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에 이어 야후 인수전에도…IT 외면하던 버핏의 ‘일탈’, 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17일 20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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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86)이 올 1분기(1~3월)에 10억7000만 달러(약 1조2560억 원) 어치의 애플 지분을 사들여 세계 증시를 출렁이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정보기술(IT) 회사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그가 애플에 이어 야후 인터넷 사업부문 입찰에 다른 투자자와 컨소시엄을 주성해 뛰어들자 ‘버핏의 투자 철학이 바뀐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돈다.

버크셔해서웨이는 16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공시를 통해 올 3월말 현재 애플 주식 981만 주를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버핏이 처음으로 애플 주식을 보유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16일 뉴욕 증시에서 애플 주가는 3.71%나 올랐다. 15일 현재 버크셔해서웨이가 보유한 애플 지분은 8억8800만 달러로 매입가보다 2억 달러 가까이 하락했다. 투자의 귀재보다 애플 주식을 20% 가까이 싸게 살 수 있다고 판단한 투자자들이 몰려들면서 주가가 치솟은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7일 “버핏 회장이 오랫동안 고수해 온 투자 철학을 일탈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버핏은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업계에 대한 투자는 피한다”는 철학으로 IT 분야 같은 기술주 투자는 철저히 외면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까지 불었던 ‘닷컴 버블’ 시기에도 IT 기업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당시 투자수익률이 몇 년 동안 바닥을 치면서 ‘한물간 고집쟁이 영감’이란 비난도 받았다.

하지만 IT 버블이 꺼지면서 버핏은 ‘철학이 있는 투자자’라는 칭찬을 넘어 ‘현인’이란 평가를 다시 얻었다. 2012년에도 버핏은 “애플과 구글 주식을 왜 사지 않냐”는 질문에 “휴대전화 생산회사와 같은 기술 관련 기업의 가치를 측정하기 어렵다”며 “우리가 사들이기 너무 위험한 주식”이라고 잘라 말했다.

버핏은 버크셔해서웨이를 인수한 1963년 이후 53년 동안 기술주보다는 꾸준한 순이익 증가를 유지하는 크래프트 하인즈나 코카콜라, 웰스파고,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와 같은 전통적인 주식에 고집스럽게 투자해 왔다. 지난해 페이스북,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 알파벳 등 4대 IT 기업이 미국 증시를 견인할 때도 그의 철학은 바뀌지 않았다.

버핏의 갑작스러운 변신에 대한 미 언론들의 해석은 다양하다. 블룸버그통신은 “버크셔해서웨이 장부가치 증가율이 최근 한 자리 수로 낮아져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보도했다. 버크셔해서웨이의 50년 평균 장부가치 증가율은 19.2%이었지만 지난해엔 6.4%에 그쳤다. 기존 투자철학의 한계를 느낀 버핏이 생각을 바꾸었다는 해석이다.

일각에선 후계 구도와 관련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바한 잰지지언 그린위치자산운용 최고정보관리책임자(CIO)는 “버핏의 제자로 알려진 토드 콤스와 테드 웨슬러가 회사의 의사 결정 과정을 인계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관측했다. 지금까지 버크셔해서웨이를 운영해 온 80대 중반인 버핏과 찰리 멍거(92) 부회장이 서서히 투자 결정에서 물러나며 후계자들의 판단이 더 많이 반영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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