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의 전쟁법안, 절대 반대” 가두시위 나선 日 90세 老정객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24일 03시 00분


코멘트

무라야마 前총리 마이크 잡고 호소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일본 총리가 안보 법제 통과 저지를 위해 23일 일본 도쿄 지요다 구 중의원 제2의원회관 앞에서 가두연설을 하고 있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일본 총리가 안보 법제 통과 저지를 위해 23일 일본 도쿄 지요다 구 중의원 제2의원회관 앞에서 가두연설을 하고 있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권력을 쥔 총리대신이면 국민의 의지를 무시해도 되는가. 멋대로 헌법 해석을 바꿔도 되는가.”

23일 오후 6시 반. 일본 도쿄(東京) 지요다(千代田) 구 중의원 제2의원회관 앞에서 90세의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총리가 직접 마이크를 잡고 이렇게 소리쳤다.

이날 회색 양복에 흰색 와이셔츠, 노타이 차림의 무라야마 전 총리는 굳은 표정으로 안보법안 반대 시위 현장에 걸어 들어왔다. 백발 위로 터지는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 사이로 환호가 쏟아졌다. 1995년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인정하고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 사죄’를 표명했던 그는 집회장에서 ‘무라야마 담화’의 주인공으로서 집중 조명을 받았다. 일본에서 전직 총리가 거리로 나와 마이크로 연설을 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시위대 앞에 자리 잡은 그는 선창에 따라 구호를 외쳤다.

“전쟁 법안, 절대 반대!” “헌법 9조를 지키자!”

손을 올리며 구호를 외칠 때마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은 흰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이윽고 사회자로부터 마이크를 건네받은 그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말을 꺼냈다.

“안녕하신가. 이 자리에 선 것은 20여 년 만인 것 같다.” 여전히 카랑카랑한 목소리였다. 그는 “집회에 참가하기 위해 오이타(大分) 현에서 비행기를 타고 왔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에 국회에서 날치기 통과된 안보법안은 헌법이 용서하지 않는 법안이다. 헌법 99조에는 국회의원도 헌법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고 돼 있다”고 포문을 열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를 향해서는 “멋대로 헌법 해석을 바꿔도 되는가”라고 일격을 날렸다.

연설이 끝날 무렵 무라야마 전 총리는 주먹을 쥐고 “얼마나 더 살지 모르지만 목숨을 걸고 법안을 저지하겠다. 함께 일본을 지키자”고 외쳤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그동안 기자회견 등을 통해 안보법안 통과를 저지하려 했다. 하지만 이 법안이 중의원을 통과하고 참의원 통과를 앞둔 상황으로 치닫자 직접 거리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그를 잘 아는 집회 참석자들은 “다음 주 안보법안의 참의원 심의와 8월 아베 담화 발표를 앞둔 시점에서 정치 원로로서 위기감을 표현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연설이 끝난 뒤 중의원 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최근 일본 정부가 안보법안 통과를 위해 중국이 동중국해에 건설 중인 가스전 사진 등을 공개하며 필요 이상으로 위기를 강조하고 있다. 이는 외교적 노력으로 풀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