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억만장자 사업가 겸 정치가 로스 페로 89세로 별세

  • 뉴스1
  • 입력 2019년 7월 10일 05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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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기업가이자 정치인인 헨리 로스 페로가 89세로 별세했다고 그의 가족이 9일(현지시간) 밝혔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텍사스 태생의 억만장자인 페로는 IT 사업에서 큰 성공을 거둔 후 정계에 진출해 1992년과 199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정치판을 크게 뒤흔들기도 했다.

페로의 가족은 성명에서 “획기적인 사업가이자, 사랑하는 남편이자, 형제이며, 아버지이며, 할아버지였던 로스 페로가 그가 헌신했던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이날 오전 댈러스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페로는 텍사스주 텍사카나(Texarkana)에서 출생했다. 텍사카나 단과대학을 졸업하고 미해군사관학교에 진학한 후 해군에서 복무하고 1957년 대위로 제대했다. 재대 후에는 IBM에서 영업사원으로 일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페로는 IBM 퇴사 후 컴퓨터 및 소프트웨어 서비스 회사인 일렉트로닉 데이터 시스템즈(EDS)와 페로 시스템즈를 창업해 산업계의 전산화에 크게 기여했다. 그의 혁신적인 사업 아이디어는 IBM 재직 당시 상사에게 건의했다가 거절당한 컴퓨터 임대사업이었다.

이 아이디어가 적중하면서 페로는 큰돈을 벌었다. EDS를 제너럴모터스(GM)에 매각하면서 그의 재산은 급격하게 증가했다. 2019년 4월 포브스지에 따르면 페로의 재산은 41억달러(약 4조8503억원)로 추산된다.

페로는 타고난 사업가로 부를 축적한 후 이에 그치지 않고 정계로 진출해 파격적인 정치인이 됐다. 그는 단발머리였고, 텍사스식의 소탈하고 느린 억양을 구사했으며, 농담까지 할 정도로 귀가 돌출됐다. 그는 무뚝뚝했지만 태도는 당당했고 사업에서 거둔 성공 덕분에 독자적인 길을 가는 데도 익숙했다.

그는 용기와 결단력도 갖춘 인물이었다. 1978년 자신의 직원 2명이 이란에서 억류되자 직원들로 특공대를 조직하고 전직 특수부대 대령을 고용해 이들을 탈옥시켰다.

페로는 1992년 2월 CNN의 ‘래리 킹 라이브 쇼’에 출연 도중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하고 무소속으로 대선에 뛰어들었다. 그는 공화당과 민주당에 식상에 하는 일부 미국인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는 정부의 재정 적자 억제 방안을 가장 큰 이슈로 들고 나왔다. 당시 아무도 언급하기를 꺼렸던 뜨거운 감자였다. 또한 총기 규제 반대와 보호무역도 주장했다.

페로는 대부분 사비를 들여 30분짜리 TV 광고인 ‘인포머셜’(해설식 광고)을 제작해 방영했다. 그는 자기비하적인 유머와 낙후된 국내 경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며 선거 5개월 전에 갤럽 여론 조사에서 39%의 지지를 확보했다. 당시 공화당의 조지 H. W. 부시가 31%, 민주당의 빌 클린턴이 25%였다.

하지만 페로는 1992년 대선에서 18.87%의 득표에 그쳤다. 이는 결과적으로 부시의 표를 잠식해 열세였던 클린턴에게 승리를 안겨주는 모양새가 됐다. 무소속에 한계를 느낀 그는 1995년 ‘미국 개혁당’을 창당한 후 1996년에 다시 대선에 도전했다. 하지만 8.40%의 득표에 그치며 재선에 나섰던 당시 클린턴 대통령에게 패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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