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산책]브리짓 존스의 일기2 - 열정과 애정

  • 입력 2004년 12월 2일 16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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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짓 역의 르네 젤위거는 2편에서 슬랩스틱 코미디언처럼 온 몸을 던져 망가짐으로써 관객의 웃음을 이끌어 낸다. -사진제공 UIP코리아
브리짓 역의 르네 젤위거는 2편에서 슬랩스틱 코미디언처럼 온 몸을 던져 망가짐으로써 관객의 웃음을 이끌어 낸다. -사진제공 UIP코리아
21세기의 신데렐라는 계모의 구박으로 재투성이가 되지도, 마녀의 저주로 돼지코가 되지도 않았다. 속마음을 못 감추는 주변머리 없는 말솜씨에다 스트레스를 줄담배와 술, 온갖 정크 푸드로 푸는 자기 과실 때문에 “서른두 살까지 애인도 없는 왕궁둥이 노처녀”였을 뿐이다.

파자마 차림으로 산발한 머리를 휘저으며 ‘올 바이 마이셀프’를 처절히 노래하던 그 여자, 브리짓 존스(르네 젤위거). 마법이 풀려 개구리에서 공주가 된 것도 아니었건만 일약 런던 법조계의 촉망받는 인권변호사이자 바른생활 사나이에 핸섬하기까지 한 마크 다시(콜린 퍼스)의 ‘낙점’을 받아 “행복 시작”을 선언했던 그녀가 3년 만에 ‘브리짓 존스의 일기 2-열정과 애정’으로 돌아왔다.

시점은 다시 브리짓 어머니의 끔찍한 신년파티. 1년 전 주눅 든 노처녀로 나타났던 이 파티에 이제 브리짓은 ‘프로페셔널 방송인’으로서 당당히 연인 마크와 함께 나타난다. 거리의 키스로 끝맺었던 1편은 2편에서 침대로 진도가 나갔다. 일기에 따르면 ‘만난 지 6주 4일 일곱 시간 동안 71번이나’ 마크와 황홀한 사랑을 나눈 것.

행복의 정점에 선 브리짓. 그러나 너무 완벽한 행복이 슬슬 불안해진다. ‘왕자와 공주는 그 뒤 정말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을까.’

브리짓뿐만 아니라 브리짓의 ‘횡재’에 의심의 눈길을 보냈던 모든 이들에게 2편이 필요했던 이유다.

2편에서 브리짓은 1편보다 더 살쪄 보인다. 나아가 그 육중한 온 몸을 던져 망가진다. 애인 마크가 속한 변호사협회 연례파티에 살이 터져 나올 것같이 꽉 끼는 드레스를 입고 나타나 펭귄처럼 걷는가 하면, 헤어아티스트가 ‘작품’이랍시고 빗자루처럼 만든 머리를 다리미판 위에 펼쳐놓고 다린다. 마크를 따라나선 스키장에서는 실수로 활강 경기 한복판에 뛰어들어 인간 봅슬레이가 돼 질주한다.

브리짓의 우스꽝스러움을 더욱 도드라지게 하는 것은 ‘냉정, 침착, 이성, 권위’의 화신인 마크다. 침대에서는 불타오르는 정력남이지만 일단 침대에 뛰어들기 전에는 이튼학교에서 배운 예의범절대로 팬티에 각을 세워 개켜놓는 단정한 남자이며 장관 정도와는 수시로 전화가 가능한 실력자다.

그러나 백설공주와 신데렐라의 왕자, 최근의 슈렉마저도 단숨에 뛰어넘는 마크의 경쟁력은 이런 ‘배경’에 있는 것이 아니다. 별 볼 일 없는 브리짓을 ‘지금 네 모습 그대로’ 사랑한다는 순정이다. 브리짓의 출렁이는 뱃살, 마크의 동료들 면전에서 “대머리 속물 부자들”이라고 일갈하는 무례까지, 무슨 약을 먹은 것인지 그에겐 다 예뻐 보이고 이해된다.

이런 마크의 아킬레스건은 ‘골 결정력’의 부족임이 드러나면서 상황이 꼬이기 시작한다. “그래 결혼은 언제?”라고 묻는 양가 부모 앞에서 “결혼은 아직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법정 진술하듯 ‘사실관계’를 분명히 하는 마크의 냉정함에 브리짓은 “애당초 당신 인생에 끼어든 게 잘못”이라며 이별을 고한다.

이 틈을 타 다시 브리짓 앞에 직장 동료로 나타나는 바람둥이 다니엘 클리버(휴 그랜트). “섹스 세러피로 새 사람 됐다. 당신 없이 못 산다”며 브리짓을 끈질기게 유혹하는 다니엘은 자신이 ‘작업용’으로 기획한 태국 취재여행에서 뜻하지 않게 브리짓이 마약사범으로 몰리자 그녀를 버려두고 줄행랑을 치는데….

‘브리짓 존스의 일기 2’편은 만화적이다. 허니문을 연상케 하는 태국의 휴양지, 무드 잡는 남녀가 밤하늘을 바라보며 별을 찾는 닭살 돋는 설정, 위기에 빠진 연인의 구출, 한 여자를 두고 벌이는 두 남자의 수탉 같은 싸움 등 유치하되 폭소를 터뜨리게 하는 잔재미가 배치돼 있다. 머리 비우고 웃을 작정이라면 큰 실망하지 않을 수 있는 로맨틱 코미디.

그래도 21세기의 신데렐라, 브리짓에게 ‘시대사적 의미’는 있다. ‘살을 빼지 않아도, 얼짱이나 엘리트가 아니어도, 지금 이대로의 나는 사랑받을 수 있다’는 당당함.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개연성이나 논리를 요구하는 관객만 바보가 된다. 사랑에 이유가 있나?

이 영화를 둘러싼 가장 동화 같은 스토리는 아무래도 브리짓을 연기한 르네 젤위거의 몸만들기일 것이다. 6일 한국을 방문하는 젤위거는 이미 촬영 당시 66kg으로 설정됐던 몸을 영화 ‘시카고’ 때의 고혹적인 선으로 되돌렸다고 한다.

현실의 공주는 그런 것이다. 10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 가.

정은령 기자 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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