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지배구조]<9>깐깐한 감사가 기업-주주이익 지킨다

  • 입력 2003년 8월 31일 20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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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1=군인들이 출자해 만든 공제조합 군인공제회는 ‘19년 연속 흑자’라는 대기록을 달성할 정도로 투자수익률이 민간업체를 뺨친다. 군인공제회는 7월 1일 금호산업의 사업부로 있다가 법인으로 독립한 금호타이어의 지분 50%를 인수하면서 최고경영진 선임을 포함한 경영 일체를 금호에 맡겼다. 그러나 감사와 자금담당 임원만은 직접 파견하겠다고 요구해 이를 관철시켰다.

▽사례2=금융기관 고위 간부로 퇴직한 A씨. 올 초 한 정보기술(IT)업체 감사로 옮긴 그는 거의 회사에 출근하지 않는다. 대신 플루트 연주가 취미인 그는 개인연습실에 매일 나간다. 명함에 인쇄된 사무실 주소와 전화번호는 지우고 휴대전화 번호만 남겨놓았다. 다른 사람들이 잘못 알고 출근하지도 않는 사무실에 전화를 걸지 말라는 뜻이다. 그는 이렇게 털어놓았다. “오너가 감사의 역할을 기대하지 않고 있다. 갈 곳 없는 사람에게 ‘자리’를 배려한 것임을 뻔히 아는데 내가 감사일을 제대로 하면 어떻게 하겠나?”

같은 ‘감사’인데 왜 이렇게 다른 것일까?

▽감사의 역할은 ‘경영진 감시’=통상 일반인들은 감사의 역할에 대해 ‘직원 비리를 조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감사의 역할은 이보다 훨씬 막강하고 중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기업지배구조개선지원센터(원장 정광선·鄭光善)가 마련한 ‘기업지배구조 모범 규준’은 감사의 역할을 이사와 경영진에 대한 적법성 감사, 재무활동의 건전성과 타당성 감사, 중요한 회계처리 기준의 타당성 검토, 외부감사인(회계법인)의 감사활동에 대한 평가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중에서 이사와 경영진의 직무 집행에 대한 감사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 국민대 경영학부 서정우 교수는 “주식회사 도입으로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면서 주주는 경영진이 제대로 경영하고 있는지 감시할 필요가 있다”며 “감사는 주주로부터 바로 이 일을 ‘수탁’해 집행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감사의 힘은 막강하다. 사례1에서처럼 군인공제회는 경영권을 전적으로 금호에 위탁하면서도 감사를 통해 경영진이 주주 이익에 충실하게 경영을 하고 있는지를 속속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도 사례2에서처럼 자신의 권한을 행사하지 않고 자리만 채우는 감사가 많은 것이 현실. 이는 무엇보다 경영진이 감사의 개입을 번거롭게 여기기 때문이다. 특히 최고경영자(CEO)나 오너가 감사에 대해 실질적인 임명권을 행사하는 상황에서 감사가 경영진 눈치를 보지 않고 제대로 된 감독 역할을 하기란 쉽지 않다.

사례2의 A감사 밑에는 직원이 하나도 없다. 감사만 있고 감사실 조직이 없는 것. 직원 비리 감찰은 기획실 몫이다.

감사 기능에 대한 불신 때문에 일부 외국 투자자들은 로펌과 별도 계약을 맺고 정기적으로 국내 투자기업의 경영상황을 점검하는 등 감사 기능을 아웃소싱하기도 한다. 이 같은 역할을 했던 국내 로펌의 한 관계자는 “국내 정서상 감사들이 얼굴을 자주 보는 임원이나 최고 경영진에게 ‘아니요’라고 말을 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며 “그래서 외국 투자자들은 한국 감사를 신뢰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국내에도 감사가 공개적으로 대표이사 해임을 요구한 사례가 있기는 하다. 99년 SK텔레콤 사외감사로 있던 김건식(金建植) 서울대 법대 교수는 SK텔레콤이 사외이사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유상증자를 하자 손길승(孫吉丞) 대표이사 해임을 요구하기 위해 법원에 주총 조기 소집을 위한 가처분신청을 내기도 했다.

김 교수는 “회사일로 가끔 만나면서 인간적으로 호감을 느꼈던 분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기가 상당히 힘들었다”고 말했다. 당시 가처분신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뭉치면 힘이 커진다=이 때문에 2000년 증권거래법 개정에 따라 도입된 감사위원회가 주목을 받고 있다. 자산 총액 2조원 이상의 상장기업에 대해 의무적으로 구성하도록 한 감사위원회는 3인 이상의 감사위원으로 구성되며 이 중 적어도 2명은 사외이사이어야 한다.

2000년 2월 출범한 국민은행 감사위원회는 이 같은 ‘숫자의 힘’을 잘 보여주고 있는 사례. 더욱이 국민은행은 감사위원회의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해 법에 정해진 최소한의 요건보다 많은 5명으로 감사위원회를 구성했다. 이 중 사외이사는 4명. 올해 벌써 8차례 회의를 할 정도로 위원들의 의욕이 크다. 이러다 보니 회사가 올린 안이 감사위에서 부결되는 일도 있다.

KT도 민영화 이후에 사외이사 3명으로 감사위원회가 구성되면서 사내에서 감사의 비중이 커졌다는 게 회사 관계자들의 평가.

