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더라”]안정환은 머리가 나쁘다?

  • 입력 2003년 4월 24일 10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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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탄저우바오’의 아리에 한 감독 인터뷰 기사
‘티탄저우바오’의 아리에 한 감독 인터뷰 기사
“‘한국 축구가 이 정도밖에 안돼?’ 안정환은 머리가 나쁘다. 유상철은 마피아. 아리에 한 중국 국가 대표팀 감독이 한·일 축구를 낮춰 보며 승리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또 안정환에 대해선 인신공격까지 했다.”

22일자 국내 모 스포츠 신문에 실린 기사의 머릿글이다.

기사 제목은 “안정환 머리 나쁜 선수”.

이름이 거명된 선수는 자존심에 큰 상처를 받을 만한 기사 내용이다. 국내 축구팬들도 기분나쁘기는 마찬가지.

☞ 중국어 기사 원문보기

실제 이 기사를 본 축구팬들은 한 감독과 중국을 비난하는 글을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 올리는 등 파문이 일 조짐을 보이고 있다.

문제의 기사를 제공받아 서비스하고 있는 포털사이트 ‘다음’의 경우 스포츠 토론방에 지난 21일부터 분노한 네티즌들이 꾸준히 글을 올리고 있다.

ID가 ‘이슬기’인 네티즌은 “중국대표팀 감독님”이란 제목으로 “상대방이 좋은 길로 접어들 수 있게 지적해 주시는 것과 삐뚤어진 시선으로 비판하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지적해 주신다면 아마 감독님은 상당히 포용적인 성격이시겠지만 비판하신다면 악랄하시다고 해야겠죠? ”라고 글을 올렸다.

또 ID‘★harry potter zzang★’의 네티즌은 “안정환 선수와 유상철 선수를 그렇게 비난하는 것은 매너없는 사람입니다. 명색이 중국 축구 감독이면 최소한 매너있게 행동을 하셔야죠. 그리구 그렇게 거만 하다간. 월드컵도 출전 불가능 이에염. 입장을 바꿔서 생각을 하셔봐염. 암튼 사과 하세여!”라고 직접사과를 요구하기도 했고, ID가 ‘케이’인 네티즌은 “15억 vs 5천만 축구경기 한판하자”란 제목으로 “이렇게 축구를 해도 우리가 이겨. 천안문 광장서 한겜하는거야. 그래야 한국 축구가 그만큼 벽이 높다는 걸 알지. 저렇게 말로만 해서 보는것만으로는 지들 맘대로 평가하니깐. 중국감독은 그렇게 말하고 한국한테 지면 또 뭐라고 대답할려나. 너무 궁금하네. 물론 그대답은 변명일게 뻔하지만…”라고 말하는 등 한 중국 감독을 비난하는 글들을 토해냈다.

만일 이 기사가 사실이라면 아리에 한 감독은 한국에 가장 많은 팬을 거느린 슈퍼스타 안정환과 유상철을 인신 공격한 ‘저질’로 한국축구팬들은 물론 일반 국민들로부터 비난을 받을 소지가 충분하다.

문제의 기사는 중국 축구 전문 주간지 ‘디탄저우바오’ 인터넷판(www.titansports.cn)최근호에 실린 내용을 인용 보도한 것이다.

안정환과 유상철을 다룬 부분을 좀더 살펴 보자.

“한 감독은 또 일본전에 참가한 유일한 해외파인 안정환에 대해 “실력은 상당히 좋지만 머리가 나쁘다. 자신에게 세차례나 득점찬스가 있었느데 패스를 하면 골을 넣을 수 있었을 것을 직접 슈팅을 날려 기회를 무산시켰다”고 최악의 평가를 내렸다. 유상철을 두고는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좋은 체격 조건을 잘 활용한다. 하지만 태클이 아주 악랄하고 잔인하다”며 요주의 선수로 꼽았다. 데용 코치도 거들어 유상철을 ‘마피아’라고 표현했다.”

과연 한 감독은 두 선수에 대해 악의적으로 말을 한 걸까.

한 나라의 축구대표팀감독은 축구에 관해선 대외적으로 그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으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이 다른 나라 선수를 인격적으로 모독하는 말을 그것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쉽게 할수 있을까.특히 네덜란드인 한 감독은 4개 국어에 능통한 스포츠매니저 출신으로 영리하고 지략이 뛰어난 ‘지장’ 조조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지성인’ 한 감독이 정말 상식밖의 말을 했을까. 깊은 의문이 들었다. 문제가 된 기사의 원문을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꼼꼼히 살펴봤다.

