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153…1929년 11월 24일 (4)

  • 입력 2002년 10월 21일 17시 50분


어떤 집에서는 해가 지려면 아직 멀었는데 온 집의 문을 꼭꼭 닫고, 젊은 남자가 참외처럼 생긴 깡통에 화약을 담고 있었다. 바람이 숨을 죽이고 행랑채로 불어든 순간 남자의 손에 뿌연 빛을 던지고 있던 알전구가 나가버렸다. 남자는 흠칫 놀라 어깨를 들고 돌아보더니 일어나 문이 잠겨 있는 것은 확인하고는 성냥을 그었다. 한 점 빛이 생기고 남자의 얼굴이 어슴프레 밝아졌는데, 등잔에 불을 붙이기 전에 휭-휭- 부는 바람에 성냥불이 꺼지고 말았다.

어떤 집에서는 한 여자가 아이를 낳는 중이었다. 아직 댕기머리를 올리지 않은 여자가 두 다리를 쩍 벌리고 힘을 주고 있다. 곁을 지키는 사람은 과부 숙모 한 명 뿐이었다. 산신 할매 산신 할매 그저 무사히만 태어나게 해 주십시오, 비나이다 비나이다. 숙모는 산신상을 향해 중얼중얼 빌면서 두 손을 이마위로 올리고 엎드렸다. 건강한, 사내아이를, 낳을 수 있게 해 달라고, 빌어요, 제발, 사내아이, 라고 여자는 고통으로 토막토막 말을 이으면서 힘을 주었다. 산신 할매 산신 할매, 그저 건강한 사내아이 하나 쑥 낳게 해 주소서, 숙모는 말을 바꿔 산신상을 향했다. 앗, 내려왔어, 나올 것 같아, 라고 여자가 소리치자 숙모는 속치마를 걷어올리고 들여다보았다. 사타구니 사이로 태낭이 나와 있다. 아이고, 다 열렸다, 힘내라! 힘내! 아이구구구구! 여자는 전신의 힘을 한 곳으로 모아 힘을 주었다. 나왔다! 머리가 나왔어! 조금만 더! 힘 내! 바람은 젯상의 촛불을 흔들며 일어나 태어날 아이의 아버지에게로 길을 서둘렀다.

남자는 네 살 짜리 둘째 아들과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남자아이는 리어카에서 고무신을 꺼내 선반에 진열하는 것을 거들고 있었다.

“오, 대단타 우리 아들, 아버지가 나중에 무등 태워주마”

“아버지, 군밤 사주라”

“그래그래, 사주고 말고”

“군밤, 비싸나?”

“그래 안 비싸다”

“얼마 하는데?”

“5전 쯤 할끼다”

“밤은 어느 산에서 따 오는데?”

“글쎄다, 어느 산에서 따오는공”

“나, 밤 따보고 싶다”

“그럼 다음에 아버지하고 따러 가자”

“와 신난다! 아버지하고 간다! 아버지하고 간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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