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보수의 아성’ 텍사스, 임신 6주부터 낙태금지 논란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9월 2일 14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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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보수의 아성’으로 불리는 텍사스주에서 역대 최강의 낙태 규제법이 1일 시행에 들어갔다. 1973년 여성의 낙태권을 보장한 ‘로 대(對) 웨이드 판결’ 이후 가장 강력한 법으로 사실상 낙태를 금지한 것으로 해석해도 무방하다고 미 언론들은 보도하고 있다.

1일 AP통신 등에 따르면 올 5월 텍사스주 의회를 통과하고 그레그 에벗 주지사가 서명한 일명 ‘심장박동법’(Heartbeat Bill)이 이날부터 시행됐다. 임신 6주부터 여성의 낙태를 금지한 것이 핵심 내용으로, 6주부터는 의료진이 태아의 심장 박동소리를 판명할 수 있어 하나의 생명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 나온 법이다. 에벗 주지사는 이날 성명을 통해 “오늘부터 심장이 뛰는 모든 태아는 낙태의 유린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게 됐다”며 “텍사스주는 생명권을 항상 수호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임신 6주가 돼도 자신이 임신했는지를 파악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따라서 임신 사실을 알고 나면 낙태가 이미 법적으로 불가능해질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성폭행이나 근친상간으로 인한 임신에도 예외를 인정하지 않아 사실상 모든 낙태를 금지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런 엄격한 규정 때문에 이 법은 5월에 주의회를 통과할 때부터 전국적으로 큰 화제가 됐다.

이처럼 논란이 많은 법이지만 반대하는 측에서는 따로 법적 대응을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 법에 따르면 주정부는 단속에서 손을 떼야 하고, 대신 시민들이 불법 낙태에 대한 제소를 할 수 있다. 불법 낙태를 시술한 병원과 조력자, 심지어 임산부를 병원에 태워준 택시 기사까지 모두 피소 대상이 되고, 소송에 승리한 시민에게는 1만 달러(약 1160만 원)의 보상금이 지급된다. 이처럼 주정부에게는 아무런 집행 권한이 없다 보니, 당국을 상대로 법 집행 정지 가처분신청을 내는 게 불가능해졌다는 분석이 법조계에서 나온다. 물론 낙태금지법의 합법성 자체를 다투는 소송들은 앞으로도 계속 진행될 전망이라 법안 효력이 향후 중단될 가능성은 남아 있다.

미국에서 이런 강력한 낙태금지법이 추진된 것은 텍사스주가 처음이 아니다. 지금까지 공화당이 집권한 곳을 중심으로 최소 12개주가 임신 초기에 낙태를 금지하는 법안을 추진했지만 소송 등의 과정을 거치며 시행이 보류됐다. 현재 미국 내 대부분의 주들은 1973년 ‘로 대 웨이드 판결’에 따라 임신 22~24주 이후의 낙태만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대법원이 최근 보수화되면서 향후 낙태권을 인정하지 않는 판결이 나올 가능성도 커진 상황이다. 연방 대법원은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 시절 보수 성향 대법관들이 대거 임명됨에 따라 ‘6대 3’의 보수 절대 우위로 재편됐다. 당장 올 10월 시작되는 회기에 연방 대법원은 임신 15주 이후 낙태를 금지한 미시시피주의 법안을 다룰 예정이어서 여기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내고 텍사스주의 법안에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극단적인 텍사스주 법안은 반세기 가량 이어진 헌법상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며 “이 법은 여성, 특히 유색인종과 저소득층의 의료서비스 접근을 심각하게 손상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밖에 민주당 정치인들과 시민단체들도 이날 일제히 이 법안에 반발하는 목소리를 쏟아냈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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