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서울 강남의 한 대형 백화점을 방문했다 흥미로운 광경을 목격했다. 여성복 매장을 거니는 남편들이 한결같이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져 있는 모습이었다. 유모차를 끌고 있는 30대 초반 남자나 머리가 희끗희끗한 40대 후반의 남자나 어김없이 시선은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에 쏠려 있었다. 평균적으로 쇼핑 시작 30분∼1시간 만에 빈 소파를 찾아 자리를 차지하곤 아내에게 “여기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말하는 모습도 약속이나 한 듯 똑같았다.
남자들의 이 흥미로운 행태를 먼저 발견한 것은 쇼핑길에 동행한 남편이었다. 남편 역시 마침 유모차에서 곤히 잠든 아이를 데리고 있겠다며 의자를 청해 앉은 뒤였다. 그는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으로 야구 중계를 보고 싶었는데, 연결이 시원치 않아 다른 자리를 찾다가 이런 모습을 관찰하게 됐다고 했다. 층마다 자리한 소파에 앉은 사람은 죄다 남성이었고, 이들은 모두 스마트폰에 몰두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
재밌는 것은 이런 남편들에게 돌아온 아내들의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남편이 쇼핑 내내 툴툴거리며 호흡조차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거나, 아예 쇼핑에 따라나서지 않겠다고 하는 것보다는 스마트폰 하나 쥐고 얌전히 기다려 주는 편이 훨씬 나은 모양이었다.
2000년대에 국내외 백화점들은 TV 등이 설치된 ‘맨스 라운지’를 마련했다. 아내의 쇼핑 시간을 방해하지 말라는 의미가 담긴 일종의 ‘남자 보관소’인 셈이다.
그러나 스마트폰이 대중화하면서 남자들을 더이상 특정 장소에 묶어둘 필요가 없게 됐다. 2009년 영등포점에 ‘맨스 라운지’를 설치했던 신세계백화점은 2011년 강남점에 남성전문관을 오픈하면서 남성 휴게공간을 설치하지 않았다. 영등포점 ‘맨스 라운지’의 컴퓨터도 사라졌다.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검색을 하는 경우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최근 발간된 신간, ‘남자답지 않을 권리’에서 프랑스 철학자 뱅상 세스페데스는 스마트폰과 페이스북에 몰두한 현대 남성의 모습을 ‘진정한 남성성’이 소멸하는 상징적인 장면으로 봤다. 남자들이 의미 있는 관계 맺기에 서툴기 때문에 스스로를 자신만의 방에 가둔 것이라는 해석이다.
하지만 쇼핑 공간에서 남자들이 스마트폰으로 나름의 즐거움을 찾게 된 것은 ‘남녀 화합’에 큰 획을 긋게 된 사건이 아닐까 싶다. 남자는 스마트폰을 통해 기분을 전환할 수 있게 됐고, 여자는 남자 눈치를 보지 않고 쇼핑을 만끽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은 심지어 쇼핑 때면 5%쯤 마비되는 여자의 좌뇌를 자극하는 효과를 내기도 한다. 매장 점원의 설득에 95%쯤 넘어간 아내의 귓가로 남편들은,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찾아낸 인터넷 최저가를 은밀히 속삭여준다. 쇼핑에만 나서면 “길을 잃은 듯한 느낌이 든다”고 말하는 남자들이 불편해했던 시간에 비로소 할 일을 찾은 것이다. 스마트폰 시대를 맞아 재발견한 ‘남자사용법’은 이렇게 생각보다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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