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 스케치]'수문장 교대의식'…도심에 봄을 열다

  • 입력 2003년 3월 21일 18시 10분


코멘트
20일 경복궁에서 열린 ‘왕궁 수문장 교대 의식’ 에서 수문군들이 임무 교대를 위해 흥례문 앞으로 행진하고 있다. -박주일기자
20일 경복궁에서 열린 ‘왕궁 수문장 교대 의식’ 에서 수문군들이 임무 교대를 위해 흥례문 앞으로 행진하고 있다. -박주일기자
겨우내 중단됐던 ‘수문장 교대의식’이 봄과 함께 다시 시작됐다. 이달 초 경복궁 교대의식이 재개된 데 이어 22일 창덕궁, 23일 덕수궁에서도 시작된다.

20일 오후 1시 서울 종로구 세종로 경복궁 흥례문 앞.

흥례문 서쪽 행각(行閣) 먼발치에서 ‘둥둥’ 북소리가 울렸다. 궁궐을 지키는 건장한 체격의 조선 수문군(守門軍) 20명이 취타대(吹打隊)를 앞세우고 흥례문 앞으로 당당하게 발길을 옮겼다. 수문장(守門將)을 위시한 이들 병사는 흥례문 앞에 정렬했다. 수문 임무가 시작된 것이다.

잠시 후 순찰 임무를 맡은 순장(巡將)이 수문군 병사들의 근무 상태와 복장을 점검했다.

취타대의 국악 소리가 울려 퍼지며 다시 20명의 수문군이 나타났다. 교대 병력의 수문장은 앞서 근무하던 수문장 앞으로 다가가 서로 군호(軍號·군대 암호)를 확인하고 수문장 패(牌·일종의 통행증)와 열쇠를 교환했다. 이어 등채(의장용 채찍)를 들어 서로 경례하고 각종 전달사항을 인수인계했다.

교대식이 열리는 동안 외국인 관광객과 어린이들은 병사들을 따라다니며 걸음걸이를 흉내내곤 했다. 병사들의 모습이 신기한지 몰래 다가가 슬쩍 만져보는 사람도 있었다. 한 병사가 키득거리자 옆의 병사가 나지막하게 “웃지마” 하고 주의를 주었다.

흥례문 앞 게시판에 붙어 있는 ‘수문 규칙’도 인기 만점. ‘부녀자를 데리고 들어오는 자는 처벌한다’, ‘노름하다 분해서 싸우는 자는 처벌한다’, ‘헛된 말로 까닭 없이 놀라게 하는 자는 처벌한다’ 등이다.

충남 부여군에 산다는 한 할아버지는 “여보, 이것 좀 봐.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군” 하면서 유쾌하게 웃었다. 그러나 할머니의 궁금증은 따로 있었는지 “저 총각들 누군데 저렇게 키가 큰가요” 하고 물었다.

교대의식 행사를 주관하는 한국문화재보호재단 김원철(金元喆) 기획실장의 설명.

“공모를 통해 선발하는데 키가 제일 중요합니다. 대개 1m80 정도의 군악대 의장대 출신 젊은이들입니다. 특별한 조건은 없지만 담배를 피우면 어려울 겁니다. 고궁은 금연구역이기 때문에 종일 담배 피우는 것을 참아야 하거든요. 담배 피우다 걸리면 곧바로 귀가 조치합니다.”

수문군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은 걸음걸이다.

올 1월 국방부 의장대를 제대하고 수문군 역을 맡고 있는 김수한(金洙漢·23·한양대 건축과)씨는 “군 의장대는 일(一)자 걸음인데 여기선 약간 팔(八)자 걸음을 해야 한다”면서 “잠깐 딴 생각을 하면 다시 일자로 돌아가 애먹는다”고 말했다.

문화재보호재단은 4월 11일부터 병력을 80명으로 늘려 좀 더 웅장한 규모로 교대의식을 꾸밀 계획이다. 또 교대식 중간 중간에 전통 태껸과 검법(劍法)도 선보인다.

경복궁 의식은 11월 10일까지 매일(화요일 제외) 오전 10시∼오후 4시 매시 정각에 시작돼 30분간 열린다. 서울시가 주관하는 덕수궁 창덕궁 의식은 12월 31일까지 매일(월요일 제외) 오후 2시∼3시반에 3차례 진행된다.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