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시크 개발에 쓰이자 규제 나서
中 AI투자 국내기업 타격 불가피
트럼프 “日과 관세협상 직접 참여”
어디로 튈지… 15일(현지 시간) 워싱턴 백악관 행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해군 장교들 앞에서 미식축구공을 들어 올리고 있다. 그는 이날 “(통상 협상의) 공은 중국으로 넘어갔다”며 중국 측에 협상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워싱턴=AP 뉴시스
갈수록 격화되는 미중 관세 전쟁이 인공지능(AI) 반도체 전쟁으로 확전됐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엔비디아의 중국 수출용 저성능 AI 반도체 ‘H20’과, 이와 비슷한 성능을 내는 AMD의 ‘MI308’까지 대중(對中) 수출 통제 목록에 포함시켰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첫 반도체 해외 수출 규제로 인해 엔비디아뿐 아니라 중국 AI 투자 붐을 기대했던 국내 반도체 기업들도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15일(현지 시간)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미국 정부가 H20을 중국에 수출하려면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통보했다”며 “해당 규칙은 무기한 유지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엔비디아에 따르면 미 정부 당국자들은 H20이 중국의 슈퍼컴퓨터에 사용될 것이란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이번 조치를 시행했다고 밝혔다.
엔비디아의 H20 반도체는 미국이 2022년 고성능 AI 칩의 대중 수출을 규제하면서 중국 시장을 겨냥해 따로 설계된 제품이다. 엔비디아의 고성능 주력 제품인 ‘H100’ 대비 연산 능력이 약 20% 수준에 그친다. 하지만 올 초 중국 AI 기업 딥시크가 저사양 AI 반도체로 생성형 AI 개발에 성공하면서 중국 기업들이 H20 물량을 대거 사들이기 시작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날 “워싱턴의 H20 규제는 미국이 어떻게 관세와 무역 장벽을 활용해 베이징에 대한 압력을 높이는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희토류를 포함한 가공된 핵심 광물과 그 파생 제품 수입이 국가 안보에 끼치는 영향을 조사하라는 행정명령에도 서명했다. 또 미국은 중국 제품의 우회 수출 막기, 미국 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 퇴출 등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과의 관세 협상에 자신도 참석한다고 알렸다. 그는 16일 트루스소셜에 “일본이 오늘 관세, 군사 지원 비용, 무역 공정성에 대해 협상하러 온다. 나도 재무·상무장관과 함께 이 회의(일본과의 관세 협상)에 참석할 예정”이라고 썼다.
美, AI칩 무기로 ‘제2 딥시크’ 봉쇄… 관세 넘어 中 압박 확대
[美, AI칩으로 관세전쟁 확전] 美中 관세전쟁 극한갈등 우려 엔비디아 55억 달러 손실 위기… 삼성전자-하이닉스 타격 불가피 中 희토류 수출 통제에도 강공… 공급망 재편위한 행정명령 발동
15일(현지 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엔비디아 ‘H20’ 대중(對中) 수출 통제 소식이 전해지면서 글로벌 반도체 업계가 또다시 불확실성에 직면했다. 미중 간 힘겨루기가 인공지능(AI) 반도체 산업으로 번지자 엔비디아를 비롯한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주가가 된서리를 맞았다. 미국은 이 밖에 미 증시 상장 중국 기업 퇴출, 중국산 제품 우회 수출 봉쇄 등 다른 비관세 조치도 검토하고 있다. 미중 양국의 극한 갈등이 한국과 글로벌 경제에 큰 충격을 가져올 것으로 우려된다.
● ‘700조 원 투자’ 발표도 못 막은 추가 규제
워싱턴의 H20 규제 소식이 전해지기 불과 하루 전날인 14일 엔비디아는 미국에서 AI 생산 설비를 구축하기 위해 4년간 5000억 달러(약 713조 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9일 미 공영방송 NPR은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트럼프 대통령의 사저가 있는 마러라고 만찬에 참석한 뒤 미국 정부가 H20 수출 통제 계획을 철회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결국 황 CEO의 물밑 협상과 대규모 현지 투자 결정도 미 정부의 중국 AI 굴기 철퇴 의지를 막지 못한 것이다.
