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미기자의 현장칼럼]강남市 특별區 대치洞?

  • 입력 2003년 10월 16일 16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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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 복덕방이야말로 강남 지역 민심을 한눈에 읽을 수 있는 공간이다. 정부의 초강경 강남 집값 대책 발표를 앞두고 있는 13일 대치동 H공인중개업소 앞의 한적한 풍경. 이 일대 중개업소 주인들은 강남지역 중개업소가 강남의 집값 상승을 주도한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아파트 매매가를 낮게 내걸고 있다. 이종승기자

대치동 복덕방이야말로 강남 지역 민심을 한눈에 읽을 수 있는 공간이다. 정부의 초강경 강남 집값 대책 발표를 앞두고 있는 13일 대치동 H공인중개업소 앞의 한적한 풍경. 이 일대 중개업소 주인들은 강남지역 중개업소가 강남의 집값 상승을 주도한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아파트 매매가를 낮게 내걸고 있다. 이종승기자

복덕방의 한자가 ‘복(福)과 덕(德)이 모이는 방(房)’이라는 풀이는 지금 강남 아파트를 소유한 사람들에게 딱 들어맞는 듯하다.

2001년 5월 2억2000만원이던 서울 강남구 대치동 청실아파트 31평형의 매매가는 2년5개월 만에 7억2000만원으로 무려 5억원 올랐다. 이를 두고 ‘중남미형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과 ‘일본식 장기 디플레이션(자산가치 하락)’의 직전 단계라는 우려도 있다.

‘재테크’와 ‘교육테크’라는 우리 시대의 두 가지 생존 전략에 대한 각종 정보가 유통되는 곳, 강남 민심을 가장 가까이 호흡할 수 있는 곳, 대치동 일대 복덕방에 가 봤다.

●‘읍내 복덕방’에서

8일 오전 10시반 강남구 개포동 개포 주공1단지 아파트 주변 N공인중개업소. 기자가 들어선 후 이 업소에 처음 걸려온 전화는 경기 부천시에 사는 대치동 은마아파트 31평형 집주인으로부터였다.

6월 은행에서 3억원을 대출받아 6억2000만원에 샀다는 이 아파트는 4개월새 1억원이 올랐다. 금융권 주택담보대출이 1·4분기 2조5000억원에서 3·4분기 6조1000억원으로 불어난 이유를 알 만했다. 중학교 2학년과 초등학교 3학년 자녀를 둔 그녀는 겨울방학 학원 개강을 앞둔 12월 지금의 세입자를 내보내고 자신이 직접 살겠다고 했다.

자녀 교육에 열을 올리는 학부모들이 여기저기서 ‘머리를 싸매고’ 대치동으로 온다. 대치동 토박이 엄마들은 아이들이 일류 대학에 가지 못할 것 같으면 일찌감치 외국으로 유학을 보낸다. 대치동 일대 초등학교 동창회가 캐나다, 호주에서 열린다는 얘기도 있다.

오전 11시.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성이 들어왔다.

그녀는 2년 전 개포 주공1단지 13평형을 3억4500만원에 샀다가 몇 개월 후 3억7400만원에 판 것을 처절하게 후회하고 있다. 이 아파트는 지금 5억7000만원을 호가한다. 대신 그 돈으로 구입한 삼성동 AID 1차(15평형)가 재건축 사업 승인을 얻어 5억2000만원 정도로 올랐지만, 사람 욕심은 끝이 없나 보다.

“강남 집값이 올라도 너무 올랐어. 그러면 우리 강남 사람들한테 오히려 불리한데…. 정부가 인위적으로 집값 잡으려면 역효과 날 걸. 9·5대책 이후 강남 집값이 오히려 올랐잖아.”

그녀가 떠난 뒤, 이 업소 직원 이창훈씨는 말했다.

“그래도 이곳은 B급 지역이에요. A급은 ‘빅 3’로 불리는 대치동 우성, 선경, 미도아파트 일대를 뜻하지요. 걸어서 10분 이내에 학교와 학원을 갈 수 있는 곳 말이에요.”

그 말을 듣고 대치동 H공인중개업소에 갔더니 봉하운 사장이 말한다. “아, 읍내에 다녀오셨군요. 이곳이야말로 번화가입니다.”

●복덕방 주인들

봉 사장이 중개업소 벽에 걸린 대형 지도 앞에서 설명을 한다.

“자, 보세요. 강남대로와 테헤란로가 수직으로 만나며 4개 지역으로 나뉘지요. 이 중 오른쪽이 강남구인데 테헤란로 위쪽이 구 강남, 테헤란로 아래쪽이 신 강남이다, 이 말씀입니다. 청실, 미도, 선경아파트 단지 내에는 최고급 학원들이 있고 은마, 쌍용아파트 단지 등을 빙 둘러 소형 맞춤 학원들이 들어섰죠. 3년새 대치동이 ‘부촌’이 된 이유입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이곳에서는 집을 구할 때 학교와 학원의 위치가 제1순위 고려사항이다. 대개 무조건 대치동이면 되는 줄 알지만 그 안에서도 다시 나뉜다. 예를 들어 청실아파트 1∼6동에 살면 대도초등학교로, 7∼19동은 대치초등학교로 배정받는다고 한다.

