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한국인 첫「칸영화제」수상 송일곤 감독

입력 1999-06-10 19:27수정 2009-09-24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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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세의 송일곤감독.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 52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탄생한 한국인 수상자. 지난달 23일 단편영화 ‘소풍’으로 단편경쟁부문 심사위원 대상을 거머쥔 신예.

그는 지금 폴란드 우츠 국립영화학교 졸업작품 만들기에 분주하다. 시상식 일정에 맞춰 칸에 잠깐 들렀다가 축하받을 겨를도 없이 곧바로 학교로 돌아간 이유도 이 때문이다. 20대 후반의 그가 칸에서 상을 받기까지의 과정, 칸 이후 꿈꾸고 있는 영화세상은 어떤 것일까. E메일로 인터뷰했다.

―칸 수상후 달라진 점이 있는가.

“글쎄…. 칸 수상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놀랍고 기쁜 일이었지만 지금은 학교에서 매주 수요일 지도교수 카라바스 선생에게 꾸지람을 들어가며 다큐멘터리를 준비하고 있다.”

―‘소풍’은 어떻게 만들었나.

“제작비 2천만원을 전부 사비와 후원금으로 충당했다. 3평 남짓한 반지하 쪽방에서 함께 고생한 스태프들은 돈 한 푼 받지 못했고 배우들도 전부 무보수로 출연했다. 제작비가 모자라 사운드 스테레오 작업을 하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송감독이 지금까지 만든 단편영화는 모두 10편. 그가 그려내는 세상은 밝지 않다. 지난해에 만든 ‘간과 감자’는 폭력과 희생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다뤘고 ‘소풍’도 IMF로 인한 실직자와 그 가족의 동반자살을 그렸다.

―어두운 주제에 천착하는 이유는.

“나는 89학번이다. 현실의 아픔과 새로운 사회에 대한 기대가 교차하는 80년대의 끄트머리에서 정체성의 혼돈을 겪던 와중에 김현의 ‘폭력의 구조’라는 책을 읽었다. 프랑스 인류학자이며 철학자인 르네 지라르가 폭력과 희생을 원형으로 삼아 역사를 설명하는 과정을 묘사한 책이다. 마치 4·19와 80년 광주를 경험한 세대에 바치는 만가같은 거였다. 아직까지 인간은 ‘폭력과 희생’이라는 원초적인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내 영화에 그런 것들을 담고 싶었다.”

그는 서울예대 영화과를 졸업한뒤 ‘학교에서도 35㎜필름으로 영화를 만든다는 사실에 매료돼’ 폴란드 우츠국립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폴란드에서 카메라로 삶의 단면을 관찰하는 방법을 익혔지만 가장 큰 배움은 ‘미국이나 다른 자본주의 국가에 유학했다면 알 수 없었을, 사람들의 삶 자체’에서 얻는다고.

―구체적으로 어떤 삶인가.

“내가 사는 우츠는 공장지대다. 옛 사회주의의 궁전이나 귀족의 집들이 폐허가 되어 여기저기 널려 있고 거리에선 대낮부터 술취한 사람들이 비틀거린다. 그러나 작은 극장에서는 체호프의 ‘세 자매’연극표를 구하기 위해 아이들부터 할머니까지 한 시간전에 줄을 선다. 서울의 대학로를 생각해보라. 어린아이나 할머니들이 이강백 이윤택의 연극을 보기 위해 줄을 서는가? 문화에 대한 진정한 관심과 애정, 문화적 전통 없이는 불가능한 풍경이다.”

졸업후 계획은 현재 시나리오 작업중인 장편영화를 만드는 것. “오랫동안 내게 화두가 됐던 ‘폭력’의 문제를 완결짓는 영화가 될 것같다”는 귀띔이다.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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