12월 결산 상장회사 571개 중 감사위원회를 설치한 회사는 3월 말 기준으로 101개사. 그러나 국민은행 등 일부 회사를 제외하고는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는 회사가 아직까지는 적은 편.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대표 김주영)의 이은정 회계사는 “기업 공시자료를 통해 감사위원회의 활동을 분석해보면 대체로 분기에 한 번 꼴로 모여 반기보고서나 결산보고서를 승인하는 사례가 눈에 많이 띈다”며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다”고 말했다.

▽감사위원회, 걸림돌인가 약(藥)인가?=감사나 감사위원회의 적극적인 활동에 대해서 “권한이 너무 강화되면 경영활동에 지장을 줄 수도 있다”는 시각이 기업을 중심으로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 사실.

반론도 있다.

“만약 감사가 없다면 경영진은 모든 소액 주주들이 직접 경영진을 찾아와서 따져도 할 말이 없다. 그러나 감사가 제대로 활동한다면 ‘이렇게 주주를 대신해서 우리를 지켜보는 감사가 있다’며 반박할 수 있다. 또 조직이 갈수록 복잡해지는 상황에서 감사는 경영진을 대신해서 부하 직원들까지 감독해준다. 언뜻 낭비처럼 보이지만, 잘만 활용하면 윈-윈이 될 수 있다.”(서정우 교수)

공종식기자 kong@donga.com

▼전문가의 시각 ▼

정광선
기업지배구조개선 지원센터 원장

기업지배구조는 각 나라의 법제, 법의 집행, 시장경쟁과 규율, 정치, 문화 등 환경적 요소에 영향을 받는다. 특히 90년대 이후의 세계 경제의 글로벌화는 경쟁심화와 자본시장의 통합을 통하여 각국의 지배구조 환경을 크게 변화시켰다. 이 과정에서 지배구조의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개념이 등장하였고 각국의 지배구조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수렴하게 될 것이라는 견해가 조심스럽게 제기됐다.

물론 반론도 많다. 우선 지배구조의 수렴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어떤 지배구조 관행이 글로벌 스탠더드인가에 대한 이론과 실증이 아직 부족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예컨대 주요 이슈인 최고경영자(CEO)와 이사회 의장의 분리 문제는 쉽게 결론이 날 것 같지 않다.

영국에서는 양자의 분리가 일반적이고, 독일은 감독이사가 경영이사를 겸할 수 없으므로 법적으로 분리된 것으로 볼 수 있으나 미국에서는 아직 합쳐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양자가 분리되지 않았을 때에는 선임 사외이사를 선임해서 그가 사외이사의 리더로서 활동토록 해야 한다는 것은 글로벌 스탠더드로 자리 잡았다.

다른 요인들로는 법적 전통의 차이, 기업의 개념과 조직의 차이, 자본시장 발전의 차이 등이 있다. 예컨대 영국과 미국은 증권시장을 통한 직접금융이 활성화돼 있으며 주주의 경영감시가 활발한 ‘주주자본주의’ 국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독일과 일본은 상대적으로 기업 금융의 은행 의존도가 높고, 기업경영 감시에도 은행의 역할이 중요했다. 또 어느 정도까지는 근로자에게도 의존해온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에 가까웠다고 볼 수 있다. 수렴을 더디게 하는 기타 요인들로는 법 집행의 비효율성, 지배구조 문화의 미발달, 투자자의 관심부족 등을 들 수 있다.

반면에 지배구조의 수렴을 촉진하는 요인 중 중요한 것은 대규모 기관투자가들의 주주행동주의이다. 이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지배구조 원칙을 투자 회사들이 채택하도록 요구하며, 국제 네트워크를 형성해 통일된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각국 정부 또는 민간위원회가 채택한 지배구조 모범규준들은 자국 기업들에 대해 지배구조 개선방향을 제시한다. 상당수 국가의 증권거래소가 상장규정을 통하여 기업들에 모범규준을 이행할 것과, 그러지 못했을 때에는 그 이유를 설명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같은 모범규준들은 연구와 토론, 그리고 경험에서 도출된 최선 관행을 반영하는 것이어서 국가별로 큰 차이가 없다. 따라서 지배구조의 수렴에 기여한다.

이 외에도 지역경제통합에 따른 법제의 변화, 각국 금융감독기구 간의 협조,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의 권고, 시민단체와 투자자들의 경영감시활동, 지배구조 평가산업의 등장, 경쟁압력이 증가하는 데 따른 기업의 자발적 대응 등이 수렴을 촉진한다.

과거 독일 및 일본식 지배구조와 영미식 지배구조는 크게 다르다는 인식이 많았으나 그 차이는 작아지고 있다. 예컨대 독일의 감독이사회와 미국의 사외이사는 경영진에 대한 감독측면에서 그 기능이 같아지고 있다. 따라서 피상적인 기업조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양국의 경영감시 형태는 수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일본과 독일의 지배구조에서 차지하는 은행의 비중도 자본시장의 규모 확대, 은행의 기업지분 보유 감소 등을 통해 축소되고 있다.

한편 엔론 등의 회계부정 사건은 미국식 지배구조가 곧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관점에 수정을 가져왔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미국 등 세계 각국의 지배구조 개혁의 계기가 됨으로써 지배구조 수렴을 더욱 촉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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