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뿌리읽기]<79>저주(咀呪)

  • 입력 2004년 7월 18일 17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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咀呪는 남의 불행이나 액운을 기원하는 말이다. 타인에게 직접적인 위해가 불가능할 때, 사람들은 咀呪라는 보다 우회적이지만 위협적인 방식을 택한다.

咀는 의미부인 口(입 구)와 소리부인 且로 구성되었다. 且는 갑골문(왼쪽 그림)에서 男根(남근)의 모양인데, 이는 부권사회가 확립됐던 시절의 남성 숭배를 의미하며, ‘조상’이 원래 뜻이다. 하지만 且가 ‘또’라는 부사어로 가차되어 쓰이자 且에다 제단을 그린 示(보일 시)를 더한 祖로 ‘남근(且)에 대한 숭배(示)’를 더욱 형상적으로 그려냈다. 그래서 且로 구성된 글자에는 ‘조상신’이라는 의미가 깊숙하게 스며 있는 경우가 종종 보인다. 예컨대 助는 조상(且)의 힘(力·력)을 빌려 ‘도움을 받다’라는 의미요, 沮(막을 저)나 阻(험할 조)는 조상(且)의 힘과 강(水·수)이나 황토 언덕(阜·부)에 힘입어 적의 공격을 ‘막다’라는 뜻이다.

咀 또한 남에게 재앙이 내리길, 동양사회에서 가장 유효한 신이던 조상신(且)에게 구체적 내용을 언급하면서(口) 기원하는 모습을 그린 글자다. 그렇다면 且는 의미부의 기능도 함께 한다. 口는 言(말씀 언)으로 바꾸어 詛로 쓰기도 한다.

呪는 口와 兄으로 구성되었으며, 兄은 소리부와 의미부를 겸한다. 兄은 갑골문(오른쪽 그림)에서 입을 벌리고 꿇어앉은 사람의 모습인데, 벌린 입은 기도를, 꿇어앉음은 신에 대한 경배를 의미한다. 그래서 兄은 신 앞에서 기도하는 모습이고, 신께의 기도는 연장자의 몫이었다. 그것은 중국이 일찍부터 정착농경을 시작하여 경험 중심의 연장 서열 중심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兄은 같은 항렬에서 최고 연장자, 즉 ‘맏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兄에 示가 더해지면 祝이 된다. 祝은 의식을 갖추어(示) 신에게 좋은 일이 생기도록 기원하는 의미로 주로 쓰였으며, 그런 의식을 행하는 사람, 즉 남자 무당(박수)을 지칭하기도 했다. 하지만 口가 더해진 呪는 남에게 불행이 내리길 말로써 욕을 해 가며 신에게 비는, 나쁜 의미로 구분되어 사용됐다.

이처럼 咀呪에서 핵심적 의미요소는 口이다. 여기서도 입(口)은 예로부터 모든 악의 근원으로 생각되어 온 중국의 전통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중국의 경우 서구의 ‘말(logos)’ 숭배 전통과는 달리 말 대신 문자를 상징적 지배수단으로 사용해 왔으며, 문자는 말과 달리 보다 깊이 생각한 뒤 나오는 것으로 보다 실수가 적을 것이라고 생각돼 왔기 때문이다.

하영삼 경성대 교수 ysh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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