이신문이 인용 보도한 중국 축구 전문 주간지 티탄저우바오 인터넷판 (www.titansports.cn) 996호를 보자.

기사 제목은 “중국은 능히 독일 월드컵 본선에 진출할 것이다.”

기사는 마더싱 기자가 썼다. 그는 지난 16일 아리에 한 감독, 데오 코치, 그리고 축구협회 간부인 장지롱과 함께 방한, 한일전 축구 경기를 관람한 후 인터뷰 기사를 작성했다.

‘티탄저우바오’ 인터넷판이 보도한 안정환과 유상철관련 부분을 원문 그대로 요약 해석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곳에 오기전 나는 TV에서만 적지 않은 아시아국가들의 경기를 봤을 뿐이다. TV에서 보는 것과 현장에서 보는 축구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비록 이번 한일전에 한일 양국의 많은 해외파 선수들이 참가하지 못했지만, 그러나 나는 한일 양국의 축구에 대해 어느정도 파악을 할 수 있었다. 한국팀의 첫번째 주는 인상은 신체적 조건이 매우 좋은 것이다. 특히 등번호 6번의 미드필더인 유상철이 인상적이다. 테오 데용 수석 코치는 경기를 10분정도 본 후 나에게 그(유상철)를 지칭해 미드필드의 ‘마피아(黑手黨)’로 몸싸움에 능숙하고 또 태클이 특히 사납고 거칠다며 신체를 잘 이용해 미드필드에서 합리적으로 수비를 하고 있다 고 말했다. ”고 아리에 한 감독은 말하며 테오 데용 수석 코치와 함께 웃기 시작했다.

“수비라인에서는 등번호 7번인 김태영이 매우 출중하고 조직적인 방어에 매우 ‘두뇌(頭腦)’가 있다. 공격수중에서는 등번호 19번의 안정환이 매우 인상적이다. 그의 기술은 매우 출중하지만 그는 ‘두뇌(頭腦)’가 부족하다. 이번 경기에서 그는 적어도 3번의 득점기회가 있었으며, 그는 동료에게 패스를 했어야할때였지만, 자기가 직접 골문을 향해 슛을 날린게 매우 안타깝다.”고 말했다.》

모 스포츠 신문의 기사와 원문에서 가장 크게 차이가 나는 대목은‘두뇌(頭腦)’. 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의미는 크게 달리지기 때문.

경기대학교 한국동양어문학부(중어중문학전공) 유영기 교수에게 자문을 구했다.

유교수의 해석. “‘頭腦’는 중국어에서 3가지 뜻이 있는데 첫째는 두뇌(머리), 둘째는 두서 실마리, 셋째는 두목(우두머리) 이다. 위 기사에서 두뇌를 (머리)로 해석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고 두번째 뜻인 두서(실마리, 요령)로 풀이하는 것이 합당하다. 그 부분을 다시 해석하면 ‘안정환은 요령이 부족했다 (게임의 실마리를 풀어나가지 못했다) ’가 적합하다”고 말했다.

결국 모 스포츠신문에 실린 기사는 중국어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단순히 단어 풀이에만 치중, 한 감독이 안정환을 인신공격한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오류를 범한 것.

유교수의 말을 더 들어보자.

“ 한국 한자어와 중국어 어휘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가령 ‘ 我對韓國有感情’ 이란 중국어 문장을 제대로 해석하면‘나는 한국에 대해 좋게 생각한다’ 이다. 여기서 ‘感情’의 의미는 호의적인 표현으로 긍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감정’이란 단어를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쓰는 데로 해석하면‘나는 한국에 유감이 있다’는 부정적인 의미를 로 변질된다.”

또, 유교수는 유상철을 ‘마피아’라고 표현한 것에 대해서는 “친구들간에 “이 악랄한 놈아!”라고 사용하는 것처럼 스스럼없이 농담식으로 말하는 것으로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다. 마피아처럼 집요하고 몸싸움을 거칠게 잘한다는 것으로 오히려 아주 칭찬하는 의미로 해석해야한다.”고 덧붙였다.

유교수는 모 스포츠신문 기사는 중국어를 해석하면서 한국 한자어와 혼돈해 생긴 해프닝으로 풀이했다.

최민·박해식 동아닷컴기자 pistol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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