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크엔드포커스]입다문 전경련…위원회는 뛰고 있다

  • 입력 2003년 1월 23일 17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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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전경련 회관.신석교 기자
여의도 전경련 회관.신석교 기자
전국경제인연합회 직원들은 요즘 말을 삼간다. 올 초 손병두 부회장이 라디오 인터뷰에서 새 정부의 재벌 정책을 조목조목 비판한 데 이어 김석중 상무의 뉴욕타임스 인터뷰 파문이 불거졌다. 그 직후 전경련 임원진에 ‘함구령’이 내려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전경련 직원들은 새 정권 초기에는 늘 전경련에 ‘비난의 화살’이 날아오곤 했다며 무덤덤한 표정들이다.

그런가 하면 그룹총수들이 전경련 회장 자리를 고사하고 있다. 요즘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는 전경련은 어떤 조직일까.

● 전경련 활동의 핵은 위원회

국내 400여 대기업들의 모임인 전경련이 벌이는 모든 활동의 바탕에는 ‘올바른 시장 경제 구축’이라는 이념이 깔려 있다. 전경련은 일상적으로 △정부의 경제 정책 및 제도에 대한 의견을 내고 △각국 경제 단체 등을 통한 경제 외교를 하며 △국내외 주요 경제 사안에 대한 조사 연구를 실시한다. 경제주체의 한 축인 기업의 입장에서 경제 현안을 바라보고, 검토하고, 발전 방안을 마련하는 것.

활동은 24개 위원회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위원회는 필요에 따라 신설 소멸된다. 각 위원장은 대부분 전경련 회장단 멤버인 대기업 대표들이 맡고 있다. (표 참조)

위원회의 실무를 맡는 것은 전경련 사무국. 사무국 내에서도 주로 경제조사본부, 산업조사본부, 규제조사본부 직원들이 핵심 위원회에 소속돼 있다. 즉 전경련 직원들은 여의도 전경련회관 내 각 부서에 근무하면서 소속 위원회의 업무도 맡는다. 김석중 상무는 경기, 금융 등 거시적인 연구를 총괄지휘하며 각 기업 기획조정실과 협력하는 경제조사본부장을 맡고 홍보팀을 이끌고 있는 국성호 상무는 공공적인 성격의 사업을 하는 각 기업 부설 재단과 연계된 사회본부장이다.

업무는 크게 조사 연구, 정책 건의, 경제 행사 주관 등. 조사 연구 업무의 결과물은 주로 보고서 형태로 회원사를 중심으로 배포된다. 최근에는 △기업윤리와 기업가치 및 성과간의 관계 분석 △주요기업의 연구개발(R&D) 투자 현황과 과제 등의 보고서가 나왔다.

정책 건의는 수시로 이뤄진다. 전경련 관계자는 “경제부처별로 법률 개정안이나 시행령을 내놓으면 즉시 위원회 차원에서 검토한 뒤 대응한다”고 말했다. 위원회 멤버들은 정부 부처를 비롯한 관련 기관을 수시로 찾아다닌다.

위원회는 수시로 열리지만 위원장은 꼭 필요할 때만 얼굴을 비치는 정도다. 주로 본부장들이 해당 기업으로 위원장을 찾아가 보고한다. 전경련 관계자는 “대기업 대표들과 독대할 수 있는 자리라 본부장들의 위상은 일반 기업에 비해 높다”고 밝혔다.

대부분 고학력인 직원들의 자부심은 크다. 140여명 직원 중 석사, 박사, 경영학석사(MBA) 출신이 90여명이다. 모두 수십 대 1의 경쟁을 뚫고 공채됐으며 2000년부터는 석사 이상만 뽑고 있다. 경제 경영 전공자가 전체의 70% 이상이다. 한 직원은 “입사 때는 ‘친 재벌’ 느낌 때문에 조직에 대한 반발이 생기기도 하지만 ‘시장경제 정착’이라는 목표가 몸에 배게 되면 스스로 소신이 생긴다”고 밝혔다.

● 왜 전경련이 재계대표인가

1961년 전신인 한국경제인협회 때부터 전경련은 민간 기업을 대표하는 단체로 자리매김해왔다. 초대 고(故) 이병철 삼성 회장부터 시작해 고 김용완 경방회장, 고 정주영 현대 회장 등으로 이어진 전경련 회장은 ‘재계 총리’로까지 불렸다. 그러나 최근들어 전경련의 ‘위상’과 관련해 미묘한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전경련의 회원사는 증권업협회, 대한건설협회, 자동차공업협회 등 65개 경제 단체를 포함해 모두 400여개. 매출액 종업원수 등에서 ‘일정 규모’ 이상만 가입할 수 있다. 결국 30대 그룹의 계열사들은 대부분 가입돼 있다. 연 150억원인 전경련 예산은 회원사들이 매출규모에 따라 차등으로 내는 회비로 충당된다.

회원 수에 있어선 대한상공회의소나 무역협회가 훨씬 규모가 크다. 상의의 회원사는 3500개, 무협의 회원사는 8만4000개에 이른다. 상의는 ‘반기매출액 70억원 이상’인 기업은 의무적으로 가입하게 돼 있는 법정 단체. 무협은 ‘사업자 등록증을 가진 회사’가 가입 기준이다. 전경련은 가입과 탈퇴가 자유로운 임의 단체다.

전경련 출신의 한 인사는 “수적인 문제가 아니라 누가 재계의 입장을 대변하는 실질적인 역할을 하느냐를 따져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 상의와 무협 회장의 인선 과정에는 정부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 즉 두 단체는 정부의 뜻에 반해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던 셈이다. 민간단체인 전경련은 회원사와 재계 전반의 이익을 옹호하는 목소리를 내 왔다.

또한 조사 연구, 정책 건의 등에서도 전경련은 단연 앞서왔다. 전경련 활동의 이론적 뒷받침은 한국경제연구원과 자유기업원이 맡고 있다.

현재 좌승희 원장이 이끌고 있는 한국경제연구원은 전경련 산하 연구기관으로 정부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시장경제 논리를 전파한다는 목적 아래 각종 연구를 하고 있다. 1997년 전경련 산하 자유기업센터로 출범해 2000년 별도 재단법인으로 독립한 자유기업원은 기업의 편에 서서 정부의 정책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역할을 맡아왔다. 한경연이 ‘머리 역할’을, 자유기업원은 ‘목소리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대기업 인사는 “참여연대, 경실련이 시민단체로 불리는 것처럼 자유기업원 역시 방향만 다를 뿐 정부를 감시하는 시민단체”라고 평가했다.

전경련은 또 한일 재계회의, 한미 재계회의, 한불 최고경영자클럽 등 26개 경제협의회를 통해 경제외교를 펼치고 있다.

전경련 회장단 모임은 늘 전체 기업들의 관심을 모은다. 회장단 회의는 한 달에 한 번씩 비공개로 열리고 회의에서 모아진 의견은 손병두 부회장의 입을 통해 대외에 알려진다. 회장단 회의에 이건희 삼성회장이나 정몽구 현대차회장 등 거물급이 참석하는 경우 전체 참석률도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2월 6일 열릴 총회를 앞두고 28일 100여명의 이사가 참석하는 이사회가 열릴 예정. 물론 회장단도 포함된다. 차기 회장 선출이 총회의 주요 의제이기 때문에 이번 이사회에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삼성, LG, 현대기아차, SK 등 이른바 4대 그룹 회장들은 이미 직간접적으로 “회장직을 맡을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금동근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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