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611>釣 魚 臺(조어대)

  • 입력 2003년 8월 28일 17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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釣 魚 臺(조어대)

釣-낚시 조 忍-참을 인 覇-으뜸 패 越-넘을 월 苑-나라동산 원 榻-평상 탑

釣魚가 ‘낚시하다’이므로 釣魚臺는 낚시하는 곳, 즉 ‘낚시터’인 셈이다. 희대의 낚시꾼 姜太公(강태공)을 모르는 이가 있을까. 깊은 학문을 쌓았지만 알아주는 이가 없자 매일 渭水(위수)가에 나가 낚시로 消日(소일)했다. 언젠가는 자신을 알아줄 偉人(위인)이 나타날 것을 굳게 믿으면서. 그러기를 수십 년, 그가 앉았던 바위는 한 자 깊이나 파였고 머리는 어느덧 白髮(백발)로 가득했다. 물론 마누라는 진작 도망치고 없었다.

그러나 수십 년의 忍苦(인고)는 헛되지 않았다. 어느 날 渭水가에 사냥을 나왔던 西伯(서백·서쪽의 지도자) 昌(창·후의 周文王)을 만나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희대의 폭군 殷(은)의 紂王(주왕)을 討伐(토벌)하기 위해 擧事(거사)를 계획하던 차 함께 覇業(패업)을 이룰 賢者(현자)를 찾고 있던 중이었다. 두 사람은 一見傾心(일견경심·첫 눈에 마음이 기울음), 志同謀合(지동모합·뜻과 생각이 일치함)되어 함께 殷나라를 타도하는 데 힘을 합쳤다.

擧事 도중 昌이 죽자 아들 發(발)이 遺業(유업)을 계승했다. 물론 姜太公의 도움으로 殷을 멸망시키고 周(주)나라를 세우니 이가 武王(무왕)이다(B.C 1111년). 우리도 잘 아는 伯夷(백이)와 叔齊(숙제)의 고사는 바로 이 때 출현하였다. 수 십 년간 낚싯대를 드리운 결과 姜太公은 ‘천하’를 낚은 셈이니 越尺(월척) 치고는 천문학적인 越尺이 아닌가.

중국에서 釣魚臺로 불리는 곳은 도합 12곳이 있는데 앞서 언급한 姜太公이 낚싯대를 드리웠던 곳은 陝西省(섬서성)에 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가장 유명한 곳은 北京의 釣魚臺가 될 것이다. 800여년 전 金(금)나라의 章宗(장종) 完顔璟(완안경)이 낚시를 하면서부터 역대로 禁苑(금원·천자의 놀이동산)이 되었던 곳으로 후에 淸(청)의 乾隆(건륭)황제가 城堞(성첩·성가퀴)에 ‘釣魚臺’라는 친필을 남겼으며 淸末의 西太后(서태후)가 사용했던 각종 器物(기물)들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어 더욱 유명해졌다.

여기에 각종 花卉(화훼)와 樹木(수목), 그리고 樓閣(누각)들이 호수와 함께 어우러져 천하의 절경을 이루는 데다 總統樓(총통루)가 있어 외국의 국빈급 인사들이 下榻(하탑·投宿)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 釣魚臺가 다시 한 번 세계의 耳目(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6자회담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좋은 결실을 기대해 본다.

鄭 錫 元 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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