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피터 벡/韓美동맹 '침묵하는 다수'의 소망

  • 입력 2003년 10월 1일 18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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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세미나 관계로 워싱턴에서 멀리 떨어진 노스다코타주에 갔다가 한국과 미국의 인연이 얼마나 깊은 것인지 실감했다.

미네소타주에 인접한 인스피레이션 봉우리에 올라간 나는 우연히 동네 노인과 대화하게 됐다. 6·25전쟁에 참가했다는 레이먼드 클리멕은 16일 동안 계속된 원산항 함포사격이 가장 힘든 임무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밤에 잠도 자지 못한 채 매일 아침 바다에서 북한군 시체를 끌어올려야 했으며 그것은 끔찍한 일이었다고 말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아무도 자신의 희생에 고마움을 표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뜻밖의 장소에서 6·25전쟁 참전용사를 만난 사실에 놀란 나는 그가 입양한 한국인 손자 손녀가 3명이나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것을 듣고는 더욱 놀랐다. 그는 여섯 살짜리 손자가 너무도 영특해서 함께 카드놀이도 할 정도라고 자랑했다.

클리멕씨는 미국은 한국에서 군대를 철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미군 철수를 외치는 것을 보면서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면서 그들이 우리를 원하지 않으면 우리는 떠나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과 깊은 인연을 가진 사람이 이렇게 느끼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더욱 놀랐다.

미국의 50개 주 가운데 방문자가 가장 적은 주에 간 이유는 내가 속한 연구소가 모든 주에서 세미나를 개최했다는 꿈을 실현해보고 싶어서였다.

노스다코타주립대와 모리스의 미네소타대에서 열린 세미나에는 예상과 달리 많은 사람이 몰렸다. 두 대학에서 열린 행사에는 각각 200여명이 참석했는데 모리스의 인구가 5000명이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굉장히 많은 수였다.

청중들은 북한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었으며 질문도 많이 나왔다. 그들의 질문을 통해서 참석자가 많았던 이유가 북한핵 문제와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의 북한과의 협상 기피에 대해 그들이 몹시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질문은 “미국은 왜 북한과 불가침 협정을 체결하지 않느냐”에서부터 “왜 중국이 북한 국경에 그렇게 많은 군인을 보냈느냐”는 것까지 다양했다.

그 지역에서 한국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사람은 클리멕씨뿐만이 아이었다. 노스다코타대 세미나에서 기조연설을 한 얼 파머로이 하원의원도 2명의 한국 어린이를 입양한 사람이었다. 그에게 한국은 미국 다음으로 애정이 가는 나라다.

민주당 소속인 파머로이 의원은 부시 행정부는 한국과의 관계를 최악으로 만들었다고 실망을 나타냈다. 그는 백악관이 분명한 정책을 정할 때까지 의회에서의 논의는 초점을 찾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번 노스다코타 여행은 내게 한국과 미국의 경제적 문화적 인연을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미국이 한국의 중요한 교역상대라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나는 파고라는 인구 9만명의 도시에 현대자동차 매장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

그곳에서 나는 ‘태권도’라는 한글 간판을 보고 나의 한국 현대사 강의를 듣는 한 학생이 태권도를 통해 한국문화를 처음 접했다고 한 말을 기억해 냈다. 또 ‘동방식품’이라는 식품점도 있었다.

이런 것들은 미국인들이 한국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몇 가지 사례이다. 나는 최근 몇 년 동안 한국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방문했던 크고 작은 수많은 도시에서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

지난 수십년 동안 깊어진 한미 관계는 지금 전례 없는 긴장에 직면해 있다. 좋은 관계가 살아남아 발전하기 위해서는 모든 차원에서 적극적인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우선 양국 지도자들은 상호관계를 재확인하기 위해 구체적인 조치들을 취해야 한다. 일반 국민 차원에서도 침묵하는 다수가 극단주의자들을 원치 않는다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안보와 경제적 도전을 해결하기 어려운 시점에서 양국의 유권자들은 점점 더 양극화하고 있다. 우리는 두 나라 모두 어느 때보다 서로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피터 벡 한국 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 조지타운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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