엔비디아는 이번 조치로 인해 회계연도 1분기(2∼4월)에 약 55억 달러의 손실을 입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장 마감 후 시간 외 거래에서 엔비디아 주가는 6.31% 하락했다. 엔비디아에 반도체를 공급하는 삼성전자(―3.36%)와 SK하이닉스(―3.65%) 역시 16일 증시에서 약세를 면치 못했다.
H20 수출 통제의 배경에는 올 초 서방 세계에 ‘스푸트니크 모먼트’를 상기시킨 중국 딥시크의 충격파가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2022년 10월 미국 정부는 중국 AI 굴기를 막기 위해 엔비디아의 고성능 ‘H100’ 수출을 통제했다. 하지만 딥시크는 엔비디아의 ‘H800’ 등 저성능 AI 칩을 활용해 생성형 AI 개발에 성공했다. 이에 중국 빅테크 기업들이 앞다퉈 AI 투자에 뛰어들면서 H100의 대체품인 H20을 사재기했다. 미국 정보기술(IT) 전문지 디인포메이션에 따르면 텐센트, 바이트댄스, 알리바바 등은 1분기(1∼3월) 동안 최소 160억 달러 이상의 H20 칩을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의 AI 투자 붐 수혜를 기대하던 삼성전자, SK하이닉스도 이번 수출 통제 조치로 매출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양사는 H20용 4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 ‘HBM3’를 엔비디아에 공급해 왔다.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지난달 보고서에서 “중국의 H20 서버용 수요는 올해만 칩 100만 개가량으로 강하게 유지될 것”이라며 “딥시크가 삼성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저성능 AI 칩으로까지 미국의 제재 범위가 확대되면서 장기적으로는 결국 대부분의 중국 반도체 시장을 포기해야 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김정호 KAIST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이번 조치는 그동안 ‘이가 없으니 잇몸으로’ 대응하던 중국으로부터 잇몸까지 앗아가겠다는 것”이라며 “대중 제재가 결국 반도체 전반으로 확대될 수도 있는 만큼 향후 중국 물량의 대부분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 中 우회 수출 봉쇄에도 나서
한편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가공된 광물 및 파생 상품에 대한 무역확장법 232조 조사를 통한 국가안보 및 경제적 회복력 보장’ 행정명령에도 서명했다. 이 행정명령은 희토류를 포함해 가공된 핵심 광물들이 미국의 경제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안정적인 공급망 등을 마련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 세계 희토류 공급에서 60%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은 최근 AI 반도체 제작 등에 쓰이는 사마륨, 가돌리늄 등 핵심 광물들을 수출 통제 리스트에 추가했다. 미중 통상전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미국에 절실한 핵심 광물 위주로 ‘맞춤형’ 대미 압박에 나선 것이다.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은 “이번 일을 계기로 (미국이) 중국산 핵심 광물 의존도를 줄이며 공급망 재편에 나서려고 할 것”이라고 했다.
미국은 중국산 제품의 우회 수출 봉쇄에도 나섰다. 이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행정부가 외국 정부와의 상호관세 협상에서 중국이 해당국을 거쳐 상품을 운송하는 걸 막아줄 것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중국 기업이 미국 관세 회피용으로 해당국에 회사를 설립하거나, 대미 수출이 막힌 중국산 공산품 수입을 막는 방안도 포함됐다.
미국 뉴욕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들을 퇴출시킬 가능성도 거론된다. 미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이날 “트럼프 행정부 관리들과 대통령 지지자들이 미 증시에 상장된 300여 개의 중국 기업을 퇴출시킬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전했다. 미중 통상전쟁이 관세와 비관세 요소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형태로 진행 중인 만큼, 이런 방안까지 대중 압박 카드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미국이 중국 기업들을 거래 통제 목록(블랙리스트)에 대폭 추가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지난달 미국의 국가안보 및 외교 정책에 반하는 활동을 했다며 중국 기업 50여 곳을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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