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년만에 배달된 ‘베트남전 피묻은 편지-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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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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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美-베트남 전쟁유물 교환

베트남을 방문 중인 리언 패네타 미국 국방장관이 4일 전쟁유물 교환 행사가 열린 하노이에서 풍꽝타인 베트남 국방장관으로부터 
베트남전 참전 미군 전사자 스티브 플래어티 병장의 편지를 건네받고 있다. 패네타 장관은 북베트남군 부딘도안의 일기장을 건넸다. 하노이=AP 연합뉴스
베트남을 방문 중인 리언 패네타 미국 국방장관이 4일 전쟁유물 교환 행사가 열린 하노이에서 풍꽝타인 베트남 국방장관으로부터 베트남전 참전 미군 전사자 스티브 플래어티 병장의 편지를 건네받고 있다. 패네타 장관은 북베트남군 부딘도안의 일기장을 건넸다. 하노이=AP 연합뉴스
‘아버지가 전화하면 죽을 뻔했다가 살아났다고 전해 주세요. 정말 운이 좋았어요.’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미 101공수여단 소속의 스티브 플래어티 병장이 1969년에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컬럼비아 시에 살고 있던 어머니에게 쓴 이 편지는 끝내 전달되지 못했다. 그는 22세 때인 1969년 3월 베트남 북부지역의 한 전투에서 전사했다.

그로부터 43년 후, 플래어티 병장의 ‘보내지 못한 편지’가 마침내 가족에게 전달됐다. 풍꽝타인 베트남 국방장관은 4일 베트남을 방문 중인 리언 패네타 미 국방장관에게 플래어티 병장의 편지를 전달했다. 이에 대한 맞교환으로 패네타 장관은 베트남전 당시 한 미군이 습득한 북베트남군 병사 부딘도안의 일기장을 건넸다.

서로 수많은 사상자를 낸 전쟁을 치른 두 나라의 국방 책임자가 만나 서로의 아들들이 전장에 남긴 마지막 자취를 교환한 것이다. 두 장병은 서로 적이었지만 이들이 쓴 편지와 일기장은 양국 관계 개선과 화해를 상징하는 메시지로 되살아났다.

플래어티 병장이 전사했을 당시 품 안에는 손으로 쓴 편지와 타이핑한 편지, 피가 묻은 세 통의 편지가 있었다. 그는 편지에서 전쟁의 참혹한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여자친구 베티에게 보낸 편지에서 “총알이 바로 옆으로 휙 지나갔다. 내 평생 이렇게 겁먹은 적이 없었다.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나와 부대원 모두에게 고통스러운 며칠이었다”고 썼다. 베티에게 보낸 또 다른 편지에서는 “베트남군은 죽을 때까지 싸웠다. 부비트랩 폭탄을 몸에 두르고 뛰어들어 우리 소대원 2명과 함께 죽었다”고 했다.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는 “죽을 뻔하다가 살아났어요. 휴식이 필요해요. 곧 휴가를 갈 것 같은데 휴가지가 어디가 됐든 상관없어요”라며 하루라도 빨리 전쟁터를 벗어나고 싶은 심정을 담았다.

북베트남군은 당시 플래어티 병장의 편지를 전리품으로 노획했고 미군을 겨냥한 심리전 도구로 활용했다. 전쟁 후 이 편지를 갖고 있던 북베트남군 대령이 편지를 전달할 방법을 찾지 못해 고심하다가 2011년 베트남 온라인 매체에 공개했다. 이 사실을 미 국방부 베트남전 실종 미군유해발굴팀이 알아내 이번에 패네타 국방장관이 편지를 건네받게 된 것.

북베트남군 병사 부딘도안의 일기장은 1966년 3월 미군 7해병여단 소속 로버트 프레이저 병사가 베트남 북부 꽝응아이 전투 직후 발견했다. 기관총에 맞아 숨진 그의 품에 조그만 빨간 일기장이 있었던 것. 프레이저 씨는 미국으로 돌아와서도 수십 년 동안 보관하다가 베트남군 가족에게 돌려주기로 했고 올 2월 미 공영방송 PBS TV의 다큐멘터리에 소개돼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워싱턴=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베트남전#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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