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산책]'마스터…' 바다로 간 글래디에이터?

  • 입력 2003년 11월 27일 16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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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무비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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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5년 영국 서프라이즈 호의 함장인 잭 오브리는 영국 함대를 괴롭히는 신출귀몰한 프랑스 아케론 호를 격침하라는 국왕의 명령을 받는다. 서프라이즈 호는 추적에 나서지만 되레 안개 속에서 유령처럼 나타난 아케론 호의 기습공격을 받는다. 오브리 함장은 부하들의 처참한 부상을 딛고 추적을 강행하고, 그의 친구이자 함선의 유일한 의사인 스티븐 마투린은 이를 제지하고 나선다.

할리우드 스타 러셀 크로를 앞세운 ‘마스터 앤드 커맨더-위대한 정복자’는 ‘타이타닉’의 스케일과 ‘글래디에이터’의 굵직한 캐릭터를 합친 해양 액션 영화. 여기에 ‘고독한 리더십’을 둘러싸고 두 등장인물이 보여주는 우정과 갈등의 심리가 보태졌다. 영화는 그 흔한 러브스토리 하나 등장하지 않으며 남성성을 전면에 내세운다. 두 가지 질문을 통해 영화를 살펴본다.

○ 러셀 크로는 바다의 ‘검투사’인가

러셀 크로를 바다의 ‘글래디에이터’로 만들기에 배는 너무 좁고 바다는 너무 넓다. 오브리 함장은 용감하지만 비장하진 않다. 최악의 순간에도 음악을 연주하고 웃음을 잃지 않는다. 이 같은 낭만성은 작품 전반적으로 긴장의 끈을 느슨하게 만든다. 게다가 범선 두 척이 대포알을 주고받는 19세기 초의 해양 전투는 운명적으로 소박할 수밖에 없다. 전투장면의 중심도 오브리 함장이 아닌, 어리지만 용감한 병사들 쪽으로 다변화돼 있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서 표현하는 전쟁의 공포는 스케일은 작지만 더 체감적이고 본질적이다. 포탄이 터질 때 나는 파편 소리는 전쟁의 공포를 청각적으로 이미지화한다. 병사들이 공포에 떠는 이유는 적함이 첨단장비를 갖췄기 때문도, 악명 높은 잔혹성을 가졌기 때문도 아니다. ‘보이지 않는다’는 단순하고도 치명적인 사실 때문이다.

영화 ‘타이타닉’을 찍었던 초대형 스튜디오에서 촬영된 폭풍우 장면은 볼거리다. 1만평 크기의 물탱크에 물을 가득 채우고 무게 60t의 서프라이즈 호 모형을 띄웠다. 그러나 좌우로 요동치는 선체와 장대비 속에서도 단정하게 고정된 병사들의 머리칼은 치밀함에 대한 아쉬움을 남긴다.

○ 서프라이즈호는 놀라운 공간인가

영화 말미까지 적함의 병사들의 성격은 구체적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이는 내러티브 전개의 초점이 두 함선 간 상호작용보다는 서프라이즈 호 내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와 갈등 양상에 맞춰져 있음을 뜻한다.

그러나 망망대해 속 함선이라는 공간적 특징은 긴장을 고조시키는 방향으로 활용되지 못한다. 강한 리더십을 강조하는 ‘아버지’의 상징 오브리 함장과 휴머니즘을 내세우는 ‘어머니’의 상징 닥터 마투린이 벌이는 갈등은 치열하지 못할 뿐 아니라 영화 중반에 일찌감치 해소된다.

함선 내 선악구도가 없고 모두가 ‘착한’ 캐릭터 설정은 현실적일지 모르지만 영화적이진 않다. ‘위트니스’ ‘죽은 시인의 사회’ ‘트루먼 쇼’ 등의 영화를 통해 한정된 공간에 돋보기를 들이대 갈등하는 인간 군상을 예리하게 파헤친 피터 위어 감독의 솜씨가 꽤 거칠어진 듯하다. 28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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