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시욱칼럼]南美증후군 걱정된다

  • 입력 2003년 5월 28일 18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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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초기의 혼란으로 치부하기에는 사태가 심상치 않은 것이 노무현 정부가 처한 오늘의 상황이다.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은 교육부의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도입문제 등 최근 여러 현안의 처리과정에서 나타났듯이 원칙과 일관성을 잃어 국민의 신뢰가 급속히 떨어지고 있다.

이러한 국정난맥상은 몇몇 특정 부서의 책임이라기보다는 국정의 최고책임자인 노 대통령의 리더십 문제와 아마추어들로 구성된 청와대의 핵심 보좌진, 그리고 일부 각료들의 행정미숙이 만들어 낸 체질적이고 구조적인 것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총리-장관은 없고 청와대만 ▼

오늘의 국정혼란을 가져온 가장 직접적 원인은 노 대통령의 모험적인 인사정책과 불안정하고도 무원칙적이고 일관성 없는 국정운영 방식에 있다. 국정난맥에 관한 한, 바로 그 자신이 ‘문제 제1호’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전교조를 강력히 비난했으나 며칠 만에 태도를 바꾸어 교육부를 혼란 속에 몰아넣음으로써 자신의 국정운영 능력에 의문이 일게 했다. 말로는 ‘시스템에 의한 국정’을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거의 모든 중요 국정과제에 청와대가 간여해 책임총리제니 장관책임제니 하던 당초의 공약은 무색해졌고, 심지어 교육정책은 정부와 전교조가 공동 결정한다는 말까지 나오는 지경이 되었다.

더욱 걱정되는 것은 노 대통령 개인에 관련된 의혹사건들이다. 국민은 국정책임자의 위선이나 거짓은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만약 그의 해명 기자회견에도 불구하고 의혹이 계속 제기된다면 앞으로 5년을 그가 어떻게 끌고 갈 것인지 걱정이다.

노 대통령의 지도력 결여는 민주당의 신당 창당 문제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여당인 민주당이 양분되는 사태가 앞으로 그의 국정운영과 한국정치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속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일단 여당의 분열현상이 일어난다는 사실 자체가 그의 정치적 지도력의 한계를 보인 것이다. 만약 신당이 내년 총선에서 패배해 여소야대가 계속된다면 그의 국정수행에 큰 시련이 올 것이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 못해 먹겠다’고 말해 국민을 크게 실망시켰지만 13대 국회의원 때 그는 두 번씩이나 의원직 사퇴서를 냈다가 번복한 일이 있다. 그는 89년 3월 노동운동에 대한 불법탄압을 보고 자신의 의정활동에 회의를 느껴 대중투쟁에 동참하기 위해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했다가 보름 후 사퇴를 번복했다. 그는 90년 7월에는 3당 합당 이후 민자당의 횡포에 항의하기 위해 다른 야당의원 3명과 함께 다시 사표를 냈다가 역시 철회했다.

노 대통령이 최근 실언을 거듭한 데는 두 가지 원인이 작용하고 있다. 첫째는 그가 공식석상에서 비속어(卑俗語)를 거침없이 쓸 정도로 말에 신중성을 잃고 있는 점이다. 언어는 사고의 표현이지만, 사고를 구속하는 틀이기도 하다. 신중하지 못한 언어는 신중하지 못한 행동을 낳는 것이다.

둘째는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이래의 현상인데, 대통령이 거의 매일같이 TV에 등장하는 과다노출 문제다. 그동안 모두가 전파타기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참석한 회의가 공개회의라면 그의 발언이 보도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회의 자체는 비공개이면서도 대통령이 말하는 모습만 보도하는 방식이 어느새 상례화되고 말았다. 문제는 이런 자리에서 정부정책으로 확정되지 않은 대통령 개인 의견이 표명됨으로써 국정혼선의 원인이 되는 점이다. 노 대통령의 실언이 더 이상 없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인기영합-집단利己 막아야 ▼

요즘 한국정치의 모습은 남미증후군(南美症候群)과 비슷하다. 좌경화 현상과 지도자의 인기영합주의, 부패와 정치 불신, 경제의 구조조정 지연과 계층간 갈등의 심화, 노동자들의 집단이기주의와 국민의 애국심 결여 등 많은 유사점들이 그렇다. 남미와 한국은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 배경이 크게 달라 한국의 남미화 우려가 한낱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제발 그러기를 바라지만, 최근 한국에서 돌아가는 정치의 모습이 너무도 남미를 닮아가고 있어 불안하기 짝이 없다.

남시욱 언론인·세종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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