 광복 때까지는 일본군 주둔지로 쓰이던 곳이었다. 6·25전쟁 때는 주한미군사령부가 있었다.

다행히 용산의 미군기지가 완전히 이전하면 이 일대는 지금보다 훨씬 큰 민족공원으로 바뀌게 될 예정이다. 올해 10월에는 용산가족공원 바로 옆에 국립중앙박물관이 개관한다. 서울지하철 4호선 이촌역에서 걸어서 10분 거리, 입장료 무료. 승용차 전용주차장이 있으나 50대 정도만 세울 수 있다. http://parks.seoul.go.kr/yongsan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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