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사키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 76년 만에 세워졌다

나가사키=김범석 특파원 입력 2021-11-07 17:04수정 2021-11-07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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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전 11시 2분 일본 나가사키 평화공원의 서쪽 입구에 모인 100여 명이 1분간 고개를 숙였다. 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인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 2분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으로 숨진 약 1만 명의 한국인을 추모하는 위령비가 76년 만에 세워져 참가자들이 묵념을 한 것이다. 역시 원폭이 투하된 히로시마에는 1970년 한국인 위령비가 건립됐지만 나가사키에는 없어 우리 정부와 동포 사회가 오랫동안 건립 노력을 들인 끝에 결실을 봤다.

이날 제막식에는 강창일 주일한국대사, 연립여당 공명당의 무카이야마 무네코(向山宗子) 나가사키 시의회 의원 등 양국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검은색 바탕에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란 금색 한자가 새겨진 3m 높이의 위령비에 헌화했다.

위령비 뒷면에는 ‘다시 고국 땅을 밟으리라는 뜻을 끝내 이루지 못하고 표식 하나 없이 이국 땅에 한 줌의 흙으로 남은’ 한국인 희생자를 기린다는 추도문이 한국어와 일본어로 새겨졌다. 위령비 아래 부분에 있는 2개의 네모 모양 돌에는 위령비를 세운 이유를 설명하는 글이 있다. 오른쪽에는 일본어와 영어, 왼쪽에는 한국어로 쓰여졌다.


위령비를 세우는 과정은 험난했다. 1994년 후쿠오카 총영사관이 추모 부지를 요청했을 때만 해도 일본 측이 건립 장소를 내주는데 소극적이었다. 원폭 폭심지에서 약 300m 떨어진 곳에 세우기로 결정된 후에는 문구를 두고 갈등이 계속됐다. 2013년 출범한 위령비 건립위원회는 나가사키 군함도(端島) 탄광에 끌려와 희생당한 징용 피해자를 배려해 ‘강제적인 징용 동원’이라는 문구를 넣으려 했지만 시 당국은 징용 피해자들이 강제로 끌려왔다는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는 일본 정부의 입장을 고수했다. 결국 ‘강제’란 표현 대신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라는 문구를 넣는 것으로 타협이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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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비문 아래에 있는 영어 설명에는 ‘forced to work(강제로 노역했다)’는 표현을 넣어 강제성을 좀더 명확히 드러냈다. 강성춘 위령비 건립위원장은 “영어로라도 ‘강제’란 표현을 남긴 것이 의의”라고 말했다. 히로시마 위령비 설명문에는 ‘징용공’ 이란 단어가 한글로 들어가 있다.


19세 때 원폭 투하 지점에서 1.8㎞ 떨어진 집에서 원폭 피해를 당한 피폭 1세대 권순금(95) 할머니는 5일 자택에서 동아일보와 만나 “감개무량하다. 뭐라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기쁘다”는 소감을 밝혔다. 그는 평생 위령비 건립을 소망했지만 몸이 불편해 이날 제막식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직접 피폭을 당하지 않았는데도 무릎 통증 등 평생 후유증을 안고 살고 있다고 했다.


이날 제막식에는 한일 관계를 중시하는 일본인도 여럿 참석했다. 특히 일본 고교생 평화 대사 학생 30여 명은 평화를 상징하는 종이학을 바치며 묵념했다. 내년 한국 유학을 앞두고 있다는 오오쿠마 유카 양(大隈ゆうか·18)은 “그간 한국인 원폭 피해자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과거에 어떤 일이 일어났고 일본이 무엇을 했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나가사키=김범석 특파원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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