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고미석]본토 영어 vs 글로벌 영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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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북한 말은 무슨 뜻인가? ①종합지짐 ②안슬프다 ③뿌무개.’ 알쏭달쏭한가. 분단 세월에 남북한 말이 크게 달라진 탓이다. 탈북민은 남한 단어의 절반밖에 이해하지 못한다. 탈북 학생들은 언어 차이로 수업을 따라가기 벅차다고 호소한다. 그래서 남북한 말의 무료 번역앱 ‘글동무’도 나왔다(위 문제의 정답은 ①피자 ②안쓰럽다 ③스프레이).

 ▷같은 영어라 해도 언어장벽은 존재한다. 한국인만 이해하는 콩글리시처럼, 중국에서 쓰는 영어를 칭글리시, 독일식 영어를 뎅글리시라고 한다. 이러니 영어가 모국어인 원어민들과 비원어민들의 소통에 장애가 생길 수밖에 없다. 과거엔 영미식 본토 영어를 표준으로 떠받들었다면 요즘은 다양한 유형의 글로벌 영어를 존중하는 추세다. 최근 BBC 보도에 따르면 다국적인들이 근무하는 기업에서는 원어민을 위한 사내 강좌까지 마련했다. 예컨대 can't, don't 같은 축약은 피하고 자국에서 즐겨 쓰는 관용적 어법은 자제하라는 내용이다.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들이 영어 교육을 다시 받는 이유는 ‘힘의 균형’ 때문이다. 영국 브리티시카운슬은 현재 영어 소통이 가능한 세계 인구를 약 17억5000만 명, 2020년엔 20억 명으로 전망한다. 원어민이 비원어민의 영어에 익숙해질 필요가 생긴 것이다. 실제 유럽연합(EU)에서는 비원어민이 원어민과 소통하면서 “우리처럼 영어를 할 수 없느냐”고 불평한단다.

 ▷원어민이 분당 평균 250단어를 쏟아내는 데 비해 비원어민은 150단어 정도로 느리게 말한다. 원어민도 6개월에서 1년 훈련받으면 말의 속도를 늦추는 게 가능한데, 교정 방법으로는 자신이 말하는 것을 녹음해 반복 청취하는 것을 추천한다. 10여 년 전 외국 언론에서 한국인들이 원어민 같은 영어 발음을 위해 혀 수술을 받는다고 보도해 ‘대한민국의 영어 트라우마’가 해외토픽감이 됐다. 영어는 기러기 아빠를 양산한 조기유학 붐에도 한몫을 차지했다. 마침내 ‘원어민처럼 영어 하기’에 대한 강박증에서 벗어날 때가 온 것 같다. 이제 영어도 개성 시대이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북한#언어장벽#영어#원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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