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후 봉사활동에 헌신… 정파 떠나 존경받은 ‘전직의 품격’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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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H W 부시 1924∼2018]41대 美대통령 ‘아버지 부시’ 별세

‘허리케인 이재민 돕기’ 한자리 모인 前대통령들 11월 30일 별세한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왼쪽에서 두 번째)은 정파와 당파를 넘어서는 높은 품격으로 폭넓게 존경받은 정치인이었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허리케인 이재민을 위한 지원금 모금 행사장에서 부시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모인 전직 미국 대통령들의 모습. 왼쪽부터 지미 카터, 부시, 조지 W 부시(아들 부시), 빌 클린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동아일보DB
‘허리케인 이재민 돕기’ 한자리 모인 前대통령들 11월 30일 별세한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왼쪽에서 두 번째)은 정파와 당파를 넘어서는 높은 품격으로 폭넓게 존경받은 정치인이었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허리케인 이재민을 위한 지원금 모금 행사장에서 부시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모인 전직 미국 대통령들의 모습. 왼쪽부터 지미 카터, 부시, 조지 W 부시(아들 부시), 빌 클린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동아일보DB
“친애하는 빌, 당신을 깊이 신뢰합니다. 당신이 ‘우리 모두의 대통령’이 되어 주리라 믿습니다. 당신이 거둘 성공은 바로 미국의 성공이 될 겁니다.”

지난달 30일 밤(현지 시간)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 자택에서 별세한 41대(1989∼1993년 재임) 미국 대통령 조지 부시의 부음을 접하고 나서, 42대 대통령 빌 클린턴(72)은 1993년 1월 백악관 출근 첫날 받았던 전임자의 편지를 다시 떠올렸다.

“빌, 당신이 이곳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 바랍니다. 어려운 시기도 닥쳐올 거요. 온당치 않은 비난도 받게 되겠죠. 그런 비난이 용기를 갉아먹거나 나아갈 길에서 벗어나게 만들지 않길 빕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1일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나는 부시를 사랑했다. 그의 편지는 인간미가 무엇인지 알려줬다”고 밝혔다.

○ 재선 실패 후 봉사활동 매진… 실패를 기회로

월스트리트저널은 “부시 전 대통령은 한때 ‘경제 침체를 극복하지 못해 재선되지 못한 대통령’으로 인식됐지만, 그는 쓰디쓴 재선 실패를 인생의 새로운 기회로 전환시켰다”고 전했다. 1992년 대선에서 클린턴에게 패해 백악관을 떠난 부시 전 대통령은 자선단체를 통해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쳐나갔다.

그는 도서관과 장학단체를 지원하는 한편, 백혈병 어린이 환자 돕기에 힘을 쏟았다. 1953년 어린 딸 로빈을 백혈병으로 잃은 것이 큰 영향을 끼쳤다. 2013년에는 본인 경호원의 두 살 난 아들 패트릭이 백혈병으로 방사선 치료를 받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응원의 뜻으로 삭발을 했다. 지난해 부시 전 대통령의 트위터에는 건강해진 패트릭과 재회해 환하게 미소 짓는 사진이 올라왔다.

2006년 필라델피아시는 부시 전 대통령에게 민주주의와 인권 신장에 공헌한 이에게 주는 ‘자유의 메달’을 수여했다. 시상식에서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은 “부시는 사회와 국가에 대한 기여가 얼마나 고귀한 소명인지 보여줬다”고 말했다.

90세까지 스카이다이빙 2007년 83세의 나이로 스카이다이빙을 하고 있는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아래). 90세까지 스카이다이빙을 하며 노익장을 보여줬다. AP 뉴시스
90세까지 스카이다이빙 2007년 83세의 나이로 스카이다이빙을 하고 있는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아래). 90세까지 스카이다이빙을 하며 노익장을 보여줬다. AP 뉴시스
○ 6년 전 파킨슨병 발병… 병마에 굴하지 않아

부시 전 대통령은 파킨슨병으로 운신이 어려워진 2012년부터 전동휠체어에 의지해 생활했다. 그럼에도 병 때문에 약해진 모습을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발병 사실이 알려지고 2년 뒤인 90세 생일에도 5년마다 해온 스카이다이빙을 강행해 화제가 됐다. 지난해 2월 폐렴으로 입원했다가 퇴원한 직후에는 미국프로미식축구리그(NFL) 결승전이 열린 경기장에서 경기 개시를 알리는 동전 던지기를 선보여 기립박수를 받았다.

하지만 지난주 초부터 건강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침대에서 몸을 일으킬 수 없게 됐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그는 식사도 못 한 채 거의 잠든 상태로 마지막 며칠을 보냈다. 숨을 거두기 직전 댈러스 집에 머물고 있던 맏아들 조지 W 부시(72·43대 미국 대통령)와 나눈 스피커폰 통화가 그의 마지막 말이 됐다.

“사랑한다, 나의 아들아.”

○ ‘초강대국 미국’ 시대 열어… 경제 침체로 지지 잃어

부시 전 대통령은 제2차 세계대전에 군인(해군 비행사)으로 참전한 마지막 미국 대통령이다. 약관의 나이에 무공훈장을 받고 제대한 뒤 석유사업가, 하원의원, 유엔 미국대사, 중앙정보국(CIA) 국장 등을 거치며 폭넓은 방면에서 경력을 구축했다.

대통령 재임 중에는 독일 통일(1990년), 소비에트연방 해체(1991년)에 힘입어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미국의 군림)’ 시대를 열었다. 1989년 파나마 침공, 1990∼1991년 이라크와의 걸프전 승리로 막강한 무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극심한 경제 침체를 극복하지 못하며 차츰 지지 기반을 잃었다. 전임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때부터 누적된 무역과 재정 적자 문제와 높은 실업률이 끝내 발목을 잡았다. 소속 당인 공화당조차 세금 인상 정책에 반발하며 부시 행정부를 몰아세웠다.

그의 장례식은 2007년 제럴드 포드 전 대통령(38대) 이후 11년 만에 정부 주관 국장(國葬)으로 5일 치러진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5일을 ‘국가 애도의 날’로 지정했다. 이날 하루 뉴욕 증시도 휴장한다. 시신은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을 통해 3일 워싱턴에 도착한다. 일반 시민의 조문은 3일 오후 7시 반부터 5일 오전 7시까지 허용된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 워싱턴=박정훈 특파원
#조지 부시#아버지 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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