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T “시진핑, 개혁기대와 달리 더 보수적”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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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黨문건-관영매체 보도 분석
서구적 입헌정치-인권-시민참여 등 ‘7대 불순조류’로 규정… 근절 주장
전통 좌파들의 계급투쟁만 부추겨

중국 시진핑(習近平·사진) 국가주석 체제가 과거에 비해 보수적이고 전통 좌파적인 입장을 띠고 있다고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20일 분석했다. 시 주석이 법치 확립, 인권 보호, 시장경제 확대 등에서 과감한 개혁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와는 다른 움직임이다. NYT는 최근 당내에서 배포된 비공개 문건과 관영 매체의 보도 태도, 지식인들의 평가 등을 종합해 이같이 진단했다.

NYT에 따르면 공산당 엘리트들은 당 중앙위원회에서 배포한 9호 문건을 학습하고 있다. 이 문건은 중국 사회에 횡행하는 7개의 불순한 조류를 지적하고 이를 뿌리 뽑지 않으면 권력을 유지할 수 없다고 경고한다. 문건에서 첫 번째로 꼽힌 불순한 조류는 ‘서구적 입헌 민주주의’이다. 또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홍보하는 것 △언론 자유와 시민 참여 같은 서구적 영향을 받은 관념 △지나치게 친시장적인 신자유주의 △당의 과거 실책에 대한 허무주의적인 비평 등을 꼽았다.

문건은 또 중국에 적대적인 서구 세력과 국내 반체제 인사들이 끊임없이 이데올로기 영역에 침투한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공산당 일당독재를 반대하는 자들이 당과 정부에 대한 불만을 일으키기 위해 공직자 재산 공개를 요구하고 인터넷을 통해 부정부패, 언론통제와 민감한 문제들을 이슈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문건은 시 주석 취임 후인 4월 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작성돼 시 주석의 전반적인 관점이 확실히 담겨 있다고 전문가들은 해석한다.

이 문건이 나온 이후 관영 매체들은 최근 헌정(憲政·입헌 정치)과 시민사회 개념들을 맹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매체들은 정통 이데올로기로의 회복을 요구하는 논평과 기사를 쏟아내고 마오주의자들(전통 좌파)의 계급투쟁도 소개했다. 공산당 기관지 런민(人民)일보 해외판은 “헌정은 자본주의에만 어울리는 것”이라며 “헌정은 미국 독점 자본주의와 중국에 있는 그들의 대리인이 정보와 심리전에서 무기로 사용하는 것으로 중국의 사회주의 시스템을 전복시키는 데 목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 문건은 당원 교육을 통해 전파되고 있다. 후난(湖南) 성 정부 웹사이트에는 “서구의 헌정을 홍보하는 것은 당의 리더십을 부정하려는 시도”라고 밝혔다.

이 같은 기류는 시 주석을 통해 오랫동안 지체된 정치개혁을 추진할 수 있다고 관측해 온 자유주의자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반면 시장개혁을 신랄하게 반대해 온 많은 좌파들을 기쁘게 한다. 상하이(上海)사범대 샤오궁친(蕭功秦) 교수는 “현재 좌파들은 매우 흥분해 의기양양해하며, 자유주의자들은 매우 낙담하고 불만에 차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악영향은 아주 심각해 중간 계층과 온건한 개혁주의자들, 자본가들, 지식인들에게 상당한 타격을 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런 상황은 시 주석에게 위험을 야기할 것이라고 NYT는 예상했다. 시 주석이 침체하는 경제에 새롭고 시장 주도적인 동력을 제공해야 하며 이 동력은 정부 영향력을 완화하는 데서만 나오기 때문이다. 중국 내 노선 투쟁에서 서구 스타일의 경제개혁을 주창해 온 이들은 종종 법치와 좀 더 개방된 정치시스템을 요구해 온 세력과 연합해 왔다.

반면 좌파들은 경제와 정치에서 정부 통제 강화를 선호해 왔다. 샤오 교수는 “양측의 틈이 현저하게 벌어졌고 더 벌어지면 시 주석을 꼼짝 못하게 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공산당은 경기침체와 부패에 대한 국민적 분노, 정치개혁에 조바심을 내고 있는 자유주의자들의 도전에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베이징=이헌진 특파원 mungchii@donga.com
#시진핑#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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