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크엔드 포커스]'별을 쏘다' 벨소리 작곡한 김영준씨

  • 입력 2003년 1월 16일 17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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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소리 전문 작곡가 김영준씨. 신석교기자
벨소리 전문 작곡가 김영준씨. 신석교기자
TV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이 사용하는 휴대전화 벨소리는 드라마 시작과 동시에 금세 유행을 탄다.

하지만 최근 종영된 SBS 드라마 ‘별을 쏘다’의 주인공 전도연, 조인성이 사용한 벨소리는 드라마 방영 초기에 널리 퍼지지 못했다. 귀에 익지 않은 멜로디였기 때문. 지난해 11월 드라마가 시작되자 ‘별을 쏘다’ 홈페이지에는 벨소리의 원곡 제목은 무엇인지, 어디에서 구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의가 줄을 이었다.

시청자들이 전도연과 조인성의 벨소리를 찾아 헤맬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 두 곡 모두 기존에 있던 곡이 아니라 벨소리용으로 새로 작곡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 곡을 만든 사람은 김영준씨(31)다. 김씨는 ‘벨소리 전문 작곡가’. 벨소리 포털 ‘노컷벨(www.nocutbell.co.kr)’을 운영하는 동영아이텍의 뮤직컨텐츠팀 소속 작곡가다.휴대전화 벨소리 시장이 커지면서 생긴 신종 직업이다. 김씨는 갖고 있던 습작 가운데서 극 중 두 사람의 캐릭터에 맞는 곡을 골라 멜로디를 만들었다.

네티즌들 사이에 ‘전도연벨’ ‘조인성벨’로 이름 붙여진 두 곡은 출처가 알려지자마자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드라마 방영 기간인 지난해 11월부터 1월 중순까지 두 곡은 벨소리 다운로드 회수를 따져 순위를 매기는 네이트의 월간 ‘벨소리 차트’에서 1,2위를 다퉜다. 1월 13일 현재 ‘전도연벨’은 약 14만건, ‘조인성벨’은 약 10만건 다운로드됐다.

가요, 팝송 등 기존 곡을 전환해 만든 벨소리에 익숙한 소비자들로선 별도로 작곡한 벨소리가 있다는 사실이 생소하다. 그러나 김씨는 30초짜리 신곡 멜로디에 승부를 건다.

“가요처럼 신곡 발표 형식으로 대중에 곡을 알릴 수 없기 때문에 ‘신곡’을 알리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드라마에 PPL(Product Placement) 방식으로 제공하는 겁니다. 드라마 삽입용 벨소리는 보통의 것보다 더 짧아 15초에 승부를 보아야 하죠.”

김씨는 ‘별을 쏘다’에 이어 후속 드라마 ‘올인’ 주인공들의 벨소리도 작곡했다. 이병헌 송혜교 지성 등 주연급 5명의 벨소리를 각각 3곡씩 만들어 제작팀에 넘긴 상태.

작곡가이긴 하지만 새로운 곡만 만드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곡을 벨소리용으로 전환하는 작업도 김씨의 주요 업무다.

현재 벨소리 시장에서 가요의 점유율은 약 80%. 벨소리는 신곡을 가장 빨리 반영하기 때문에 가요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만만치 않다. 가수들이 ‘벨소리 차트’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을만큼 벨소리는 가요의 인기도를 재는 주요 수단이 됐다.

기존 곡을 벨소리로 만들 때 사용하는 악기는 키보드다. 기타, 건반, 드럼 등 모든 악기의 소리를 키보드 한 대로 재생한다. 김씨는 각 악기가 내는 음을 옮길 때 원곡의 악보를 참고하지 않는다. “수많은 악기와 목소리가 뒤섞여 있어도 각 악기별로 구분해서 들을 수 있고 들리는 대로 옮긴다”고 밝혔다.

같은 곡이라도 휴대전화의 종류에 따라 다른 느낌의 벨소리가 만들어진다. 16화음이냐, 40화음이냐에 따라 담을 수 있는 음의 가짓수가 달라지기 때문.

화음은 ‘동시 발음수’를 뜻한다. 예를 들어 ‘오 필승 코리아∼’라는 노래에서 ‘오’가 불려지는 순간만을 따로 떼어놓고 따지면 우선 가수의 음성이 1화음이다. 반주악기인 피아노의 경우 건반을 두드리는 손가락 개수가 각각 하나씩의 음을 차지한다. 16화음은 그렇게 구분한 음을 동시에 16개까지 수용할 수 있다는 뜻. 따라서 40화음의 벨소리가 16화음보다 더 풍성하다. 일본에는 이미 64화음이 가능한 휴대전화기가 나왔다.

“벨소리용으로 제일 적합한 장르는 댄스곡입니다. 드럼 부분만 잘 표현해도 원곡의 느낌을 살릴 수 있기 때문이죠. 음과 음 사이에 미세한 변화가 있는 발라드는 자칫 잘못 옮기면 어설픈 느낌이 듭니다.”

김씨는 일단 ‘벨소리 작곡가’로서 실력을 쌓고 이름을 알린 다음 가요 작곡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욕심이다. 훗날을 대비해 현재 만드는 벨소리용 곡에 일일이 가사와 제목을 붙이고 있다. ‘전도연벨’과 ‘조인성벨’에 김씨가 붙인 제목은 각각 ‘권태기’와 ‘잠시 쉬어’. 그는 “전도연 벨소리를 더 길게 이어 붙여서 정식 가요로 만들어 달라는 주문이 많다”고 말했다.

김씨는 홍익대 조선공학과를 수석 졸업하고 현대중공업 특수선 설계부에 근무하다가 음악을 하고 싶어 회사를 그만 뒀다. 대학 시절 작곡서클에서 활동했지만 전문적인 음악교육을 받은 것은 아니다. 김씨는 “전업까지 하면서 뛰어든 곳이 정식 가요 판은 아니지만 다양한 장르의 곡을 접할 수 있어 음악 공부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올해 벨소리 시장 규모는 100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30여 개에 이르는 벨소리 서비스 업체들은 한 업체당 매주 새로운 벨소리를 수십 곡씩 선보이며 경쟁하고 있다.

금동근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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