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코리아로가는길]時空 초월한 인터넷뱅킹세상 열린다

  • 입력 2001년 3월 19일 19시 00분


미국 샌프란시스코 실리콘밸리 인근에 위치한 넥스트카드사는 최근 재미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회사는 자사의 홈페이지에 들르는 사람이 그 이전에 어떤 홈페이지를 방문하고 왔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트래킹 시스템’을 구축해 놓은 것.

예를 들어 A씨가 골프사이트를 여행하다가 이 곳에 들렀다면 이 시스템은 ‘A씨는 골프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A씨에게는 골프 관련 상품의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인식하게 된다.

넥스트카드사는 곧바로 A씨에게 골프 관련 제품 정보와 관련 웹사이트 주소를 보내준다. 그리고 골프 제품을 온라인에서 구입할 때에는 넥스트카드를 이용하도록 권하게 된다. 이 회사는 이 같은 서비스로 세계적 컨설팅기관과 금융기관의 벤치마킹 대상으로 부상하고 있다.

넥스트카드의 사례는 인터넷이 금융서비스를 어떻게 바꿔놓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은 사례에 불과하다. 은행 보험 증권 카드 등 업종에 상관없이 인터넷을 이용한 새로운 금융서비스는 금융시장의 전반을 강타하고 있다.

‘인터넷 디플레이션’이란 책으로 유명한 비즈니스위크의 마이클 만델 편집장은 “미국의 정보기술(IT)혁명의 진정한 힘은 금융에서 나오고 있다”고 말할 정도로 금융시장의 ‘e비즈니스’화는 위력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증권시장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단순히 데이트레이더들이 급증했다는 것 외에 ‘오버나이트 트레이딩’을 통해 24시간 거래가 가능해진 것이다. 이는 현재 미국시장에서 10개 정도가 설립돼 맹위를 떨치고 있는 전자주식네트워크(ECN) 때문에 가능해진 현상이다. 지난해 초부터 거래가 급증하기 시작한 ECN은 한마디로 온라인상에 설립된 가상증권거래소다. 이들은 나스닥이 폐장된 이후에도 시간외 거래를 통해 24시간 주식거래를 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애플사의 실적 악화가 즉각 아시아시장에 영향을 미친 것도 ECN의 위력이었다. 실적 발표가 있자 ECN에서 거래된 애플사의 주가가 50% 가량 폭락하면서 곧이어 개장된 아시아증시에서 IT 관련 주들이 일제히 하락하는 현상을 불러온 것.

ECN업체들은 올해 합종연횡을 통해 3, 4개의 대형 ECN업체로 재편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급기야 나스닥도 대응에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어서 24시간 거래시스템을 구축키로 하고 미국연방증권거래소(SEC)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SEC는 최근 “현재 나스닥 주식 전체 거래량의 34%, 거래대금의 40% 이상을 ECN업체에서 점하고 있다”며 “ECN의 영향력은 앞으로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우리나라도 이 같은 세계 증시의 조류를 거스를 수 없는 상황이어서 최근 증권거래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르면 7월경 인터넷을 이용한 ‘야간 증시’가 개장될 전망. 현재 증권거래법 개정안을 심의하고 있는 국회 재경위는 전일 종가뿐만 아니라 동시호가 방식을 도입하기로 함에 따라 야간 거래에서 주가가 바뀔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놓았다.

하나경제연구소 조우성 연구원은 최근 ‘ECN도입과 주식거래환경 변화’라는 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에 ECN이 도입되면 바로 미국시장 거래 상황을 반영하면서 주가 변동으로 이어지고 이는 거래소와 코스닥시장의 오전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정보통신기술 발달로 인한 금융시장 변화는 곧바로 관련 규정을 명시한 법 체계와 충돌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어떤 어떤 것만 허용한다’는 식의 포지티브(positive)시스템에서는 더욱 그렇다.

최근 ‘휴대전화 결제’를 둘러싼 카드업계와 이동통신서비스업체의 논쟁이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세계 이동통신업계의 새 조류중 하나는 신용카드를 휴대전화로 대체한다는 프로젝트다. 휴대전화에 IC칩을 내장해 신용카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이미 기술적으로는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입증된 상태. 문제는 신용카드업계에서 “이동통신업체에 신용카드업을 허용할 법적 근거가 없다”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는 것. 이동통신업체들은 그 나름대로 관련 법 개정을 건의하고 있지만 금융감독당국에서는 전혀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상태다.

인터넷뱅킹 분야에서도 이 문제는 첨예한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등에서 본점과 지점을 별도로 갖추지 않고 순수하게 인터넷상에서 운영되는 ‘인터넷뱅크’를 허용할 만한 법적 근거 마련에 나섰지만 끝내 이를 거의 포기한 상태.

주택은행 윤재관 발전전략팀장은 “인터넷뱅크를 허용하기 위해서는 은행법뿐만 아니라 상법까지 뜯어 고쳐야 할 정도로 법체계가 폐쇄적으로 되어 있다”며 “결국 금융감독당국도 더 이상 손을 써볼 수가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은행권에서는 금지조항에만 저촉되지 않으면 모든 업무가 가능한 네거티브(negative)시스템으로 법체계를 바꿔야 한다는 건의를 여러 차례 전달했지만 아직 가시적인 결과는 없는 상태다.

<박현진기자>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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