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테러 배후로 파키스탄 정보국 지목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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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국 “탈레반 연계조직이 실행”… 주장 뒷받침할 증거는 제시 못해
사상자 550명 넘고 사망자 더 늘듯… AP “2014년 이후 최악의 테러”
아프간 국민들 불안감 극에 달해… 성난 군중 “정부 물러나라” 시위

아프가니스탄 정보기구인 국가안보국(NDS)이 지난달 31일 수도 카불에서 발생한 차량 자폭테러의 배후로 파키스탄 정보국(ISI)을 지목했다. 파키스탄 정부는 최근까지도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의 평화협상을 중재해 와 ISI 개입이 사실일 경우 양국 관계에 파장이 예상된다.

1일 아프간 톨로뉴스 등에 따르면 NDS는 이날 성명을 통해 파키스탄에 근거지를 둔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의 연계 테러조직인 ‘하까니 네트워크’가 이번 테러를 실행했으며 이를 ISI가 직접 지시하고 지원했다고 주장했다. 다만 NDS는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명확한 증거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아슈라프 가니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이 감옥에 수감 중인 하까니 네트워크와 탈레반 조직원 재소자 11명에게 이날 사형을 명령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최근 아프간 정부를 겨냥한 테러 공세가 커지는 가운데 전국에서 가장 안전한 곳으로 여겨졌던 수도 중심가 외교공관 일대마저 뚫리면서 아프간 국민의 안보 불안이 극에 달하고 있다. 지난달 31일 외교공관과 정부 부처, 대통령궁 등이 밀집한 와지르아크바르칸 지구에서 벌어진 차량 폭탄테러 사상자가 500명을 훌쩍 넘었다. 내무부에 따르면 최소 90명이 사망했고 463명이 다친 것으로 집계됐다. 중상자가 많아 사망자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미군 주도 연합군이 2001년 아프간 탈레반 정권을 공격한 이후 벌어진 최악의 테러 중 하나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군이 철군하기 시작한 2014년 이후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테러라고 AP통신이 전했다.

테러가 발생한 독일대사관 인근에 미국이 운영하는 캠프에서도 다수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CNN에 따르면 이 캠프를 지키던 미국대사관 소속 아프간인 경비 9명이 사망하고 미국인 11명이 다쳤다. 아프간인 경비 1명은 실종 상태다. 미국인 피해자 중 중상자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테러 현장에서 1km가량 떨어져 있는 미국대사관에서는 인명 피해가 없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테러 발생 당일 가니 아프간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희생자에게 애도를 표하고 테러를 강력 규탄했다.

아프간 경찰은 1.5t 규모의 폭발물을 실은 물탱크 트럭이 최고등급 보안이 유지되는 그린 존 입구까지 어떻게 도달할 수 있었는지를 밝히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트럭을 몰던 자살 테러범은 그린 존으로 진입하는 잔바크 광장 인근 검문소에서 보안요원이 차량을 제지하고 질문을 하자 폭탄을 터뜨린 것으로 보인다. 미르자 모하마드 야르만드 전 내무부 차관은 “와지르아크바르칸에서 테러가 벌어질 거라곤 아무도 상상조차 못 했다”며 “이건 정부의 안보 실패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지속적인 테러 불안에 시달려온 아프간 국민들은 수도 중심부를 강타한 이번 테러를 계기로 정부에 강력한 안보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피해자들이 치료를 받고 있는 병원 앞에선 성난 군중들이 모여 정부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카불 시민 에나야툴라 무하마디 씨는 로이터통신에 “우리는 지도자들이 안보를 확보해주길 원하고, 만약 그럴 수 없다면 모두 물러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이슬람 성월(聖月)인 라마단을 맞아 테러는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해가 떠 있는 동안 물과 음식을 일절 먹지 않는 라마단 기간에는 사회 전체가 상대적으로 느슨해지기 때문에 자주 테러 세력의 먹잇감이 돼 왔다. 카불 테러 발생 하루 만인 1일 아프간 동부 낭가르하르주 잘랄라바드공항 인근 검문소에서는 차량 폭탄테러로 군인 1명이 숨지고 1명이 다쳤다. 테러를 자처하는 세력은 없지만 탈레반이나 이슬람국가(IS) 소행으로 추정된다.

한국 정부가 여행금지국가로 지정한 아프간에는 대사관과 한국국제협력단(KOICA) 소속 직원, 유엔 등 국제기구에서 근무하는 한국인 등 25명이 거주하고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이들을 당장 철수시킬 계획은 없다”며 “자체적으로 비상경계태세를 갖추고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일부 아랍 매체가 이번 테러의 배후라고 지목한 IS는 이날까지 선전매체인 아마크 등을 통해 자신들의 개입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IS가 국가를 선포한 2014년 아마크를 창립한 라얀 메샬이 미군 주도 연합군 폭격으로 사망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카이로=조동주 특파원 djc@donga.com / 박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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