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 제재에 러 신흥재벌 자산 100조원 날아가… 反푸틴 확산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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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EU ‘올리가르히’ 19명 정조준… 러시아 수뇌부 자중지란 유도
일부 재벌 “전쟁은 답 아니다” 반발… 교수-언론인들 반전 목소리 커져
외신 “러 폭발 직전… 계엄령 소문”

크렘린궁 제공-AP/뉴시스
크렘린궁 제공-AP/뉴시스
미국과 유럽이 3일(현지 시간) 러시아 신흥 재벌 올리가르히 19명과 그들의 가족 및 측근 47명을 정조준해 자산을 동결하는 제재 대상에 올린 것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돈줄이자 권력 기반에 타격을 입히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스트롱맨’ 푸틴과 결탁해 권력의 정점에 있으면서 사실상 우크라이나 침공 자금과 자원을 지원하는 이들에게 상응하는 책임을 물으면서 동시에 크렘린궁 내부 자중지란을 노렸다는 것.

전날 국제신용평가사 피치와 무디스가 러시아의 신용등급을 투기(정크) 수준으로 6단계 강등한 데 이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이날 러시아의 신용등급을 8단계나 낮춰 국가부도보다 2단계 위인 CCC―로 조정한 것도 러시아 경제가 심각한 상황임을 보여준다.

서방 제재가 점점 옥죄여 오자 러시아 일부 재벌과 지식인층에서 푸틴 대통령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확산하고 있다. 스페인 일간 엘파이스는 “러시아 내부 상황은 폭발 직전”이라고 전했다.
○ 푸틴 지원 재벌 무더기 제재
미 백악관이 이날 발표한 제재 대상 1순위는 푸틴 대통령과 가까운 러시아 ‘철강왕’ 알리셰르 우스마노프(69)다. 러시아 광물기업 메탈로인베스트 창업자인 우스마노프는 보유 자산이 195억 달러(약 23조6000억 원)다. 그는 독일 당국에 6억 달러(약 7260억 원)짜리 초호화 요트를 압류당했다. 러시아 건설회사 SGM그룹 소유주 아르카디 로텐베르크(71)도 제재 대상이 됐다. 로텐베르크는 12세 때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 무술 삼보를 같이 할 정도로 ‘절친’이다.

‘푸틴의 요리사’로 불리는 예브게니 프리고진(61)도 포함됐다. 그가 운영하는 민간 군사업체 와그너그룹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암살 지시를 받은 용병 400여 명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침투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소련 정보기관인 국가보안위원회(KGB) 출신으로 푸틴 대통령과 오랜 친구인 세르게이 체메조프(70)도 제재 대상에 올랐다.

백악관은 “러시아의 가장 큰 기업들 꼭대기에 앉은 이들은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필요한 자원을 제공한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 푸틴 향한 역풍 감지… 계엄령설도
미국과 서방의 연이은 제재 여파로 러시아 부호들의 재산도 급감했다. 이날 미국 CNBC 방송은 블룸버그 억만장자지수를 인용해 최근 러시아 상위 20대 부자 자산이 약 800억 달러(약 96조8000억 원) 증발했다고 보도했다. 이들 총자산의 약 3분의 1 규모다.

자산 기반이 허물어질 위기에 처하자 ‘전쟁 반대’ 목소리를 높이는 러시아 재벌이 늘고 있다. 우크라이나 출신 러시아 억만장자 미하일 프리드만은 “전쟁은 결코 답이 될 수 없다”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과 막역한 사이로 지난해 미국 연방수사국(FBI) 수사 대상이던 억만장자 올레크 데리파스카도 “무엇보다 평화가 중요하다”고 했다.

러시아 주요 대학의 교수와 작가, 언론인을 비롯한 지식인층 1200명도 “이웃 나라에서 사람들이 죽어갈 때 침묵하고 외면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용납될 수 없다”는 공개 호소문을 발표했다. 러시아 외교부 산하 모스크바 국제관계연구소 연구원들도 이름을 올렸다. 러시아 독립 언론인 알렉세이 코발레프는 3일 미국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에서 “러시아는 이미 도덕적으로 패배했다”고 했다.

침공 때부터 러시아 내부 언로(言路)를 틀어쥔 크렘린궁은 전쟁 실상을 보도한 독립 언론들의 방송 송출을 중단하거나 폐쇄하며 탄압하고 있다. 러시아가 계엄령을 선포할 것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러시아 정부는 부인했지만 로이터는 “계엄령 소문이 돌자 해외로 떠나려는 러시아인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서방#러시아제재#신흥재벌#反푸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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