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13일 워싱턴 백악관 집무실에서 국가별로 상호 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워싱턴=AP 뉴시스
“월가는 트럼프가 미국 경제의 연착륙을 망칠까 우려하고 있다. ‘안전벨트를 매라’는 메시지가 나온다.”(월스트리트저널·WSJ)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오락가락 관세 정책, 이에 따른 경기 침체 가능성 등에 대한 우려로 10일(현지 시간) 미국 주식 시장이 급락했다. 이날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는 각각 2.1%, 2.7%씩 하락했다. 특히 경기 변동에 민감한 나스닥 지수는 4.0%나 떨어졌다.
이로 인해 이날 하루에만 4조 달러(약 5800조 원)가 증발했다. 가상화폐 대장주인 비트코인 가격 또한 7만 달러대로 내려앉았다. 주요 외신은 “트럼프 경제에 대한 기대감이 ‘불안’과 ‘공포’로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 침체 공포로 하루 5800조 원 증발
이날 증시 급락은 트럼프 대통령이 9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통상 전쟁 여파로 올해 미국의 경기 침체를 예상하느냐’란 질문에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하면서 촉발됐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가 하는 일은 부(富)를 미국으로 다시 가져오는 일”이라며 “(성과를 내려면) 시간이 조금 걸린다”고 답했다. 미국 경제가 일부 타격이 있더라도 관세 부과를 포함한 자신의 통상 정책을 고수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사실상 경기 침체까지 감안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답변에 월가는 크게 놀랐다. 이 여파로 그간 증시 상승을 주도해 온 대형 기술주 7개 기업, 즉 ‘매그니피센트 7’의 주가가 급락했다.
미국 시가총액 1위 기업 애플(4.85%), 반도체 대표 기업 엔비디아(5.07%), 구글 모회사 알파벳(4.41%), 페이스북 모회사 메타(4.42%)의 주가가 모두 하락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 아마존도 각각 3.34%, 2.36%씩 떨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퍼스트 버디’로도 불리는 일론 머스크 미 정보효율부(DOGE) 수장이 이끄는 테슬라의 주가는 15.4% 폭락했다. 이날 7개 기업의 시총 감소분만 7740억 달러(약 1120조 원)에 달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올 1월 20일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가하며 ‘트럼프 대통령과의 우호관계’를 보여준 억만장자 5명이 최근 7주간 2090억 달러(약 303조 원)를 잃었다. 역시 가장 많은 돈을 잃은 사람은 1480억 달러를 잃은 머스크였다. 이어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290억 달러), 세르게이 브린 구글 공동창업자(220억 달러), 마크 저커버그 메타 창업자(50억 달러), 베르나르 아르노 프랑스 루이뷔통모에에네시(LVMH) 회장(50억 달러) 등도 많은 돈을 잃었다.
● ‘오락가락’ 관세에 성장률, 경기 전망 모두 부정적으로 바뀌어
전문가들은 ‘자고 나면 바뀐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수시로 변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와 캐나다 멕시코 등 동맹국들까지 공격 대상으로 삼는 통상 정책이 시장에 가장 큰 부담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NYT)도 ‘관세’보다 ‘관세의 불확실성’ 때문에 시장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에 들어온 수입 상품에 이미 수천억 달러의 새 관세가 부과됐고 ‘상호 관세’ 등이 부과될 다음 달 2일에는 수조 달러가 더 부과될 예정이라며 “투자자들은 예상을 뛰어넘는 이 같은 트럼프의 관세 부과 의지에 불안해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관세로 인한 물가 상승, 가계 재정 악화에 대한 미국인의 걱정도 커지고 있다. 이날 뉴욕 연방준비은행이 발표한 2월 소비자기대조사 결과 향후 1년간 예상되는 인플레이션 중간값은 3.1%로 1월(3.0%)보다 높아졌다. 가스, 식료품, 의료, 대학 학자금 등의 상승 압력 또한 커졌다.
이에 월가의 대표적 금융사들도 속속 올해 미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하고 경기 침체 가능성을 높였다. 골드만삭스는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4%에서 1.7%로 낮췄다. JP모건체이스도 올해 미국 경제가 ‘극단적인 정책’으로 침체에 빠질 확률을 기존 30%에서 40%로 높였다.
트럼프 대통령 측 인사들도 관세 정책을 우려하고 있다. 트럼프 1기 행정부의 경제 고문이었던 스티븐 무어는 9일 폭스뉴스에 “대통령의 관세 무기화는 잘못된 방향”이라며 “경제를 살리기 위해 필요한 것은 ‘관세’가 아니라 ‘감세’”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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