마침 이 업소에 모인 인근 중개업소 사장들도 거든다.

“아줌마들이 중개업소에서 맨 먼저 묻는 게 어느 학교가 좋은가 하는 것이죠. 대청중학교는 여학생이 많고 공부도 잘해 딸 둔 부모들에게 인기가 높아요. 그러나 아들 기를 죽이지 않으려는 엄마들은 단국대부속중학교나 휘문중학교에 갈 수 있는 아파트를 원합디다.”

“어디 그뿐이야. 과목별 인기 학원과 강사를 묻고 과외 그룹을 만들 엄마들 소개도 부탁하잖아. 논술을 과외 교습할 동네 대학교수를 찾기도 하고.”

●대치동 아줌마들

이 업소 건너편 S공인중개업소에 갔더니 40대 학부모 김모씨가 찾아왔다. 은행 지점장 남편과 고등학생, 중학생, 6세 세 자녀를 둔 김씨는 1990년대 중반 광진구 광장동에서 대치동으로 이사와 재테크와 교육테크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대치동에서는 슬리퍼를 신든 ‘몸뻬’를 입든 ‘사모님’ 대접을 받아요. 돈으로 잘난 체는 못해도, 애들 성적으로는 잘난 체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대치동이죠. 주로 학원 설명회에서 엄마들을 만나 사귀는데, 좋은 학원을 소개시켜준 대가로 엄마들에게 선물이나 점심대접을 받은 적도 있어요.”

H공인중개업소에서 만난 30대 후반 여성은 “전쟁이라도 났으면 좋겠다”는 과격한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녀는 청실아파트 35평형에 2억4000만원짜리 전세를 산다.

“이 동네에서 화가 나 못 살겠어요. 자고 일어나면 1억원이 우습게 오르잖아요. 대치동에 내 집 하나 못 가져보나, 좌절감이 깊어져요.”

이 업소 봉 사장은 “2006년쯤 강남 아파트 물량이 많아져 가격이 안정될 테니 집 구입 시점을 아예 미뤄라. 앞으로 10년 더 전세 산다고 해도 누가 뭐라나”하고 조언했다.

진달래 1차 34평형에 살고 있다는 40대 후반 여성은 대치동 일대 아파트 전세를 구하러 왔다. 재건축이 추진되는 진달래아파트 주민은 12월까지 이주를 마쳐야 한다.

“20년 동안 이 동네에서 살다 보니 다른 동네에서는 불편해서 못 살 것 같아요.”

머리가 희끗희끗한 60대 후반 노인은 중개업소에 들렀다가 말한다.

“강북 사는 친구들 만나 집값 얘기하면 안 돼. 괜히 도둑놈 취급 받는다니까.”

●강남 집값 대책…대책…대책

대치동 복덕방에서 만난 사람들은 “집값이 미쳤다”, “이젠 10년 앞을 내다보고 다른 지역을 찾아야 한다”, “막차를 섣불리 타면 안 된다”는 말들을 했다.

정부가 9일 강력한 강남 부동산 가격 억제책 발표를 예고하자 대치동 일대 복덕방에도 변화가 보인다. 11일 수천만원씩 가격을 낮춘 급매물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세를 묻는 문의전화만 쇄도할 뿐 매수자들은 관망만 하고 있다.

부동산 중개업자들은 말한다.

“대치동 아파트는 자가 대 전세 비율이 6 대 4쯤 됩니다. 또 1가구 2주택 이상이 80%에 이르죠. 요즘 급매물은 집을 여러 채 가진 사람 중 일부가 내놓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금이 무섭다고 해서 아파트를 선뜻 내놓은 사람은 아직 드물어요. 또 1가구 1주택자는 집값이 내린다고 해서 대치동을 떠날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큰 동요는 없을 겁니다.”

대치동의 영화(榮華)가 한때의 해프닝으로 사라졌으면, 사교육이 빚어낸 일시적 거품 경기로 역사에 기록됐으면 하고 간절히 바란다.

대치동 사람들은 의도하지 않는데도 갈수록 자신들이 ‘특별한 부류’로 분류된다고 말하고, 대다수 강북 서민들은 상대적 박탈감과 분노 섞인 절망에 울분을 터뜨린다.

서로 딴 나라 같은 강북과 강남의 불균형 구도를 언제까지 끌어안고 갈 것인가. 우리 다음 세대에게도 물려줄 것인가. 그 누구도 원하지 않는 세상이다.

김선미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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