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조의 풀코스 인터뷰]축구대표팀 골키퍼 이운재

  • 입력 2001년 6월 11일 19시 49분


한국 축구가 큰 경기를 할 때면 마치 내가 선수가 된 것 처럼 마음을 졸인다. 2001컨페더레이션스컵 기간에도 한국 경기가 열리는 날은 만사를 제쳐놓고 TV로 경기를 지켜봤다. 세계 최강이라는 프랑스와의 경기 때는 정말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며 응원했지만 너무 참담한 패배에 허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축구팬인 내가 이 정도니 선수들은 오죽했으랴.

그 중에서도 5골을 ‘먹은’ 한국대표팀 수문장 이운재 선수(29·상무)의 마음은 어땠을까?

8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만난 이운재는 부상의 흔적으로 이마에 커다란 반창고를 붙였지만 큰 전쟁을 겪고 난 역전의 용사처럼 늠름한 모습이었다.

황영조:호주 선수의 발에 차여 다친거죠?. 지금 상태가 어떻습니까?.

이운재:발에 차인게 아니라 무릎에 받쳤어요. 병원에서 20바늘을 꿰맸고 오늘 실밥을 뺐어요.황:성형외과에서 치료했으니 상처는 안남겠지만 얼굴을 다쳐 가슴이 아팠겠네요.

이:아니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골키퍼를 하다보면 많이 다치거든요. 다만 TV를 통해 지켜보던 부모님과 집사람이 걱정했을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황:프랑스와의 경기에서는 5골이나 먹었는데 심정이 어땠어요.

이:골키퍼를 시작한 뒤 5골을 먹은게 처음입니다. ‘내가 이것밖에 안되나’는 생각이 들면서 개인적으로 한심했습니다. 얼이 빠져 어떻게 경기를 했는지도 몰랐습니다.

황:프랑스와 싸울 때 최후방에서 한국선수들이 허둥대는 모습을 보면서 무엇을 느꼈습니까?.

이:솔직히 어른하고 아이들이 경기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세계의 벽이 너무 높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꼈습니다. 프랑스가 진짜 잘한다는 생각밖에 안들었어요.

황:왜 그런 차이가 난다고 생각합니까?.

이:축구환경 때문이라고 봅니다. 성장과정이 틀리잖아요. 축구선진국에서는 어렸을 때 부터 체계적으로 지도받는데 우린 그렇지 않아요. 또 축구선진국의 어린이들은 축구를 즐기면서 합니다. 즐기면서 해야 많이 실력이 성장하는데…. 그런 점에서 우리는 아직 멀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황:골키퍼는 수비수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인데 본인이 생각하기에 경기 도중 한국 수비수들의 움직임은 어떻다고 생각하나요.

이:프랑스전 때 수비수들은 제 역할을 다 잘하려고 노력했어요. 다만 위축된 나머지 실수를 많이 해 골을 너무 쉽게 먹었을 뿐이에요. 멕시코와 호주전에선 잘했잖아요.

황:한국선수들이 프랑스전과 멕시코 호주전에서 큰 차이를 보인 이유는 뭘까요?.

이:왠지 모르게 프랑스전에선 잘 안됐어요. 자신감은 있었지만 실수를 많이 했어요. 멕시코전에선 자신감도 있었고 경기도 잘풀렸어요.

황:경기를 하다보면 선수들에게 지시하는 모습이 많던데 주로 무슨 얘기를 하나요.

이:선수들이 그라운드에 서면 감독님 얘기는 거의 안들려요. 운동장에선 제가 감독이죠. 맨 뒤에서 보니까 움직임이 다 보이지요. 그래서 선수들이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를 지시합니다. 급할 때는 선배한테도 “야 이쪽으로 움직여”라고 소리칠 때도 많아요. 사실 실점하지 않기 위해선 저만 잘해선 안되거든요. 모두가 함께 움직여야 됩니다.

황:축구는 언제 시작했나요. 처음부터 골키퍼를 했나요.

이:초등학교 4학년때 시작했어요. 그러나 처음엔 배구 국가대표를 했던 누나(이영옥·전 도로공사)가 말리기도 했고 저도 축구가 하기 싫어 도망다녔어요. 그런데 할수록 재미있더라구요. 스트라이커와 스위퍼 등 공격수와 수비수를 다 해봤어요. 골키퍼는 고등학교 1학년때 시작했어요.

황:언뜻 보기에 골키퍼는 별로 힘들 것 같지 않는데….

이:하지만 훈련땐 다른선수보다 훨씬 힘이 듭니다. 훈련때 좌우로 넘어지면서 볼을 잡아내는 훈련을 1시간만 하면 진이 다 빠집니다. 경기때도 공수의 움직임에 따라 같이 움직여야 되기 때문에 항상 긴장해야 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 같이 쉽지만은 않아요.

황:가장 어려운 고비가 있었다면 언젠가요. 96년엔 폐결핵도 앓았다고 들었는데요.

이:그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94년부터 올림픽대표로 선발돼 96올림픽을 준비했는데 4월 갑자기 폐결핵이란 진단을 받았지요. 물론 올림픽엔 못나갔죠. 그땐 죽고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당시 비쇼베츠 감독이 살을 빼면 경기에 내보내준다고 해서 1년6개월만에 20㎏을 뺐어요. 93㎏에서 73㎏으로 감량했죠. 그런데 그게 화근이었습니다. 영양상태가 나빠져 폐결핵에 걸리게 됐습니다.

황:이제는 국가대표의 간판 골키퍼로 우뚝섰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데요.

이:아직 멀었다고 생각합니다. 히딩크 감독이 저에게 계속 기회를 준다면 열심히 할뿐입니다.

황:대표팀에서 여러 감독을 겪어봤을텐데 히딩크 감독은 어떤 스타일의 감독인가요. 본인이 보기에 히딩크 감독의 장단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이:감독님은 훈련시간엔 아주 무섭게 몰아칩니다. 그러나 훈련외시간에는 모두 친구같이 대해줘요. 프랑스전이 끝난 뒤에도 “잘했다. 걱정하지 말아라. 다음경기 이기면 된다”고 다정하게 격려해줬어요.단점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황:솔직히 한국이 2002월드컵에서 16강에 진출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이:이대로가면 16강이 아니라 4강까지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선수들 실력이 아주 많이 늘었어요. 가장 좋아진 게 기본기에요. 아무리 패스를 빠르게 해도 다 잡아내요. 멕시코전과 호주전에서 짧고 빠른 패스로 상대를 압도한 것 보셨죠? 선수들도 하면 된다는 자신감에 차 있어요.

황:앞으로의 계획은요.

이:일단 2002월드컵에 뛰는 겁니다. 뛰게 된다면 16강 진출을 위해 온몸을 던질 각오가 됐습니다. 그 다음엔 2세 계획을 세울 겁니다. 98년 결혼했는데 폐결핵과 군입대로 계속 연기해왔거든요.

<정리〓양종구기자>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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